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연재 <이규태코너>가 시작된 것은 1983년 3월 1일이었다.
오늘로써 꼭 10년이 되었다. 그 첫 코너의 제목은 이완용의 집 고목 이었다. 마침 그 날이 3.1절이라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을 했던 명월관 지점이 바로 이완용이 살았던 집이고 해서 그같은 주제를 잡았던 것이다.
그 집은 인조가 등극하기전에 살았던 순화궁으로서 나라에 불길한 일이 있으면 운다는 수백년된 고목 한그루가 있었다. 어느 날 이완용 아들인 이항구와 이완용의 생질인 한상룡이 당구를 치고 있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쳐 그 고목을 반으로 잘라버렸다. 이항구가 겁을 먹고 방안에 들어가 이불을 둘러쓰고 있자,이완용이 "벼락친 다음에 도망쳐야 쓸데없는 일이다"하며 침통한 표정을 짓더라고 한상룡이 회고해놓고 있다.
천심의 의당한 응징이요,우국 고목의 살신성인이 아닐 수 없다. 그 이항구의 손자요 이완용의 증손자가 캐나다에 이민가서 살고 있는데 작년에 돌아와 이완용의 상속된 땅을 여기저기에서 되찾아 가짐으로써 민족감정에 두드러기를 일으키고 있다.
일제의 강제 병탄 후 공로자들에게 나라판 돈을 나누어 주었는데 매국 일등공신인 이완용에게는 가장 많은 15만원을 주고 있다. 당시 왕실의 연간 유지예산이 75만원이었던 것과 비교해 보면 그 액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병탄직후 이완용의 재산이 1백만원을 웃돈다는 일본인의 기록도 있다. 왜 그렇게 재산을 탐하느냐고 묻자 친일파로 매도당하는 판에 재산이라도 없으면 나의 후손들은 굶어죽게 될게 아니냐는 것이 그의 축재 명분이 었다. 그렇게 해서 그 나라판돈으로 여기저기 사놓은 땅을 1백년후에 그의 후손으로 하여금 거두어 갖게 한 것이 되니 명분이 훌륭히 수행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병 가운데 고질로 과거를 쉬 잊어버리는 망각병을 들 수 있다. 하와이에 진주만 잊지말자 라는 이름의 대폿집이 생각난다. 진주만 기습 때 파괴된 군함 위에 차린 술집으로, 전국에서 마치 성지순례하듯이 찾아들어 적개심을 자손대대로 물리고 있음을 보았다. 예루살렘에 할 하지카론이라는 불망의 집 이 있다. 유태인 학살의 소름끼치는 비인도적 만행의 증거물이 전시돼 있는데 모든 국민학생의 야외 수업장이 되고 있었다. 독일에서는 나치스의 만행을 추적 체포하는 특무경찰이 지금도 활동 중이라고 들었다.
다습하고 비가 많아서 쓰레기가 쉬 떠내려가고 쉬 썩어 문드러져 사라지기 때문인지 잊지말아야 할 뼈에 사무치는 일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이완용의 망령이 여기저기 수십군데에서 되살아나 용용 죽겠지하고 약올리고 있는데도 이렇게 담담할 수가 있는 것은 기억상실 증후군이 민족적으로 확대된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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