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1. 04
지난 5월 나고야 울프독스에서 1년의 짧은 선수생활을 마치고 조용히 한국에 들어왔다. 인천공항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앞으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내가 정말로 좋아했던 일이 무엇인지 말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났다. 격리를 하는 2주 동안 고민은 계속 됐다.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은 욕심과 내 몸 상태, 그리고 이제 할 만큼 했다는 마음 한구석의 안도하는 마음들이 계속 충돌했다. 2주의 시간이 빠르게 지났고, 결국 배구선수 윤봉우는 은퇴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규칙과 규율이라는 틀 안에서 자연스럽게 은퇴됐다. 그러나 씁쓸한 마음은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고, 여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더 이상 시끄럽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여러 곳에서 코치 제안도 받았다. 좋은 제안이었고,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 스스로조차 정확히 알지 못했다. 2주의 격리가 끝난 뒤 일본 생활에서의 짐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른 종목과 비교하면 실패한 해외진출 일지도 모르지만, 배구 그리고 내 자신에게는 상당히 뜻깊고, 값진 경험이었다.
일본에서의 1년을 정리하는 과정은 어쩌면 내 배구인생을 정리하는 과정이었다.
/ 한국배구연맹 제공
배구를 하면서 내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던 경험이 몇 가지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현대캐피탈에서 김호철 감독님을 만나 배구에 대해 전술과 다양한 기술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 처음으로 ‘선수들도 공부를 해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배구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배구선수 생활을 하면서 전환점을 만난 첫 번째 경험이었다.
그 당시 많은 에피소드가 만들어졌을 정도 고된 훈련이었지만, 윤봉우라는 배구선수가 진짜 배구에 눈을 뜨게 하는 시간이었다. 배구의 기술적인 묘미를 알아가는 시기였다. 20대에는 휴가가 거의 없었다. 소속팀과 국가대표팀을 오가며 몇 년간을 쉬지 않고 배구만 했던 것 같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현대캐피탈이라는 팀, 김호철 감독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내 배구가 맞다’라는 속 좁은 생각만 했을 것이다.
/ 한국배구연맹 제공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6년에 내가 좋아했던 현대캐피탈을 나와 한국전력으로 이적했다. 지금은 한국전력이 배구단에 많은 지원과 관심으로 시설이 좋아졌고, 성적도 우상향하고 있지만, 내가 처음 이적했을 때만해도 여러 면에서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보다 인상적인 것은 배구를 대하는 선수들의 모습이었다. 전광인, 서재덕, 오재성 같은 젊은 선수들이 통통 튀는 매력으로 배구를 하는데 훈련을 이렇게 해도 되나 생각이 들었다. 훈련은 물론, 시합 때도 장난기가 오버스러울 정도로 발동하지만, 본인들이 볼을 소유하고 있는 순간에는 무서울 정도로 집중력을 발휘하는 후배들은 규율과 기술이 먼저라는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 있던 나에게 좋은 충격이었다.
한국전력에서의 경험은 ‘기술과 팀 전술로 하는 배구가 맞다’라는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개개인의 실력을 우선해도 된다’라고 바꾸는 계기가 됐다. 참 재미있는 팀 분위기였고, 선후배가 아닌 동료로서 서로에 힘이 되고 보완이 되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내가 가진 배구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 한국배구연맹 제공
/ 일본 나고야 울프독스 제공
일본에서의 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나조차도 일본에 가기 전에는 ‘쟤들은 어떻게 저렇게 하는거야!우리보다 키도 작은 선수들이.....’라는 관심과 궁금증이 있었다. 일본에서 생활하며 우리보다 신체조건이 안 좋은 일본 선수들이 어떻게 좋은 경기력을 보일 수 있는지 함께 훈련하고 경기하면서 알 수 있었다. 아마 한국전력에서의 경험을 업그레이드한 버전이라고 해야할까. 돌이켜 보면 그 당시는 좌충우돌하는 생활을 보냈지만, 결국 나에게 좋은 경험과 비전을 제시해 주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도 비디오를 모은 게 취미였던 나는 일본에서 모은 비디오를 하나씩 열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유소년 팀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의 표정, 수업 방식이 내 마음속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내가 이걸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그날부터 전국에 있는 배구 아카데미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야구와 축구, 농구의 사례까지 알아봤다.
그렇게 1달여가 지났을 때 배구는 전문적인 아카데미가 많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른 종목은 많은 아카데미에서 재능 있는 어린 선수가 지속적으로 배출되고, 성장하고 있는데 배구는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아쉬웠다.
그렇게 5개월이 지나고 난 결단을 내렸다.
서울 한복판에 ‘이츠발리’라는 배구 아카데미를 차렸다. 무모했다. 아니 지금도 무모하다라고 느낀다. 배구만 했던 나이기에 배구 외에는 모든 것이 처음이다. 그래서 낮설고 서툴다. 하지만 배구가 지금보다 더 잘되고, 또 인기있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도전했다. 물론 나 하나로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배구라는 종목이 대중에게 더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비록 선수로는 은퇴했지만, 계속 내가 사랑하는 배구라는 운동 속에서 살고 싶었다. 프로선수로, 국가대표로 코트를 누빌 때처럼 화려한 조명은 아닐지라도 배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힘이 되는 초롱불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내가 아는 것들, 보고 배운 것들을 다 나누고 싶다.
/ 윤봉우 제공
이 글로 시작하는 네이버 스토리텔러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가진 27년간의 선수생활, 13년간 대표선수, 해외 경험을 좋게 봐준 덕에 부족한 글 솜씨지만 내 경험을 나누고 배구팬이 궁금해하는 것들에 답을 주려고 한다. 기사에는 나오지 않는 선수 생활의 이면과 선수들의 속마음, 냉정한 승부의 세계를 살아야 하는 선수단의 분위기 등에 대해 전달하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과 배구의 연결고리가 되어 더 재미있고,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배구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이 제 이야기를 통해 ‘배구덕후’로 만들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
윤봉우 / 전 프로배구 선수, 현 이츠밯리 대표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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