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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스발 리베로] 분데스리가, 팬과 함께 호흡하다

--김현민 축구

by econo0706 2023. 2. 12.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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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3. 15.

 

2015/16 시즌 분데스리가 26라운드 경기에선 사망한 팬을 추모하는 행사가 연이어 발생했다. 

 

분데스리가 26라운드에선 연달아 팬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과 선수들이 사망한 팬을 추모하는 뜻 깊은 행사를 가지며 축구 그 이상의 감동을 선사했다.

 

/ 사진출처: Bild

 

# 다름슈타트의 영원한 팬 하이메스

 

먼저 다름슈타트와 아우크스부르크 경기에선 한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대형 포스터와 함께 "DU FEHLST DOCH DEINE WERTE BLEIBEN WIR KÄMPFEN WEITER(당신은 떠나지만 당신의 신념은 남아있다. 우리는 계속 싸울 것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배너가 걸려있었다.

 

▲ 사진출처: 다름슈타트 구단 공식 트위터

 

아우크스부르크 팬들 역시 급조한 것이긴 하지만 "RUHE IN FRIEDEN JOHNNY! (RIP 조니!)"라는 플래카드를 들어올렸다. 다름슈타트와 아우크스부르크 선수들도 킥 오프 전 그라운드 중앙에 서서 그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다름슈타트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선수도 감독도 아니었다. 유명 정치인이나 연예인도 아니었다. 그저 다름슈타트 팬들이 들고 있는 'J.O.H.N.N.Y'라는 스펠링만이 그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3월 9일, 암으로 세상을 떠난 만 26세 다름슈타트 서포터 조니 하이메스이다. 하이메스는 다름슈타트 열혈 서포터로 2004년, 암에 걸리기 이전만 하더라도 헤센 주(다름슈타트와 프랑크푸르트가 속한 주) 유소년 챔피언을 차지했을 정도로 재능 있는 테니스 선수였다. 하지만 이후 10년 넘게 암투병 생활을 이어오면서 20회에 달하는 항암 치료를 견뎌야 했다.

 

▲ 사진출처 : 아우크스부르크 구단 공식 트위터

 

그는 다름슈타트에선 가장 유명한 서포터였다. 투병 생활 중에도 모자를 쓴 채 휠채어를 끌고 자주 경기장을 찾아 다름슈타트를 응원했다. 다름슈타트가 34년 만에 분데스리가로 승격하자 다름슈타트 선수들은 하이메스를 초대해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는 다름슈타트에게 단순한 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그의 사망 소식은 다름슈타트 선수들에게도 큰 동기부여가 됐다. 다름슈타트는 아우크스부르크와의 분데스리가 26라운드 홈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다름슈타트 공격수 도미닉 슈트로-엥겔은 "오늘 우리 선수들이 넣은 2골은 조니를 위한 것이다. 우리 모두 그를 기억하며 이 곳에 섰다"라고 밝혔다.

 

더크 슈스터 다름슈타트 감독 역시 "우리는 (분데스리가 최종 라운드가 열릴) 5월 14일, 조니의 바람대로 분데스리가 잔류를 축하하고 싶다. 우리는 이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하이메스의 좌우명 "Du musst kämpfen - es ist noch nichts verloren! (너희는 싸워야 한다. 아직 패하지 않았다!)"를 인용해서 한 인터뷰이다. 하이메스는 2014년, 다름슈타트 선수들에게 이 문구가 적힌 손목 밴드를 선물한 바 있다. 다름슈타트 선수들은 매 경기 때마다 이 손목 밴드를 차고 경기장에 나선다.

 

▲ 사진출처 : FAZ.de

 

# You'll Never Walk Alone

 

도르트문트와 마인츠의 26라운드 경기에서도 비보가 전해졌다. 바로 만 80세의 도르트문트 팬이 경기 관전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인공호흡 조치에도 그는 세상을 떠났다. 

 

이에 도르트문트 팬들은 후반전, 걸게와 응원기를 모두 접었고, 응원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73분경 카가와 신지의 추가 골이 나왔으나 카가와의 이름을 콜하지 않았다(분데스리가는 골을 넣으면 응원가와 함께 선수 이름을 콜하는 전통이 있다). 88분경엔 도르트문트 팬들과 마인츠 팬들이 함께 도르트문트 응원가 You'll Never Walk Alone(넌 혼자 걷지 않을 것이다)를 제창하는 진기한 장면이 연출됐다.

 

하지만 경기 종료 후 토마스 투헬 감독과 미하엘 초어크 단장을 통해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도르트문트 선수들은 팬들 앞에 도열해 서서 You'll Never Walk Alone을 함께 부르며 사망한 팬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인츠 선수들도 뒤에 서서 이들에게 박수를 보냈다.도르트문트 회장 라인아르트 라우발은 이에 대해 "도르트문트를 대표해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추모해준 양팀 팬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 있는 일이다"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한스-요아힘 바츠케 도르트문트 사장 역시 "팬들에게 특별히 감사를 표하고 싶다. 이 경기는 스포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라고 밝혔다.

 

▲ 사진출처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구단 공식 트위터

 

# 분데스리가, 팬과 함께 호흡하다

 

분데스리가는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에 비해 자본력이 떨어지는 편에 속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분데스리가 구단들이 챔피언스 리그와 같은 유럽 대항전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프리미어 리그처럼 중계권료 강화와 입장료 인상 및 해외 자본 유치를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흘러나오고 있다. 독일 축구협회(DFB) 역시 이러한 차원에서 프리미어 리그처럼 매 라운드 월요일 경기를 배정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분데스리가의 힘은 바로 팬에게서 나온다. 비록 팬들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높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의 응원과 열기가 선수들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팬들 역시 높은 구매력을 통해 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실제 분데스리가는 유럽 5대 리그들 중 가장 많은 광고 및 케릭터 상품 판매 수익을 올리고 있다. 

 

여전히 분데스리가는 기업 출자로 설립된 바이엘 레버쿠젠과 볼프스부르크, 그리고 호펜하임을 제외하면 시민 구단(e.V: eingetragener Verein의 약자. 직역하면 등록 구단이라는 의미) 형태를 띄고 있다. 이에 더해 분데스리가 구단들 중 상당수는 12번을 서포터들의 번호로 지정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분데스리가를 특징 짓는 개성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도르트문트 사장 바츠케가 과거 시민 구단 형태를 유지하는 독일식 구단 운영에 대해 한 발언을 남기도록 하겠다.

 

"독일 구단들이 잉글랜드 구단들에 비해 더 낭만적이다. 잉글랜드에서는 자신의 구단에 미국 자본이 침입하는 사실에 무관심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다르다. 특정 구단이 있고, 팬들은 그 구단을 나의 구단이라고 여긴다. 카타르나 아부 다비 구단이 아닌 나의 구단인 것이다. 난 하노버 회장 킨트의 주장에 가장 강하게 반발하는 사람이다. 독일인들은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한다. 구단이 팬을 팬이 아닌 고객으로 보게 될 때 그 구단은 망하게 될 것이다. 독일에서는 구단과 팬 사이의 연대감이 매우 중요하다. 로마로 가는 길은 많다. 첼시는 슈가 대디(Sugar Daddy, 돈 많은 중년 남자를 지칭함) 자금 덕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2011/12 시즌)을 차지했다. 그러나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만약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첼시는 어떻게 될까?" 

 

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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