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규태 코너] 물꾼 이야기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6. 09:26

본문

[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생수시판의 양성화로 서울에는 1백년 만에 물꾼이 재등장하게 됐다.

 

한양시절 서울에는 웬만큼 사는 소수의 몇집 빼놓고는 울안에 샘이 없었다. 그래서 단골 물꾼이 물지게로 날라다 주는 생수를 사먹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었다. 울안에 샘을 둔 집들도 식수이외의 용도를 위해 특정의 물을 주문해 썼기로 물꾼산업은 성업을 이루었었다.
 
한양풍수의 주산인 북악산을 중심으로 인왕산에서 흐르는 물을 백호수 삼청동 뒷산에서 흐르는 물을 청룡수 남산에서 흐르는 물을 주작수라 하여 법통있는 집안에서는 장담그는데는 청룡수, 약달이는데는 백호수, 머리감는데는 주작수-하는 식으로 용도별로 물을 가려 썼던 것이다.
 
물꾼이 날라다 파는 물가운데 가장 값비싼 물이 우중수인데, 한강을 흐르는 물로서 먼지앉는 윗물도 아니요 고여 흐르는 아랫물도 아니며 시냇물이나 논물이 끼어흐르는 갓물도 아닌 청정한 복판물이 우중수다. 북촌의 양반집들에서도 사랑에 당상관 손님이 왔을 때만 우중수로 차를 끓여 냈을 만큼 값비싼 물이었다. 이 생수를 나르는 물꾼의 이권이 커지자 단골영역이 생기고 그 급수권은 자손대대로 상속되는 것이 관례였다. 물꾼의 가업을 전승할 때는 녹심첩으로 불리는 단골 명단을 물리는데, 녹심첩에 적힌 고객간에도 같은 물 먹는 사이라 하여 초상이 나면 심상을 입는 등의 친밀관계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이 물꾼들 조합을 도가라고 했는데 그중 전통있고 광역을 지배했던 것이 북청도가였다. 이 북청도가에서는 북청사람이 상경하면 숙식을 제공하고 글 잘하는 자제를 한양에다 유학, 출세를 시키기도 했다. 바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장에서 침략국 일본을 규탄하고 분사했던 이준열사도 바로 이 도가에서 도움을 받은 북청 소년이었다.
 
물꾼 도가에서는 건각을 위해 오월 단오날과 구월 중양절에 물짐 지고 달리기 경주를 하고 잔치를 벌이곤 했다. 바로 그 건각 챔피언으로서 재상 반열로 출세한 분이 이용익 대감이다. 명성황후의 친정조카인 민영익이 이용익의 발이 빠르다는 소문을 듣고 입궐했을 때 주상에게 그 말을 했다. 주상은 흥미를 갖고 이용익을 불러 전라감사에게 심부름을 시켰는데 한양~전주 5백리길을 12시간에 주파하고 있다. 만약 당시에 올림픽이 있었다면 손기정 황영조 이전에 챔피언이 탄생했을 뻔했다.
 
수돗물의 불신에 반비례 해서 생수 수요가 늘더니 이제 그 판매가 합법화될 법적 바탕이 보장되어 1백년 만에 물꾼문화가 다시 형성될 판이다. 문제는 옛날 녹심첩으로 맺어진 단골 관계처럼 불신이 없는 물장수가 아니라 붙어 다니게 마련인 불신을 어떻게 불식하느냐가 물장사의 성패를 좌우하리라고 본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