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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경조환(慶弔換)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5.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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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촌락사회에서 사는 사람을 메주콩으로, 도시사회에 사는 사람을 날콩으로 비유하는 시각이 있다.

 

됫박 속에 든 날콩은 됫박이라는 규격(規格)과 계약(契約)의 테두리 속에서 질서정연하게 공존(共存)을 하지만 일단 됫박에서 부어져나가면 남남이 되어 사방발팡으로 자유분방하게 흩어져 나간다. 곧 공공질서만 지키면 그렁저렁 살아지는 것이 도시사회다. 이에 비해 촌락사회는 삶아 놓은 메주콩처럼 외적(外的)인 규제를 초월해서 내적(內的)으로 뭉쳐져있는 심정적(心情的) 결속체다. 메주콩에는 날콩에서 볼 수 없는 점액성(粘液性)의 끈적한 실이 나와 접착을 모색한다. 그 실이 바로 심정인 것이다.
 
그래서 도시사회는 외적으로 묶은 규제나 규칙이 발달하지만 촌락사회는 내적으로 끈끈하게 접착하는 심정 문화가 발달한다. 이 메주콩 의식을 부양해온 대표적인 문화 유산이 부조금(扶助金)이다. 이 상부상조하는 메주콩문화 덕택으로 그토록 가난에 찌든 우리 농촌이었으면서도 조금도 각박하지 않게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을에 애경사가 나면 부조(扶助)를 하는데 생계(生計)를 상중하로 대별하여 잘 사는 상급 가문의 애경사(哀慶事)는 부조금을 내지 않고 몸으로 때우는 것이 관례요, 중하급 가문에만 부조를 하는데, 이율곡 선생의 해주향약에 보면 쌀 한되씩이 상식으로 돼있다. 향약(鄕約)에 따라서는 가진 사람은 좀 많이 내고 못사는 사람은 조금 추렴해서 쌀 닷말을 채워 공동부조하는 것으로 약정해 놓고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별나게 발달한 부조문화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전통이긴 하나, 그것이 기생할 문화적 근거는 사라진 지 오래다. 첫째 도시화의 진행으로 메주콩이 아닌 날콩으로 변질되어있어 심정적 결속수단으로 부조의 의미가 약화돼 있디는 점이다. 둘째로 그만한 부조를 받아야 할 만큼 가난하지도 또 어렵게 살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도시의 중산층은 옛날 촌락의 상급가문보다 훨씬 잘 사는 데도 부조가 오가고 있는 것이다. 셋째 옛과는 달리 잔칫집처럼 오래 못만났던 친지와 회포를 풀 오붓한 시간과 공간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거기에다 부조의 경제적 가치보다 그 부조를 내기 위한 시간과 교통난이라는 부가가치를 감안하면 새시대에 달라져야할 굴지의 병폐(病弊)가 아닐 수 없다. 이 부조의 부작용과 모순을 개선하는 차원에서 우체국을 통해 보내는 경조환(慶弔換)을 활성화하는 일일 것이다. 식장에는 꼭 가볼 소수의 사람만 가고 축하하고 싶은 사람은 인근 우체국을 이용하거나 아예 청첩장에 온라인 번호를 적어 송금토록 관례화했으면 싶다. 경조환 이용률이 해마다 60%대로 상승하고 있으며 올들어 급상승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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