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의학의 아버지가 히포크라테스라면, 동양 의학의 아버지는 후한 때 <상한론>을 정립한 장중경이다.
어느날 장중경이 동백산에서 약초를 캐고 있는데 소식을 들은 인근 환자 수백명이 구름떼처럼 산을 찾아 들었다. 그중 깡마른 노인 하나가 앞에 나와 헛배가 불러 사흘째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다면서 구원을 청했다. 그 많은 환자가 노숙을 하며 진맥 받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장 의원은 심심한데 잘 되었다면서 그 노인과 바둑도 두고 차도 마시며 사흘동안을 더불어 먹고 자면서 모든 것을 묻고 병세의 가닥을 잡은 후에야 나흘째에 진맥을 하더라는 것이다. 진맥 후 한숨을 쉬면서 "당신의 맥은 수맥(獸脈)이요"했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은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과연 신의 이십니다. 실은 저는 이 산에 사는 늙은 원숭이로서 병을 고치려 둔갑을 한 것입니다" 했다. 장중경이 지어준 약을 먹고 나은 늙은 원숭이는 그 보은으로 만년 묵었다는 오동나무를 선물했다. 장중경이 이 만년 오동으로 금(琴)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의 스타라디바리라는 고원금의 뿌리다.
당장의 병세만을 쉽게 보아내는 것이 명의가 아니라, 시간을 두고 많은 대화를 통해 멀리 투망질하듯 훑어올려 판단하는 것이 명의요, 고원금을 얻었다 하면 명의를 만났다는 뜻이 되었던 것이다.
십수년전 미국 오클라호마를 여행했을 때 민박으로 얻은 집이 중부 미국에서 소아과의 명의로 소문나 있는 웨일랜드 박사댁이었다. 중부 미국에서 이 분의 진찰을 받고자 대기하는 환자수가 전병과를 통해 가장 많다고 소문나 있는 분이다. 한데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만 환자를 보는데 2~3명이 고작이라 했다. 환자와의 대화, 부모와의 대화, 그리고 더불어 놀아주면서 병세를 보는데 한 환자당 1시간반 내지 2시간을 들인 것이 된다.
평생동안 자주 앓았던 세조(世祖)가 심의론(心醫論)이라 하여 권장해야 할 이상적인 의사상을 손수지어 공포를 햇는 데 8등급의 의사 가운데 가장 훌륭한 의사란 환자와 자주 접하고 말을 많이 나누어 환자의 기를 안정시키는 심의라 했다.
여염(閭閻)에서도 훌륭한 의원의 조건으로 일구-이족-삼약-사기 라는 격언이 있었다. 환자와 대화를 많이 하는 입이 첫째요, 찾아가서 자주 접하는 발이 둘째요, 약을 잘 쓰고 병을 낫게 하는 기량은 그 후의 일이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이 모두 환자와 여유를 갖고 자주 대화하는 체험적 교훈이랄 것이다.
한데 우리 한국에서는 명의로 소문이 났다 하면 문전성시로, 명의일 수 있는 여유가 무참히 유린당하고 만다. 일전에 보도된 바에 명의에게 수술 받으려면 2년6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대기 환자수가 6천명이며 하루 진료 환자수가 1백명-하는 정도는 비일비재하다니 어찌 고원금을 얻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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