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처럼 나무를 살아있는 사람처럼 여기는 문화권도 없을 줄 안다.
이를테면 나무를 다루는 목수들은 판자가 뒤틀리면 나무가 꿈틀거린다 하고, 많이 뒤틀리면 나무가 실성했다고 말한다. 나무를 응달에 말릴 때 이를 아이들 재우듯이 재운다고 하고, 못질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다치게하지 말라고 했으며, 가급적 못질 대신 요철을 맞추게 했는데 이를 달랜다고 했다. 생명이 없는 재목에까지 인간적 배려를 했으니 살아있는 나무임에랴.
정월 대보름 날 전야에 대추·밤·호도·감 같은 열매나무들은 시집까지 보냈다. 남성의 성기를 닮은 갸름한 돌을 이 열매나무의 Y자 갈림목에 꼬옥 끼워줌으로써 성행위를 유감시킨다. 이를 나무 시집보낸다 해서 가수라 했으니 나무 시집까지 보내준 식물 인간애의 문화를 동서고금 어디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나무 간지럼이라 하여 과일나무에 물이 오를 때면 긴 장대로 역시 그 Y자 가지 갈림목을 비벼주면 열매가 많이 열리는 것으로 알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이를 못 낳았거나 생식력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을 때 나무서방을 사타구니에 꼬옥 껴안고 자는 관행도 있었다. 서방나무는 백귀를 물리치고 성력을 강화시켜주는 것으로 알았던 복숭아 나뭇가지이어야 하고, 양기 곧 햇볕을 많이 받은 동쪽으로 뻗은 도동지일수록 효력이 크다고 알았다. 이 나무서방을 만들기 전에 사악함을 쫓는 뜻에서 나무목욕을 시켰다.
아들을 낳으면 선산에, 딸을 낳으면 밭두렁에 그 아이 몫으로 '내 나무'를 심는데, 딸이 시집갈 때 그 내나무로 농짝을 만들고 아들이 죽으면 그 내나무를 잘라 관을 짰다. 내나무는 공동운명체이기에 내가 앓거나 불행해지면 내나무에 가서 빌었고 내가 급제하면 내나무에 가서 감사드렸다. 이 내나무 빌기의 날받이를 하면 그 전야에 목욕재계 하듯이 그 내나무 밑둥을 목욕시키는 관례가 있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고목인 서초동의 명물 830세 된 향나무가 300만원짜리 호화 목욕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민속관행에 의한 나무목욕이 아니라 도시 매진을 씻기 위한 목욕이긴 하지만, 이를 계기로 한국인의 식물 인간주의를 되뇌어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