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세배 가면 덕담을 하는데 가문에 따라 덕담 대신 그 사람의 행실이나 처세를 감안해 교훈이 될 한자 하나씩 써서 주었는데 이를 덕필이라 했다.
서당에서 공부를 마치고 떠나가는 학동들에게도 훈장이 봉투 한 장씩을 나누어주기도 했는데 그 봉투 속에 돈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요 성적표가 들어있는 것도 아니다. 집에 돌아와 단정히 무릎꿇고 앉아 봉투를 펴보면 한자 한 자 붓글씨로 크게 쓰인 종이가 나온다. 그 아이를 지켜본 스승이 앞날에 가장 마음을 써야할 훈계되는 뜻이 담긴 한자인 것이다. 이를 거처하는 방 동쪽 벽에 붙여놓고 하루 하루 처세에 조심했던 것이다.
남명 조식이 슬하에서 공부를 하고 벼슬길 떠나는 정탁에게 "뒤란에 소 한 마리 매어놓았으니 몰고 상경하라"했다. 뒤란에 가보아도 소가 없는지라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고 여쭙자 "자네는 기가 민첩하여 날랜 말만 같다. 날랜 말은 넘어지기 쉬우니 더디고 순한 것을 참작해야 비로소 멀리 갈 수 있을 것이기에 소를 준다는 것이네"했다. 정탁은 이 스승이 내린 덕담의 '우(牛)'를 평생 거느리고 사는 바람에 벼슬이 정승까지 올랐다고 만년에 말하곤 했다.
이같은 덕필 관행이 일본에도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해마다 연말에 그 해의 세상을 상징하고 앞날의 교훈으로 삼는 올해의 한자를 공모선정 발표해 왔는데 올해는 '금(金)'자로 선정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시드니 올림픽에서 따낸 금메달, 그리고 김대중 김정일 '양금'에 의한 남북정상회담, 금융파탄을 든 금자인데 일본보다 우리나라에서 선정됐어야 할 2000년 상징한자라는 편이 옳다.
올림픽 금메달수도 일본보다 많고 '양금' 정상회담은 한반도에서 있었던 일이며, 금융파탄도 부정대출, 부실금고, 예금인출, 부실펀드, 주가조작, 감독기관유착, 금융기관에서의 횡령, 줄행랑 등 금자 소용돌이의 강도면에서 일본은 약과다. 100년 전에 동해에 침몰한 러시아함정에 100조원어치의 금괴가 들었다 하여 연말 주가를 춤추게 하여 금자 한해의 대미까지 장식했다.
로마신화에서 돈의 여신 주노 모네타는 경고(警告)의 여신이기도 하다. 바로 경고한다는 모네타란 라틴말이 서양의 '금'인 머니의 어원임은 바로 금자 한해에 시사하는 바 크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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