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1. 27
롯데 투수 송승준은 그의 직구만큼이나 입도 걸다. 부산 사나이답게 행동도 말도 시원시원하다. 원정경기 선발 등판을 앞두고는 대개 더그아웃 대신 버스 안에서 쉰다. 그럴 때면 TV에서 종종 메이저리그 중계를 한다. 보고 있자면 속이 터진다. “점마 저거, 암 것도 아니었는데…”라며 혀를 찬다.
실제로도 그랬다. 송승준은 2001년 싱글A 시절, 조시 베켓(보스턴 레드삭스)과 비교되던 유망주였다. 베이스볼 아메리카에서 매년 선정하는 유망주 순위에서 2002년 베켓은 1위, 송승준은 60위였다. 차이가 좀 나지만 오른손 투수로만 따지면 그리 멀지 않다. 베켓은 올 시즌 보스턴 레드삭스의 에이스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59위는 잘나가는 탬파베이 외야수 칼 크로포드였다. 올 시즌 탬파베이 최고 연봉(410만달러)을 받은 크로포드는 뉴욕 양키스행이 점쳐지기도 한다.
속이 터질 만했다. 송승준은 “딱 한번만, 제발 딱 한번만이라도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었다”고 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두산 이승학도 “제발 빅리그에서 한번만 뛰게 해 줄 수 없겠냐”고 했더니 `웃기고 있네'라는 답을 들었단다. 손혁이 재활을 선택했던 것도 그 빅리그 딱 한번을 위해서였다. 롯데 최향남이 여전히 계약서에 떠날 것을 미리 보장받는 것도 그 딱 한번의 소원을 풀고 싶어서다.
이처럼 수많은 이들의 꿈인 메이저리그에 가고 싶어서 몰래 자신의 이름을 집어넣은 이도 있었다. 이른바 메이저리그 `유령 선수' 사건. 메이저리그의 공식 기록 독점에 저항해 `기록 공개 운동'을 펼친 팬들은 1980년대 중반, 메이저리그 기록 모음집인 `야구 백과사전'에서 루 프록토라는 선수를 찾아냈다. 1912년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에서 뛰었던 프록토는 1경기, 1타석에 들어서 볼넷을 얻은 것으로 돼 있었다. 그러나 실제 선수가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기록을 전송하던 `전신원'인 그가 박스 스코어에 자신의 이름을 슬쩍 집어넣은 것이었다.
물론 이유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고 싶어서다.
한국 프로야구에는 그 반대가 있다. `도루는 달리기와 다르다'는 걸 증명할 때마다 거론되는 남자 육상 100m 한국신기록 보유자 서말구(해군사관학교 교수)다. 84년 롯데 입단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대주자로 나갔다가 아웃됐다는 게 전설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믿지만 실제 뛴 적은 없다. 기록에도 없다. 그저 뛰는 방법을 알려주는 인스트럭터였을 뿐이다. 프록토와는 반대로 `유령 선수'다.
유령 선수가 새삼스럽다고? 절대 그렇지 않다. 현대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수십명의 유령 선수가 생긴다. 지금 고3 야구선수들의 미래도 흔들린다. 그 아래도, 아래도. 연쇄작용이다. 지금 무시무시한 유령이 야구를 떠돌고 있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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