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년 전인 1922년 10월 6일자 <조선일보>는 발행되자마자 당시 총독부 경찰국에서 압수해갔다.
당일자 신문에는 그들 비위에 거슬린 기사가 두 건이나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가 개각된 상해 임시정부의 각료들 명단이었다. 국무총리 노백린, 내무총장 김구, 외교총장 조용은, 법무총장 홍면희, 재무총장 이시영, 학무총장 조성환, 군무총장 유동열, 교통총장 이탁.
이역땅 상해에서 70여년동안 방황하던 그 노백린의 유혼이 고국땅에 돌아오게 됐다.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로 해산당했을 당시 노백린은 무관학교 교관으로 있었다. 당시 교관들은 두 파로 양분되었는데 이병무-이희두-조성근-노담 등은 일본군의 장관으로 편입되고, 노백린-김희선-이갑-유동열 등은 독립운동으로 살신성인(殺身成仁)하고 있다.
신문을 압수하게된 당일자의 다른 기사는 기사가 아니라 부고(訃告) 광고였다. 한국신문사상 광고때문에 신문이 압수당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다름아닌 상해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요원의 부고였기 때문이었다.
그 부고의 전문을 옮겨보면 이렇다. 신규식 사망광고라 하고, 신규식 선생 국사에 통심하야 와병육삭 이세에 제하야 9월1일자부터 불식 불약 불언 25일에 별세하얏삽기 자에 부고함. 0000년 9월25일 호상 이동영 이시영 백순 노백린 홍선 조진구 라 격식을 갖추고 있다. 부고에 공란을 네개 둔것은 일본 연호를 쓰지 않고 네 자리수로 나가는 단군기원(壇君紀元) 연호를 암시하기 위함이었다. 굴욕적인 을사조약이 강제로 맺어지던 날 신규식은 분통을 가눌길 없어 음독을 했는데, 그 여독으로 오른편 눈이 흘겨졌고 못마땅한 세상을 흘겨보는 사람이란 뜻인 예관(倪觀)을 호로 삼아 근심과 병과 굶주림으로 평생을 살다가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흘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란 뜻인 <예목루>라는 시문집 한권 남겨 놓고서-. 그 예관도 이번에 환혼(還魂), 흘긴 눈을 바로잡게 되었다.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의 주필을 역임한 언론인이요 학자인 박은식이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유럽 각국 신문들은 폴란드의 음악가 대통령인 파데레프스키에 비유, 동방의 파데레프스키 로 대서특필했다던 그 원혼도 이번에 돌아온다. 중국 정부가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공인하는 정치적 복선까지 깔린 이번 임정 수뇌부의 환혼은 광복 후 임정요원의 환국에 버금가는 역사적 의미를 지녔다 할수있다.
다만 광복 반세기가 가까워 오도록 이 원혼(怨魂)들을 이역(異域)땅에다 버려둔 책임의 색출(索出)은 역사의 몫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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