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03. 11
최종준 대구FC 단장은 프로야구 LG와 SK 단장을 지냈다. LG투자증권 씨름단 단장을 맡은 적도 있다. 언젠가 씨름이 망한 이유를 아느냐고 물었다. 사견이라며 씨름이 망한 이유를 늘어놓았다. 선수들의 덩치가 커졌다. 선수 보호를 위해 모래가 깊어졌다. 그러다보니 덩치 큰 선수가 유리해졌다. 그래서 선수들의 덩치는 더욱 커졌다. 작은 선수가 큰 선수를 이기는 재미가 사라졌다. 씨름의 인기가 떨어졌다. 모래 때문이었다.
선수 보호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메이저리그가 도핑 파문으로 들끓고 있는 이유는 참과 거짓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수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과잉보호는 경기의 역동성을 떨어뜨린다. 씨름처럼 말이다.
올시즌부터 연장전을 폐지하기로 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 1차 예선 때 국제야구연맹 관계자에게 ‘무승부 규정’을 물었다. 그랬더니 “무슨 소리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건 야구다”라고 했다. 야구에는 원래 무승부라는 게 없다. 승부는 가리는 게 맞다.
그런데 감독들이 이를 반대하고 있다. 선수층이 얇기 때문에 선수들의 혹사가 걱정된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혹사를 막는 것도 감독의 몫이다. 감독들에게 ‘승부사’라는 칭호가 붙는 것은 괜한 수사가 아니다. 승부사라면 무승부 폐지로 생기는 모든 요인까지 고려해야 한다. 연장전이 길어지면 내일 경기가 재미 없어진다고? 허구한 날 연장승부를 벌였던 2004년 한국시리즈는 그 어느 해보다 짜릿했다. 보호라는 명목으로 모래를 쏟아붓는 게 오히려 경기의 재미를 망칠 수도 있다.
죄송하지만, 조금 더 고생해 주시기 바란다. 많은 선수들은 단지 A팀에 드래프트됐다는 이유만으로 뭉텅뭉텅 연봉이 잘려나가고 있다.
사실 프로야구의 가장 큰 모래는 자유계약선수(FA) 제도다. 보류권 유지를 위해 선수들을 허리까지 파묻었다. 9년이 지나야 FA 자격을 얻고 다시 4년이 지나야 또 자격을 얻는다. 처음 9년이야 이해할 수 있다쳐도 이후 4년은 난센스다. 그나마 그 4년간의 구속을 뒷받침하는 게 계약금이었다. 계약금은 사실 규약에 주지 않기로 돼 있다. 모일 때마다 야구의 체감온도를 뚝 떨어뜨린 구단 단장들은 최근 다시 모여 ‘법대로’를 주장했다. 어디선가 많이 듣던 ‘준법투쟁’을 연상시킨다. 자기들이 어겨놓고, 자기들이 지키겠다고 주장하는 일은 옛말대로 ‘소가 웃을 일’이다.
차라리 FA 연한을 대폭 줄여 더 많은 선수들이 시장에 나오는 게 낫다. 구단들이 주장하는 ‘구조조정’과 ‘거품 제거’도 오히려 쉬워진다. 이 참에 메이저리그식 ‘룰 5’도 도입하자. 쉽게 말하면 1군에 올라오지 못한 2군 유망주들을 다른 팀에서 데려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류권이 복잡해지면 구단들은 머리가 복잡해진다. 하지만 감독들도 연장전 때문에 고생하지 않는가. 그리고 야구는 원래 어려워 매력있는 종목이다.
이용균 기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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