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을 받은 유고 작가 안드리치의 <드리나강의 다리>는 실제로 있는 돌다리다.
그 다리 가장 복판의 교각(橋脚)에 구멍 하나가 나있다 한다. 그 소설에 보면 그 교각 속에 컴컴한 방이 있어 검은 산나이가 살고 있는데, 밤에는 어린이들의 꿈에 나타나고 낮에는 숲속의 요정으로 둔갑하여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한다. 그리고 다리 양편에 사는 사람에게 반목을 유발하여 살상을 하게 하는 것도 이 검은 사나이의 수작이라는 것이다.
이 강을 두고 고대에는 로마와 게르만이 대결하였고, 근세에는 터키와 오스트리아가, 근대에는 헝가리와 독일이 피를 보더니 지금은 유고연방의 약소민족끼리 피를 쏟고 있다. 그 강의 오른편은 슬라브 민족계통의 세르비아가 자리하고, 그 왼편에는 모슬렘 민족계통인 보스니아가 자리하고 있다. 역사도 다르고 말도 다르며 문화나 기질도 서로 다른 그 두 민족 사이를 잇고 있는 것이 드리나강의 다리다. 유고 사회주의연방이 붕괴되기 바쁘게 다리 왼편에 있는 발전소에서 다리 오른편으로의 송전(送電)을 중단했다.
냉장고가 꺼지고 야채와 과일이 썩어 문드러졌으며 고기는 훈제를 해두지 않을 수 없는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다리 오른편에서는 단전에 대한 보복으로 왼편으로 흐르는 송수관을 끊어 단수(斷水)를 했다. 왼편에서는 맑지 않은 드리나강의 강물을 퍼다가 걸러먹어야 했다. 이제는 전기나 수도쯤은 약과다. 서로의 영역에 집단으로 잠입하여 납치-살인-폭파를 일삼아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리 교(橋)는 나무 목(木)과 높을 교(喬)의 뜻을 모은 글이다. 높은 곳에 걸친 나무로, 골이 깊은 단절의 연결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세상의 그 많은 다리 가운데 가장 강력히 연결을 염원한 다리가 드리나강의 다리요, 그 염원을 소설 속에 부각시켰기에 노벨상이 주어졌던 것이다.
안드리치의 소설 속에 이 다리가 연결이나 화합이나 결속에 주력을 발휘하는 대목이 자주 나온 것도 그 염원 때문일 것이다. 다리 이편 저편을 두고 사랑하게 된 이민족의 소년 소녀는 이 다리의 난간위를 팔을 펴 균형을 잡고 건너는데, 성공하면 부모들도 승복해야 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러다가 도중에 난간밑으로 떨어져 죽는 비련의 이야기도 나온다. 또 불화한 부부나 연인들이 밤중에 갈라서서 촛불들고 달려와 복판에서 포옹을 하면 사랑이 회복된다는 관습도 그렇다.
그 드리나강의 다리 위에 붕대로 온몸을 감은 한 주민이 업혀가는 보도사진을 보았다. 이종교간의 종교전쟁, 동서간의 이념전쟁이 불기운을 죽인듯 하더니 이민족간의 민족전쟁이 기승을 부리고 그 기승앞에 인류의 소망을 대변하는 드리나강의 다리도 무력함을 웅변하는 한장 사진이다.
[이규태 코너] 고통분담론 (0) | 2007.02.15 |
---|---|
[이규태 코너] 명의론(名醫論) (0) | 2007.02.15 |
[이규태 코너] 안씨패훈(安氏敗訓) (0) | 2007.02.15 |
[이규태 코너] 왜 수컷이 예쁜가 (0) | 2007.02.15 |
[이규태 코너] 한국인의 신심(信心) (0) | 2007.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