2008. 03. 04
말이 사라졌다.
말(馬)은 Horse다. Horse, 또는 Workhorse로 사용되는 야구의 말은 말처럼 지치지 않고 던지는 투수를 뜻한다. 폴 딕슨의 야구용어사전에 따르면 별명의 원조는 볼티모어의 스콧 에릭슨이었다. 에릭슨은 볼티모어로 이적한 1996년부터 4년 연속 200이닝 이상을 던졌다. 98년에는 무려 251과 3분의 1이닝을 채웠다.
지난 시즌 한국 프로야구에서 200이닝 이상 던진 투수는 리오스(234.2이닝)와 류현진(한화·211이닝) 둘뿐이었다. 리오스는 일본으로 떠났다. 150이닝 이상 던진 국내 투수도 류현진을 포함, 모두 8명뿐이다. 올 시즌에는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고교때 말처럼 던졌던 투수들은 봄이 오기 전에 탈이 났다.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말(言)도 사라졌다.
올 겨울 야구의 말들은 허공을 떠돌았다. 선발투수들의 이닝이 짧아져서일까. 말의 유효 기간도 짧아졌다.
새 구단 창단을 두고 말이 쏟아졌다. 연봉 계약을 앞두고 “계약이 안 되면 자유계약으로 풀어주겠다”는 말은 “자유계약으로 풀어주는 일 없다”로 바뀌었고, 다시 “자유계약을 고려할 수도 있다”는 말로 변신했다.
“재정상태 확인했다”던 KBO의 말도 “신뢰를 바탕으로 추진했다”는 말로 달라졌다. “안전장치 있다”던 다짐도 “믿어달라”는 부탁으로 바뀌었다. “박노준 단장의 사퇴를 요구한다”던 선수협회 사무총장의 선언은 “정중히 사과를 드리는” 것으로 탈바꿈했다. 채 24시간도 가지 못했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려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는 게 번복 이유였다.
이청준은 소설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에서 ‘모든 말들이 길을 헤매고 있었다. 사람들은 … 말들을 혹사했고 말들을 배반했고 … 말들은 그들의 고향을 잃어버렸고 그들의 고향에 대한 감사와 의리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배반당한 말들은 자유였다’고 적었다. 아니면? 말고. 야구의 말은 어느새 정치를 닮아 있었다. 정치인 출신 총재 때문만은 아닐 테다.
말(Unicorn)은 사라졌다. 그래서.
말(言)이 말(Unicorn)을 삼켰다. 된다던, 걱정말라던, 농협이 STX가 KT가 사라졌고 결국 하늘을 네 번이나 날아올랐던 말은 날개를 꺾고 전설로 남았다. 원래 유니콘은 전설 속의 말이었다.
말(Horse)은 철자를 조금 바꿔 히어로즈(Heroes)로 다시 태어났다. 센테니얼의 이장석 대표이사는 “센테니얼이 프로야구 구원투수, 우리담배가 진정한 마무리 투수”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우리담배 사장은 “언제고 좋은 조건의 기업이 있다면 물려주겠다”고 했다. 다음 투수를 생각하는 마무리 투수? 오승환이 들으면 웃을 일이다. 그래서 프로야구의 말은 또다시 허공을 떠돌고 있다.
이용균 기자 / noda@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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