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규태 코너] 선잠단제(先蠶壇祭)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6. 08:39

본문

[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우리 옛 조상들 며느리감을 고를 때 누에를 몇번 쳐보았는가로 자질을 가늠하는 관습이 있었다.

 

아홉번이면 업어가고, 다섯번이면 손잡고 가며, 세번이라면 그냥 두고 돌아간다는 말까지 있다. 부잣집에서 누에칠 일 없이 곱게 자란 처녀도 시집갈 나이가 되면 일부러 누에를 치게하여 이 결혼조건에서 소외되지 않으려했다. 누에 치면서 터득되는 조심성과 세심성이라는 인생의 교훈을 얻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누에 다루기가 갓난애나 아침 굶은 시어머니 다루기보다 더 조심스럽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누에에 먹일 뽕을 썰 때 보릿짚 위에서 썰었느냐 도마 위에서 썰었느냐, 도마면 잣나무 도마냐 괴목도마냐로 고치의 질이 좋아지고 나빠지곤 한다. 누에는 냄새에도 민감하다. 측간의 악취(惡臭)도 싫어 하지만 제사 지낼 때 피우는 향도 싫어 한다. 이웃방에서 고기나 생선을 구워도 안되고 서남풍이 불면 밭에서 일하다가도 달려와 그 바람을 누에로부터 막아 주어야 한다. 이슬 맞은 뽕을 먹인 누에고치 실은 잘 끊어지며 비맞은 직후의 뽕은 고치실에서 누런 기운이 돈다.
 
누에 기르면서 하지 말아야 할 터부(禁忌)도 많기도 하다. 누에 옆에서 방아를 찧어도 안되고 집안에 곡성(哭聲)이 나도 안된다. 그래서 상중(喪中)인 집안에서 삭망(朔望)상식을 올릴 때면 곡을 생략하게 돼 있다. 월경중의 여인이 잠실을 드나들거나, 시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들었다던가, 스트레스 받은 상태에서 잠실을 드나들면 흉잠(凶蠶)의 원인이 되었다.
 
이만한 조심성과 세심성으로 시집살이를 한다면 좋은 며느리가 아니될 수 없었음직 하다. 잠신(蠶神)을 모시는 관습도 널리 채집되고 있다. 가장 보편적인 잠신이 집집마다 모셨던 우씨공주이다. 그리고 동제(洞祭)를 지낼 때마다 부신으로 제단의 한쪽에 우씨공주의 신위를 모셔 두기도 했다. 여염(閭閻)에서 모신 잠신이 우씨공주라면 국가규모로 모셔 내린 잠신은 서릉씨다. 황제의 비(妃)요, 양잠(養蠶)의 창시자로 알려진 여신(女神)이다.
 
먹여주는 선농신(先農神)과 입혀주는 선잠신(先蠶神)의 제사는 국가 대제로 고려 때부터 단(壇)을 만들어 극진히 모셔내려 선농단(先農壇)은 동대문 밖 제기동에, 선잠단(先蠶壇)은 동소문 밖 성북동에 그 단터가 남아 있다. 임금이 행차하여 제를 지내고 다음과 같은 축문(祝文)을 읽게 마련이었다. 조선국왕 아무개가 서릉씨신 앞에 엎드려 고하나이다. 신께서 잠업을 시작하시어 우리 백성에게 혜택을 주었사오니 이에 감사하는 뜻에서 희생을 하여 바치나이다.
 
마지막 선잠단제를 올린 지 85년만에 오늘 이 제사가 옛 자리에서 예대로 재현된다고 한다. 다만 우리 섬유산업의 발전과 수출 증진을 빌어야 될지- 기원내용만은 예대로 일 수 없으니 그것이 무상할 따름이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