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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우] 김호철 감독님의 호통에서 소통으로

--윤봉우 배구

by econo0706 2022. 9. 1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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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3. 01

 

V리그 여자부 IBK기업은행은 지난해 여름 도쿄올림픽의 인기에 힘입어 이번 시즌 초반부터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막상 시즌이 시작하고 초반 연패와 코칭스태프 교체,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조송화 사태 등 악재 때문에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가장 힘든 시즌을 보내야 했다.

 

IBK기업은행은 김호철 감독님께 SOS를 청했다. 그 결과 김 감독님이 부임하고, 어수선했던 팀 분위기가 빠르게 재정비됐다.  시간이 갈수록 감독님이 원하는 색깔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면서 코로나19 확산으로 리그가 일시 중단되기 전까지 5연승이라는 놀라운 반등을 만들었다.

 

리그가 중단된 탓에 미래를 쉽게 예상할 수는 없다. 실제로 IBK기업은행은 리그가 재개된 지난 20일 현대건설과 경기에서 패했다. 중단 이전의 상승세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지만 감독님이 원하는 배구가 조금씩 묻어나오는 IBK기업은행을 보며, 내가 선수 시절 김 감독님과 함께 했던 지난 10여년의 세월이 참 많이 생각났다.

 

/ 한국배구연맹 제공

 

김호철 감독님이 2003년 현대캐피탈에 처음 부임했을 때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삼성화재의 독주를 막을 구원투수!

 

덕분에 김 감독님과 보낸 10여년이 참 많이 힘들었고, 또 재미있었다. 현대캐피탈 뿐만 아니라 한국 배구 전체에 참 많은 것을 바꾸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전력분석과 체력담당의 구분이 없던 시기에 부임해 이탈리아에서 직접 경험한 선진 배구를 한국에 전파한 주인공이다.

 

김 감독님과 함께 하며 탄생한 에피소드도 많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짜장면 사건이다.

 

내가 기억하는 짜장면은 이렇다.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03-2004 V투어 시즌 개막전이었다. 당시 현대캐피탈은 상무에 깔끔하게 0대3으로 졌다. 감독님은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바로 운동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셨고, 선수들은 다시 시합을 하러 가는 듯 바짝 긴장된 분위기로 숙소 체육관에 집합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이런 분위기는 선수들이 쓰는 말로 ‘뺑뺑이’를 구르던 시기였다.

 

야구의 수비 훈련인 펑고처럼 배구에도 개인수비라는 것이 있는데 모든 볼을 다 잡아야 하는 수비! 말 그대로 지옥이다. 하지만 감독님은 다르셨다.

 

/ 한국배구연맹 제공

 

포지션, 선수 별로 시합 때 안됐던 상황을 하나씩 짚어가며 연습을 하고 설명을 해주셨다.

 

물론 분위기는 살벌했지만 선수 각자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인지하고 행동하길 바라셨다.

표현에 대한 주문도 분명했다. 

 

파이팅을 외치는 것은 자기가 어떻게 경기를 끌고 갈 것이란 것에 대한 표출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소리도 지르고, 제스처도 크게 해보라는 주문이 뒤따랐다. 감독님은 경기장에서 마음속에 있는 여러가지 감정을 표출하고 독기를 품고 이기길 원하셨다.

 

그렇게 3~4시간의 훈련이 지나갔고, 감독님은 저녁도 안 먹고 훈련한 선수들을 위해 짜장면을 사주셨다. 

 

아주 특별한 짜장면이었기에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숙소 인근 중식당은 오후 9시에 문을 닫았다. 하지만 감독님은 9시 30분쯤 주문했다. 음식이 도착했지만 훈련은 계속됐고, 결국 자정이 다 되고 나서야 불어터진 짜장면을 먹을 수 있었다.  불다 못해 덩어리로 뭉친 짜장면이었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 한국배구연맹 제공

 

내가 전력분석의 세계에 빠진 것도 김호철 감독님 덕분이다.

 

현대캐피탈 선수단이 이탈리아로 전지훈련을 간 적이 있었다. 감독님 댁에서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서재 한 켠에 가득한 옛날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주시면서 ‘이 테이프들을 늘어지도록 보며 배구를 연구했다’고 하셨다.

