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광성포대에서 있었던 고종 초의 한·미전쟁 때 '수(帥)'자 군기 아래 한국군 포수 4명이 그 깃대에 몸을 꽁꽁 묶고 끝까지 저항했다는 미군측의 기록이 있다.
깃발을 빼앗기면 패배라는 의식은 동서가 다르지 않으며 깃발을 둔 조상들의 심정적 집념이 눈물겹기만 하다.
이처럼 깃발은 존망을 상징하는 것이요 따라서 구심체로서 그것을 빼앗기면 지리멸렬 이산을 의미한다. 그 깃발의 국가 확대가 국기다. 그 나라 국민을 결속시키는 구심체로서의 쓸모가 국기에는 있는 것이다.
2차대전 때 적지 이탈리아에 상륙한 미군 가운데 이탈리아계 병사가 적지 않았다. 이때 바튼 사령관은 이들에게 피를 따르겠느냐 성조기를 따르겠느냐 택일하도록 했다. 병사들은 앞다투어 나와 성조기의 기수가 되겠다고 했다.
이처럼 미국사람들에게는 피보다 진한 국기다. 왜냐면 그들은 미국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미국사람이 된 사람들이다. 각기 나라와 언어 문화 종교 관습이 다른 수십 민족이 한 나라를 만들고 있기에 이들을 구심시킬 매체로서 국기의 비중은 막대하다.
미국에는 관공서 학교는 말할 것없이 주유소에도 성조기가 나부끼고 푸줏간 계산대에도 놓였고 유모차에도 달고 다닌다. 그래서 미국사람들은 하루에 18번 성조기를 보고 산다는 통계도 있다. 잡동사니로 자유분방해 무력한 것 같은 미국사람들이 나라가 위기에 닥쳤을 때 강력하게 결속하여 무적이게 한 것도 그 국기 구심력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그 구심력을 잃고 있다. 다섯살 때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 구미 사대주의 아니고는 행세를 못한다는 청소년이다. 모든 문화에서 정체성이 증발, 피부는 황색이면서 속은 백색사고를 하는 바나나족과 바나나문화가 판치고 있다.
정치 경제는 백성으로부터 이반하여 동파하고 금융은 권력과의 결탁이라는 여운을 남긴 채 불신을 다져 돈줄은 외국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같은 구심력의 약화를 나라를 등지는 이민의 급증이 입증하고 있는 작금이다.
왜 하필 이런 때 각급학교에서 구심력을 다질 수 있는 단 두 번의 기회인 국기 게양식과 하강식마저 폐지하러 드는지 모를 일이다. 제국주의의 악몽과 직결된 일본같으면 모른다.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폐지한다는 것은 대국적 견지에서 망국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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