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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우] 1패의 이유가 궁금했다

--윤봉우 배구

by econo0706 2022. 9. 1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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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1. 18

 

은퇴 후, 프로집관러가 된 요즘은 나도 이제 아주 편안하게 TV로 배구를 본다. 이제는 배구를 보는 시간이 휴식시간이 된 덕분이다.

 

선수 생활을 할 때는 TV중계를 보더라도 상대팀에 대한 분석을 위해 선수들의 표정을 봐야했고, 상대 감독님이 작전타임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살펴야 했다. 배구를 즐기기 위한 TV시청이 아닌, 다음 경기를 위한 연습인 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남녀부 구분 없이 배구 중계를 원 없이 보고 있다. 그러던 중에 여자부 현대건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지난 시즌에는 분명 최하위였는데 이번 시즌은 거의 대부분 경기를 이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은 정규리그30경기를 해서 19패나 당했는데 이번 시즌은 개막 후 23경기에서 고작 1경기 패배에 세트 득실율 4.00이라니... 현대건설의 경기를 볼 때 마다

 

◇ ‘어떻게 저렇게 변할 수 있지?’ 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궁금한 것은 절대 못 참는 성격이다. 그래서 곧장 현대건설의 강성형 감독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약속을 잡고 체육관까지 단숨에 찾아갔다.

 

▲ 현대건설 수원 체육관 / 윤봉우 제공

 

현대건설 체육관에 들어서니 내가 경험했던 1위 팀 특유의 분위기가 흘렀다.

 

선수들이 농담을 하며 깔깔대는 웃음 소리와 밝은 표정, 무겁지 않은 긴장감까지… 내가 선수시절 경험했던 것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현대건설 선수들이 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선수들이 훈련을 준비하는 동안 강 감독님과 대화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질문했다.

 

= 감독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강성형 감독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 다들 실력이 있는 선수들이잖아. 선수 구성이 똑같은데 내가 한게 뭐가 있겠어.

 

하지만 강 감독님이 바꿔놓은 부분은 분명 존재했다.

 

= 처음 부임했을 때 선수들이 눈치를 많이 보더라. 그래서 그걸 없앴지. 그리고 모든 훈련을 일원화하려고 노력했어. 원팀의 색을 내서 지난 시즌의 아픔을 지우고 싶었어.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것이 익숙했던 현대건설을 부임 후, 1년도 되지 않아 완전히 다른 팀으로 만든 결정적인 비결이었다.

 

▲ 현대건설 선수들 / 한국배구연맹 제공

훈련 방식은 코칭에 따라 달라지지만 주전과 비주전을 나눠서 하는 훈련이 주가 된다면 주전 선수들은 주전 코트가 내 자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시에 비주전선수들은 ‘나는 열심히 해도 어차피 경기에 못들어간다’라는 인식이 마음 속에 조금씩 자리잡기 시작한다.

 

나는 이런 작은 차이가 팀의 균열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강 감독님의 일원화된 훈련 시스템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면서 주전과 비주전으로 나뉘었던 현대건설 선수들이 코트 위에서 하나된 모습을 보여줬고, 짧은 시간에 완전히 달라진 팀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 현대건설 선수들 / 한국배구연맹 제공

 

선수들의 생각도 궁금했다. 베테랑인 황연주와 양효진, 주장인 황민경, 그리고 신예 이다현과 김다인도 만났다. 다양한 연령대와 포지션의 선수들에게 달라진 현대건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선수들의 이야기도 감독과 다르지 않았다. 하나같이 좋아진 분위기를 승리의 비결이라고 이야기했고, 달라진 훈련 덕분에 팀이 하나가 되어 간다고 입을 모았다. 경험이 많은 고참급 선수들은 후반기에 접어들며 체력 관리의 중요성을 이야기했고, 방심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 기복을 줄이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 현대건설 선수들 / 한국배구연맹 제공

 

현대건설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경기에서 승리하며 분위기가 좋아진 것도 있지만, 함께 훈련하며 서로에 대한 믿음이 전보다 많이 커졌으리라 짐작됐다. 경기는 훈련 과정이 코트 위에서 나오는 것이다. 훈련 때 하지 않았던 것을 경기에서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은 나 역시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훈련 과정에서 만들어진 서로의 화합이 지금의 현대건설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현대건설 선수들 / 한국배구연맹 제공

 

나는 ‘경기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다’ 라는 말을 좋아한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내가 이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선수가 책임감을 갖고 경기에 투입이 되든, 그렇지 않든 각자의 위치에서 본인이 인정할 수 있을 만큼 노력하고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은 많은 선배 지도자들도 많이 했던 말이기도 하다.

 

이기려고 준비한다는 것은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6개월의 긴 시즌을 치르는 동안 철저한 사생활 관리는 필수다. 주전과 비주전을 가리지 않고 경기장을 갈 때는 마실을 간다는 느낌이 아닌, 팀의 승리를 위해 사소한 것 하나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 역시 중요하다. 그리고 팀을 위해 매 순간 집중력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자세, 팀과 동료를 위해 헌신하는 행동이 모였을 때 단단한 팀 정신력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이런 팀 정신력이 점수와 연결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범실을 줄여주고, 20점 이후의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은 지난 27년의 내 선수 생활을 통해 직접 수 없이 경험했던 것들이다. 내가 경험했던, 그리고 몸소 느꼈던 선수로서 중요한 마음가짐이 현대건설 선수들과 대화하며 팀 내에 잘 녹아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남은 시즌에 현대건설은 상대 팀에게 더 무서운 팀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

 

물론 현대건설이 강한 팀이지만 상대 팀들도 좋은 경기력으로 박빙의 승부를 연출해 준다면 배구팬의 입장에서는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보는 많은 분들의 생각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대건설의, 아니 V-리그의 모든 선수가 다치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코트 위에서 마음껏 펼치길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 현대건설 감독, 선수가 직접 소개하는 연승 비결

 

강성형 감독 - “경기 출전이 많지 않았던 선수들도 함께 훈련을 하며 많이 바뀌었다. 선수들 사이에 끈끈함이 생겨 힘든 고비도 잘 넘어가고 있다”

 

주장 황민경- “(연승을 하는 동안) 힘들었던 경기에서 서로 의지 하며, 하나되어 좋은 흐름을 가져와 이긴 적도 있다. 후반에는 매경기 초반을 더 기복을 줄인다면 1위를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라이트 황연주 - “주전과 비주전을 가리지 않고, 코트에 누가 들어가도 경기에 나가면 지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센터 양효진 - “어린 선수들도 경기에 투입되다 보니까 더 들어오고 싶어하고 재미있어 하는 게 보인다”

 

세터 김다인 - “처음에는 마냥 좋았는데, 연승이 길어지면서 부담도 생겼다. 지금은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자는 느낌이다”

 

센터 이다현 - “6명이 항상 다 잘될 수는 없는데 누군가 분위기가 처져 있으면 옆에서 많이 도와주면서 어려움을 풀어간다”

 

윤봉우 / 전 프로배구 선수, 현 이츠발리 대표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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