 

감독님은 현대캐피탈에 부임하신 뒤 새벽 2~3시까지 경기 영상을 보고 연구하셨다. 전력분석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당시에 분석을 통해 선수들이 상대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아가길 원하셨고, 또 그것을 시합에 접목하길 원하셨다. 그래서 비디오 미팅을 참 많이 오래했던 기억이 있다. 길게는 2시간이 넘는 적도 많았다. 당시의 분석시스템 덕분에 선수들이 배구를 하며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선수시절 남들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당시로써는 큰돈인 50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그 분석프로그램을 개인적으로 샀다. 주위에서 미쳤다고 했지만, 하루 이틀 비디오를 보는 습관을 들이다 보니 어느덧 V리그 전 구단의 모든 세터 플레이를 외울 수 있었다. 특히 거의 모든 공격수가 주로 때리는 공격 코스가 눈에 익었고, 20점 이후 습관적으로 나오는 세터 배분이나 공격수의 습성까지 알 수 있었다.

 

내 배구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는 시기였고, 어떻게 하면 상대 세터와 머리싸움을 하고 이길지 연구를 하는 습관이 생긴 시기였다.

 

체력담당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모든 팀이 훈련에 더 중점을 두고 세분화해 훈련을 하지만 당시만 해도 웨이트 트레이닝보다 런닝 훈련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김 감독님은 단순히 무게만 많이 드는 것이 아니라 배구 동작에 필요한 힘을 만들고 키우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그래서 포지션 별로 다른 프로그램을 소화해 최적의 몸 상태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또 다쳤거나 컨디션이 안좋은 선수의 경기 준비를 통해 선수 개인의 자기관리 중요성도 일깨워 주셨다.

 

/ 한국배구연맹 제공

 

내 기억 속의 김호철 감독님과 지금의 김호철 감독님의 지도 방식은 물론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했던 김호철 감독님의 배구는 일방적인 지시가 아닌 지도자와 선수의 상호작용을 통해 팀 분위기와 성적을 개선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시즌 IBK기업은행이 연패를 거듭하던 팀에서 연승하는 팀으로 거듭날 수 있던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선수생활을 하다 보면 어려움이 찾아온다, 그게 부상이나 슬럼프일 때도 있고, ‘나는 안돼’라는 패배의식일 수도 있다.

 

김호철 감독님은 이런 어려움을 훈련과 경기를 통해 선수가 스스로 이겨내고 극복하길 원하셨다. 김호철 감독님이 선수들에게 원하는 것은 스스로 하는 배구다. 그것을 만들어 가는 훈련 과정은 힘들고, 때론 따끔한 호통도 따른다. 하지만 선수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누구보다 좋아하셨던 분이라는 점은 이견이 없다.

 

경기에서 패하는 스트레스는 선수가 느끼는 이상으로 감독도 느낄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경기를 진 다음날 여러 감독님이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종종 봤었다. 특히 김호철 감독님은 술을 못하시는 분인데 밤새 경기 비디오를 보시느라 퉁퉁 부은 얼굴로 아침식사를 하러 온 모습을 보며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 한국배구연맹 제공

 

지금 생각하면 ‘그때 더 잘 할 걸’ 이라는 후회를 한다. 하지만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다. 그래서 IBK기업은행 선수들은 나처럼 때늦은 후회를 하지 않길 바란다.

 

감독님께 잘 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배구를 하게 된다면 감독님의 버럭 속에 감춰진 귀엽고 진한 미소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경험자의 조언이다.

 

/ 한국배구연맹 제공

 

내가 말하는 스스로 하는 배구, 감독님이 강조했던 스스로 하는 배구가 물론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한국 배구의 최고 무대인 V리그 코트에 나서는 선수라면, 경기에서 지고 고개 숙이는 것이 아니라 승리 후 동료와 팬을 위해 환한 미소를 보여주고 싶은 선수라면 스스로 더 나은 배구를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은 팬들이 가장 먼저 알아줄 것이다. 팬들은 누구보다 선수의 노력을 가장 냉정하게 평가한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는 노력이 희미해지는 순간 코트를 향한 팬의 관심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윤봉우 / 전 프로배구 선수, 현 이츠발리 대표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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