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가난했던 옛날 대가족 집안에는 보통 여남은명씩의 아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아랫목에 요때기 하나만 깔아주면 여남은놈이 발만 묻고 부채꼴로 나란히 자고 일어나곤 했던 것이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같이 상충(相衝)하며 살기에, 남을 위해서 내가 뭣을 양보하고 뭣을 주장하며 또 하고 싶은 일도 참고, 하기 싫은 일도해야 하는 공존공생(共存共生)의 지혜를 알게 모르게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들이야 가난해서 어찌할 수 없어 공생공존의 좋은 지혜를 부수입으로 얻었지만, 지금 선진국들에서는 아이들을 거실이나 공부방에 리빙 룸으로 끌어내어 더불어 놀고 공부하고 돕다가 한 방에서 어울려 자는 새 생활풍조가 중산층에 보편화하고 있다 한다.
<아틀랜틱>지에 실린 뉴욕대학 포스트만 교수의 논문에 의하면 독방(獨房)에서 혼자 자란 아이와 둘 셋이 자란 아이들의 장시간에 걸친 지능발달과 사회적응 정도를 추적 조사했더니, 한 방에서 보다 많은 아이와 더불어 자랄수록 지수가 상승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리버사이드지구 아이들의 성적이 전국 평균보다 13개월내지 23개월이나 빠른 것으로 드러나 원인을 추적해 보았더니 자모(子母)들간에 공부방을 폐지, 혼자 있는 시간을 극소화시킨데서 얻은 성과로 판명된 것이다.
이웃 일본서도 공부방을 주면 공부량이나 집중력이 커질것이란 통념은 환상이라는 연구 결과가 비일비재하다. 시험 때만 빼놓으면 완전히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그 밀실(密室)의 시간이 선용(善用)되는 비율은 겨우 8%에 불과하다는 충격적인 연구며, 장성한 후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속에서 소외되어 반사회적(反社會的)이고 반지적(反知的)이며,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반윤리(反倫理)의 심리적 온상(溫床)으로 이 밀실 양육(養育)이 지적되기도 했다.
흥미있는 연구로서 일본의 60년대 학생운동 때 책상을 꺼내어 바리케이드를 쌓고 책상에 불을 지른 학생 36명을 대상으로 심리검사를 했더닌 88%가 공부방에서 하기 싫은 공부를 강요받은데서 무의식(無意識) 중에 축적된 책상증오나 책상공포의 소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도 생활공간에 공부방을 두는 율이 격감하는 추세라고 한다.
우리 부모들은 공부할 환경 혜택을 받지 못했던 어릴적의 빈곤보상으로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아이들의 공부방만은- 하는 비원(悲願)에 사로잡혀 있는데 예외가 없다. 연전에도 공부방 때문에 자실한 시어머니가 있었다. 공부방을 만들어 달라고 치근대는 딸년을 달래는 어멈의 말을 흘러듣고 충격을 받아 죽은 것이다. "할머니 방이 네 방이 될텐데 그 동안을 못참아-"하는.
이번에도 할머니 하나가 투신자살로써 손자들의 공부방을 비워주는 비극이 야기(惹起)되고 있다. 공부방 무용론이 활발히 논의되고 실천돼야 할 시기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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