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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안씨패훈(安氏敗訓)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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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육조시대의 학자 안지추가 안씨가훈(安氏家訓)을 지어 자손들에게 내렸다.

 

그러자 그 자손 가운데 하나가 물었다. "이 많은 훈계 가운데 꼭 지켜야만 하는 한가지 교훈이 있다면 어떤 것이겠습니까", 이에 안씨는 "일생을 살다보면 실패가 따르게 마련이요, 그 패사를 당했을때 성(省)-상-약(躍)하라는 교훈이니라"했다. 잘못이나 결함이 무엇이었는가를 반성하는 일이요, 상은 실패함으로써 엄습하게 마련인 좌절감이나 열등감에 패배하지 말 것이며, 약은 실패에서 반동하는 힘을 얻어 비약하는 일이라 했다. 이를 속칭 안씨패훈(安氏敗訓)이라 하여 우리 조상들은 패사가 있었을 때마다 용기를 얻었던 교훈이었던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이 안씨패훈으로 영달한 사람은 부지기수다. 사마천은 거세형(去勢刑)을 받고 그 인생패배의 열등보상에서 <사기(史記)>라는 대작을 남겼으며, 손자는 다리 근육을 잘리는 단근형(斷筋刑)을 받고 그 반동으로 <병법(兵法)> 을 남겼다. 뮌헨에 투옥당했던 히틀러, 소아마비의 루스벨트, 파리 망명의 호메이니, 필리핀 참패의 맥아더, 홍위병에게 갖은 수모를 당한 등소평 등등 좌절이나 실패나 수모없이 크게 성장한 사람은 드문 것이다.

 

안씨패훈과 같은 맥락의 지혜로서 우리 조상들이 영향을 많이 받았던 '낙상매'라는 교훈이 있다. 실학자 이덕무는 낙상매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어미매는 새끼매를 먹일 때 높은 하늘에 떠서 먹이를 떨어뜨린다. 그 먹이가 깃속에서 어미를 바라보고 있는 새끼들 바로 위로 떨어진다는 법은 없다. 따라서 새끼들은 모험을 해가며 그 먹이를 차지하려고 위험을 무릅쓴다.

 

개중에는 둥지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놈도 생긴다. 어미매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 먹이를 취하려다가 실패하여 다리를 다친 낙상매인 것이다. 왜냐하면 새끼 때에 낙상(落傷)을 한 매가 그 결함이나 열등보상으로 별나게 사납고 억센 매가 된다는 것을 이 어미매들은 알고 있기에 자칫 죽을지도 모르는 낙상을 먹이로써 유도한다는 것이다. 임금님의 매사냥을 위해 조정에서 응방(鷹房)을 두고 매를 길렀는데 낙상매는 진상품으로 금테로 발지를 하여 여느 매들과 구별했다 한다.

 

이렇고 보면 미래지향적으로 새끼를 기르는 어미매는 스파르타의 어미들 보다 현명했다 할 수 있다. 기르는 정이란 사람이나 짐승이 다를 것이 없는 데 말이다.

 

입학부정으로 많은 어머니들이 쇠고랑차고 얼굴을 못들고 있음을 보았다. 자식을 가르치는데 물불 가리지 않는 모성애(母性愛)는 무죄(無罪)다. 다만 어미매 만큼도 앞을 못보았다는 차원에서 수치스러울 뿐이다. 여기 안씨패훈을 새삼 되뇌는 이유가 이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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