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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청와대(靑瓦臺) 앞길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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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사람에게 팔자가 있듯이 길에도 팔자(八字)가 있는 것 같다.

 

기구한 팔자의 길로 청와대 앞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 새 주인이 그 동안 여느 보통사람은 다니지 못하게 했던 이 길을 틈으로써 앞으로 베풀어 나갈 정치의 길을 슬쩍 암시해 주었다. 다만 이 길이 막힌 것이 지엄한 분들이 살아온 청와대 때문이 아니라 훨씬 그 이전부터 자의건 타의건 서너차례 자주 막힌 역사가 있기에 팔자타령이 나온 것이다.

 

소장학자들을 대거 기용, 유교정신에 의한 혁신정치를 감행하고 있던 중종 때도 이 길이 막힌 일이 있었다. 혁신에 반대하여 조광조 등 소장학자 일당을 사화(士禍)로 얽어 대거 살육한 만고의 악신 남곤이 살던 집이 바로 지금 청와대 서편 북한산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집에서 선비 대량학살의 음모가 꾸며지고 지령되었으며 실천되었기로 한동안 학문하는 선비는 남곤의 집이 있는 북향(北向)을 피하여 책을 잃고 잠을 자며 밥을 먹는 피방(避方)하는 습속가지 있었던 것이다.

 

하물며 그의 집으로 가는 궁정동, 경복궁 돌담길을 걷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 교황사절인 바티칸 대사관이 있는 궁정동 집터는 북악풍수의 명당으로서 김상용, 김상헌, 김수항, 김창협 형제 등 안동김씨의 벼슬밭이었다. 이 집을 드나들려면 바로 그길을 걷지 않으면 안되었지만 멀리 옥수동길로 우회(迂廻)하여 다녔던 것이다.

 

지금 청와대 자리는 경복궁 후문 밖으로서 오래 비워뒀기에 대낮에도 호랑이가 산을 타고 내려와 이따금 호환(虎患)을 저지르곤 했던 곳이다. 경복궁에 호랑이가 침입한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태종 때 경복궁의 경호실장 격으로 김덕생이라는 명사수가 있었다. 어느날 태종이 후원을 거닐고 있는데 호랑이 한마리가 발소리 죽이며 접근하고 있는 걸 보았다. 이 명사수는 활을 당겨 단 한방으로 이 노호(怒虎)를 쏘아 쓰러뜨렸다. 임금님의 생명을 구한 이 무신은 공신으로 우러름 받기는커녕 죽음으로 처형받고 있다. 아무리 위기일지라도 임금을 향해 활을 쏘았다는 것은 대역죄를 못면한다는 조정 대감들의 고식적인 해석 때문 이었다.

 

개화기 때만 하더라도 이 청와대 앞길과 팔판동, 효자동길에는 금호방이 붙어있어 사람의 접근을 막았던 것이다. 또 하나 길막이는 해마다 베풀게 마련인 대과(大科)의 과거가 베풀어지기 한달 전부터 이 경복궁 뒷길을 막았다. 바로 이 청와대터의 광장이 임금이 참석해야 하는 대과의 시험장으로 자주 쓰여왔고, 시험장을 폐쇄하는 이유는 미리 들어가 공작을 일삼았던 부정방지를 막기위한 조치였다. 이래저래 길막음에 도가 트인 청와대 앞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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