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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암행감찰(暗行監察)제도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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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

 

광한루 삼문짝을 나무망치로 두들기며 어사 출또요!를 벽력같이 세번을 외치니 잔치판이 난장판으로 돌변한지라 밟히는게 음식이요 깨지는게 그릇이며 장고는 요절하고 북통은 등이 터지며 기생들은 비녀잃고 화젓가락을 꼽았으며 종놈들은 벙거지 잃고 전골판 쓰고 돈다. 통인놈은 인궤 잃고 수박덩이 안고 돌고 취수는 나팔 잃고 주먹을 입에 대고 뚜뚜한다.
 
<춘향전>의 어사 출또 장면이다. 이렇게 하여 남여 높이 타고 어사가 들면 사정에 해당되는 수령을 잡아 대령시키고 이어 봉고-곧 창고문을 잠가 재정봉쇄를 한다. 암행어사의 임명은 임금의 특명 사항으로 정승, 판서와도 상의없이 독단적으로 선택해서 파견했던 것이다.
 
어사직급은 지금으로 치면 이사관급인 당하관이하의 벼슬로서, 불시에 대궐로부터 부름을 받고 들면 나를 대신한다 는 친필증서와 살필 내용 살필 지방 등을 적은 봉서를 수여받는다. 이렇게 특명을 받은 어사는 집에 들러서도 안되고 또 그 봉서는 남대문이나 동대문 밖에 나와서야 뜯어보게끔 되어있었다. 비밀 보장을 위한 법도가 그토록 삼엄했었다.
 
신라 파사왕 11년에 10명의 어사를 암행시켜 부정한 수령들을 파직시킨 것이 기록상 최초의 암행어사요 한말 고종 말년께 이면상이 최후의 암행어사가 돼있다. 숙종 연간에 황해도 암행어사를 배명받고 써남긴 박만정의 <해서암행일기>에 보면 어사 일행의 노자가 모자라 잠을 빌었지만 거절당해 노숙을 하는 등 고초가 심했음을 미루어 어사의 경비는 형편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조선조의 어사출또기록들을 보면 부정부패보다 비인도적인 행위에 대한 응징빈도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어느 한 눈먼 노파가 굶주려 죽어가는 것을 보고 동헌을 찾아가 살펴보았더니 군수의 선정비를 세우는데 희사한다는 형식으로 절반 이상을 놓고가는 사람에게 구호대상 여부와 아랑곳없이 구호양곡을 나눠주고 있음을 적발한 것이라든지-. 곧 지위가 높거나 세도가 등등하거나 많이 가진 자나 신분이 높은 자가 상대적으로 낮은 자들에게 가하는 반인권 반인도의 횡포에 대한 암행감사가 많았으며 태평세월이니 성군시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인권 인도 어사가 성했음을 알 수 있다.
 
감사원은 공직자 때문에 형성된 민원들을 고발받는 옴부즈맨제도를 도입, 직원을 암행시켜 사실여부를 확인한다음 처리하는 암행감사제도를 도입키로 했다 한다. 현대판 암행어사가 아닐 수 없다. 당부하고자 함은 사직의 손이 잘 미치지 않은 반인권 반인도적 행위에 그 감찰이 집중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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