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의 생김새에 대한 기록으로 '죽창한화'를 들 수 있다.
저자인 이덕형이 난리를 당해 진안으로 피란을 가 있는데 이웃에 73세의 노인이 있었다. 13세에 군보로 번들어 연산군이 거동할 때 호위하는 역군으로 근무했는데 그 당시 연산군의 모습을 이렇게 말했다. 얼굴빛은 희고 수염이 적으며 키가 크고 눈에 붉은 기운이 돌았다고ㅡ.
연산군이 뚝섬에 자주 행차했는데, 임금이 자리를 잡으면 곁에 기생만 남기고 둘레를 물린다. 목책 안에 암말 수백 마리를 풀어놓고 이어 수말 수백 마리를 그 목책 안에 몰아넣는다. 암수가 발로 차고 이를 드러내 희희닥거리며 교정하는데 산골작이 진동했다고 그 노인은 당시를 회고했던 것이다. 이처럼 뚝섬에는 국초부터 30~40리에 펼쳐진 목가적인 목장이 펼쳐져 있었다.
또한 뚝섬은 임금님이 열무하는 연병장이기도 했다. "북과 종소리가 지축을 흔들고/ 갖은 깃발이 줄이어 하늘에 나부낀다"고 정도전은 이 뚝섬 열무를 읊고 있다. 뚝섬이라는 지명도 바로 이 열무와 무관하지 않다. 뚝섬을 한자로 독도로 표기하는데, 바로 독이란 쇠꼬리나 꿩꼬리로 장식한 장군기를 일컬으며, 이를 모시고 무운안보를 빌었던ㅡ 우리나라에 희귀한, 그래서 재조명해야 할 군사민속이 이곳에 있었기에 뚝섬이란 이름을 얻은 것이다. 통영 독지 몽댕이에 남아있는 이 독제지나는 것을 보면 1년에 경칩과 상강 두 번 제사를 지내는데, 대장기를 모시고 궁시무·창검무 등으로 진행, 무운을 빌고 안보의식을 창달했던 것이다. 뚝섬에 부활하고 싶은 전통정신의 축제가 아닐 수 없다.
서울시는 뚝섬에 뉴욕의 센트럴 파크같은 대규모의 공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실현되면 한국에서 가장 큰 인공공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역사를 재현하는 목장이나 독제를 부활시키고, 또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돌다리 가운데 하나인 살곶이 다리(전관교)가 여기에 있기에 한국고금의 갖가지 다리를 재현하는 다리 박물관을 만들 수도 있다. 한말 최초의 상수도가 이곳에서 비롯됐음을 빌미로 한국의 식수문화의 변천현장을 재현해놓을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