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진통하고 있으면 남편은 야물게 고쳐맨 상투를 산실의 문구성을 뚤고 들여 넣는다. 그럼 아내는 남편의 상투를 잡아당기며 그로부터 힘을 얻는다.
관북지방에서 채집된 민요에 이런 것이 있다. "상투꽁지 길게 매고/문 창구멍 한 구멍에/들이 들이 밀었단다./각시 각시 상투쥐고/이잉 이잉 당기더니/상투꽁지 쑤욱 빠지며/당콩같은 빨간 애기/말똥말똥 빠져나네."
또 서북지방에선 아내가 진통하는 지붕위에 남편이 올라가 나딩굴고 뒤틀며 진통을 더불어 하는 습속이 있었는데 이를 '지붕지랄'이라 했다. 공존하는 배필끼리의 고통분담의 미풍양속이 아닐 수 없다.
고락을 같이 해야 할 우리의 전통적 촌락공동체에는 나름대로의 고통분담 문화가 발달해 있었다. 이를테면 한 마을의 어느 한 집에 애사(哀事)나 옥사(獄事)같은 불행한 일이 생기면 그 고통을 분담하는 뜻에서 일정기간 동안 고기반찬을 삼간다든지,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 감선을 한다든지, 비단옷차림을 하지 않는다든지, 잠자는 방에 군불을 때지 않는다든지, 영목침이라 하여 울퉁불퉁 공이가 박힌 목침을 베고 잔다든지, 내외간에 합방을 하지 않는다든지 하여 더불어 사는 사람의 고통을 공감하는 민속이 향약으로 약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대곡(代哭)이라는 습속도 그런 것 가운데 하나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상청을 차려 삭망에는 곡을 하며 애도를 한다. 이 삭망날에 친-인척도 아닌 마을 여인네들이 찾아와서 번갈아 곡을 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부모잃은 상심을 더불어 하기 위한 공생공존의 통곡인 것이다.
그렇게 남의 슬픔을 울어주다 보면 자신의 설움이나 신세가 복합되어 저도 모르게 곡소리가 커진다는 것이다. 곧 남의 아픔을 나누면서 자신의 응어리도 푸는 일거양득의 울음이었다 할 수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 촌락공동체가 무너지고 도시가 형성되면서 이같은 고통분담의 미풍양속이 증발, 지붕지랄이나 대곡같은 이야기를 하면 청동기시대의 곰팡이내 나는 일로 웃어넘길 것이다.
신임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중-상류층에 대폭 증세(增稅)가 불가피함을 역설하고 고통분담을 호소했다. 세금 늘린다는데 좋아라 할 사람은 없다. 한데 개척시대 이래 고통분담이 없어 살아낼 수 없었던 잠재의식에 그 호소가 영합되어 80%의 대폭적인 지지를 얻었다고 한다. 부러운 일이다.
민주주의는 고통 분담이라는 공동체정신 없이는 연목구어다. 출범을 며칠 앞둔 새 정부의 성패도 바로 여기에 걸려있다 해도 대과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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