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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뚜루 마뚜루] 끝낼 수 있을 때 끝내야…아쉬웠던 포스트시즌 순간들

--홍윤표 야구

by econo0706 2022. 11. 1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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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07.

 

프로바둑 기사들은 한 판의 대국이 끝나면 서로 마주보고 앉아 ‘복기(復棋)’를 한다. 착점을 되짚어보면서 수순이나 수읽기의 착오, 실착이나 패착을 확인하는 것이다. 바둑기사들은 이미 끝난 승부를 놓고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 범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최선의 행마(行馬)를 공부하는 기회로 삼는다.

우리 프로야구판에서 가장 복기를 잘 하는 지도자로는 김성근 전 SK 와이번스 감독이 손꼽힌다. 그는 예전 OB 감독시절부터 한 경기를 마치면 반드시 경기를 되돌아보고 작전의 실수나 오류를 재확인한다. 기자들에게도 자신의 복기 내용을 일러주기도 한다.

 

물론 흘러간 승부를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런 복기 과정이야말로 다시는 승부의 과오를 범하지 않는 한 가지 방편이 될 수 있다.

2013년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을 치른 구단 감독들은 아쉬웠던 순간, 장면들이 아직도 뇌리에서 잊히지 않을 것이다. 관전하는 사람의 눈에는 넥센 히어로즈가 두산 베어스와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잠실)에서 연장 11회 초 무사 3루의 기회를 놓친 것, 두산이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잠실)에서 투수 운용을 헐겁게 하다가 끝내 역전 우승을 내준 것 등이 그렇다.

승부세계에서 가정은 부질없는 노릇이지만 복기는 필요하다. 넥센이 준플레이오프 3차전 연장 11회에 무사 3루의 기회를 놓친 것은 만년 하위 팀의 ‘유쾌한 반란’을 보고 싶어 했던 사람들에게 뼈아픈 좌절감을 안겨주는 일일 것이다. 어느 한순간에 다가왔던 절호의 기회가 물거품이 되면서 넥센의 우승 꿈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염경엽 감독도 경기 후 그 장면(서건창 삼진 뒤 장기영 타석)에서 대타를 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지만, 두고두고 가슴을 때리는 노릇일 것이다.

초인적인 인내와 힘으로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 16경기를 소화하면서  마지막 승부를 연출했던 두산은 이해하기 어려운 투수운용의 빈틈을 보인 것이 패착이다. 어차피 결과론이 되겠지만, 시리즈가 길어지면 질수록 두산이 불리할 것은 불 보듯 훤한 이치였으므로 5차전에서 투수력을 총동원, 끝장을 냈어야했다. 뒤 경기를 염두에 두고 마운드를 운용한 것이 결국 두산의 패권탈환을 무산시킨 꼴이 됐다.  어느 기자의 표현대로 ‘두산은 소심했고 삼성은 과감’했던 것이 승부의 갈림길이었다.

이런 예화가 있다. 두산의 경우와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교훈으로 삼을 만하다.

김응룡 한화 이글스 감독은 삼성 구단 사장 시절 “해태 감독 때  외압으로 우승을 놓칠 뻔했던 적이 있다”고 술회했다.

김 감독이 그런 말을 꺼낸 것은  ‘승부는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틈새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옛 일을 예로 들은 것이다.

1988년, 해태는 빙그레 이글스(한화 전신)와의 한국시리즈에서 광주 1, 2차전에 이어 대전 3차전을 내리 이겨 3연승을 거두었다. 한 판만 더 따내면 해태가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3연패와 통산 4차례 우승을 이룩할 수 있는 문턱에 서 있었다.

그 해 10월23일 대전 4차전을 앞두고 당시 해태 그룹 강남형 부회장과 해태 구단 노주관 사장, 심지어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용일 사무총장까지 나서서 넌지시 ‘기왕이면 관중이 많은 서울에 가서 우승 헹가래를 받는 게 좋지 않겠나.’라며 김 감독에게 양보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주위의 ‘은근한 외압’에 고민을 거듭하던 김 감독은 마지못해 수락 의사를 밝혔다. “겉으로는 좋다고 해놓고 경기를 이겨버리면 그만이지”라고 김 감독은 속셈을 하며 4차전에 나섰으나 웬걸, 3-14로 대패한 데 이어 잠실구장으로 옮겨 치른 5차전까지 2-6으로 내줘 연패 당하고 말았다.

당시 분위기는 ‘선동렬’이라는 국보급 투수를 보유하고 있던 해태의 우승은 ‘따 놓은 당상’처럼 여겨졌으나 승부의 흐름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공교롭게도 1차전에서 삼진 14개(한국시리즈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를 잡아내며 역투한 선동렬이 손가락 부상으로 도저히 출장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해태 구단 고위 관계자들은 물론 KBO 관계자들도 사색이 됐다. 다행히 해태에는 문희수라는 새 얼굴이 있었다. 문희수는 1차전에서 오른손 중지에 물집이 잡혀 강판한 선동렬의 뒤를 받쳐 세이브를 따냈고 3차전 완봉승에 이어 6차전에서 1실점 완투승을 올리며 팀 우승을 매조지 했다. 한국시리즈 MVP도 당연히 그의 몫이 됐다.

어디까지나 가정이긴 하지만 ‘만약 문희수라는 돌출 투수가 없었더라면’해태 우승은 물 건너가고 KBO는 엄청난 파문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 시리즈를 마친 후 이용일 사무총장은 김응룡 감독에게 ‘다시는 그런 부탁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다는 후일담이 남았다.

또 다른 일화다.

1990년, LG 트윈스는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4연승으로 첫 패권을 안았다. 당시 백인천 LG감독은 3연승을 거둔 다음 4차전을 앞두고 삼성 구단 사장이 김종정 LG 구단 사장에게 농담 비슷하게 “이대로 가면 재미없는데. 한번 쯤 져서 서울에 가서 하면 어떠냐.”며 우는 소리를 했다는 얘기들 듣게 됐다.

김종정 사장이 “예를 들어 3승하고 잠실 가서 이기면 어떻겠느냐”고 말을 건넸다. 백인천 감독은 “7차전 가도 꼭 이긴다는 보장을 해준다면”이라고 되받아쳤다고 한다. 하루라도 빨리 승부를 끝장내고 압박감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지도자나 선수 할 것 없이 다 똑같다. 3연승을 했다고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 승부세계이다.

백 감독은 그 소리를 듣고 4차전 선발로 내정돼 있던 김용수에게  농담 삼아  “용수야, 너 하루 쉬고 서울 가서 한 게임 더 할래”라고 물었더니 정색을 하며 “아닙니다. 저는 오늘 선발로 나가야합니다”하고 손사래를 쳤다는 것이다.

사실 그 때 LG는 김용수 말고도 4차전에 선발로 나갈 수 있는 투수가 있었다. 삼성전에 강한 문병권도 대기하고 있었다. 백 감독은 “주위에서 하도 그런 소리를 하니 나도 모르게 느슨해지는 듯했다. 그래서 ‘아, 이렇게 내가 마음을 풀어서는 안 되겠구나’하고 다잡아먹고 예정대로 김용수를 선발로 내보냈다.”고 술회했다.  

‘끝낼 수 있을 때 끝장을 봐야하는 것’, 그 게 프로의 정신이다. 

 

홍윤표 선임기자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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