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목들은 그 한그루 한그루가 한국의 문화사(文化史)다.
이를테면 서울 회현동 2가 36에 서있는 우람한 은행나무는 충목(忠木)이다. 임진왜란 때 최후까지 지켜낸 아군(我軍)의 보루(堡壘)구실을 했다하여 앙심(怏心)을 먹은 왜병(倭兵)들이 이 은행나무를 도끼로 찍어 없애려 들었다. 도끼질을 하자 시퍼런 피가 튕겨져 나오는 지라 왜병들은 겁을 먹고 중단했다는 충목이다. 의정부 신곡동에 있는 느티나무도 충목이다. 일제 때 이 나뭇가지를 베어 경비행기의 프로펠러를 만들어 달았는데 공교롭게도 이 나무 프로펠러를 단 비행기가 하루거리로 잇달아 추락했던 것이다. 곧 이 나무에 깃든 우국 충정이 그렇게 한것으로 당시 억울한 백성의 울분을 풀어주었던 것이다.
강화 정족산성 안에 있는 은행나무는 불의(不義)를 감시 고발하는 의목(義木)이다. 이 나무에 열린 은행은 굵고 약효가 좋아 진상품이 돼왔는데 임금이나 수령이 선정(善政)을 베풀면 열리고 악정(惡政)을 베풀면 열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일제 36년동안은 단 한번도 열린 적이 없었다 한다. 정사의 의로움을 감지하여 결실여부(結實與否)로 고지(告知)하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현풍에는 열녀목(烈女木)이라는 고목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겁탈하러든 왜병을 피해 열입곱살 난 허녀가 이 나무밑동을 부둥켜 안고 저항을 했다. 이에 왜병이 한손을 칼로 자르자 다른 한손으로 버티었고 다시 그 한손마저 잘라놓고 가버렸던 것이다. 팔이 없는 허녀는 입으로 붓을 물고 시를 쓰며 산사를 유람하며 살다 죽었던 것이다. 1백여년 전만 해도 살아남아 있었다던 그 열녀목은 마을 처녀들이 계를 하여 사월초파일에 제사(祭祀)를 지내 그 원혼을 달랬다고 한다.
애정(愛情)이 꽃피는 나무도 적지 않았다. 가까이서 자란 두나무의 가지끼리 합쳐 한나무가 되었을때 연리목이라 하여 나라에서는 상서로운 조짐(兆朕)으로 받아들였고 여염(閭閻)에서는 이 나무에다 빌면 금실(琴瑟)이 좋아지는 것으로 알았다. 이 연리목에 올라가 기도를 하면 마음에 둔 연인은 그 날밤 상사병이 나 잠을 못 이룬다고 알았다. 내외가 싸움을 했거나 불화할 때 손잡고 이 연리목을 돌면 화해가 되며 연리목 나뭇잎을 달여 먹으면 속살이 찐다. 속살이 찐다는 것은 성적 감성이 강해지고 아들 낳을 음력이 강해진다는 뜻이다.
우리 한국의 고목에는 이처럼 무슨 사연이 깃들게 마련이며 그 사연이란 우리 한국민중의 공감대(共感帶)에서 형성됐다는데 일관되고 있다. 곧 한국의 고목은 한국 민중(民衆)의 문화사였다. 그 문화를 내포한 대표적인 고목들의 유형 무형의 모든 것을 조사 보존하기로 했다 한다. 우리 민중의 풍습이나 정신이 적지아니 그 나무에 기생하고 있어 더욱 기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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