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2. 01
프로배구 V리그는 올스타전을 마치고 후반기에 재미를 더 하고 있다. 우리의 V리그를 보면서 작년의 일본에서의 V리그가 떠올랐다. 일본 역시 겨울 시즌을 V-리그라 부른다. 차이가 있다면 리그를 구성하는 팀의 수가 대표적이다. 남자부를 기준으로 7팀이 참여하는 우리의 V리그와 달리 일본은 1부는 10개 팀, 2부는 15개 팀, 3부는 4개 팀까지 무려 29개 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 나고야 울프독스 제공
한국은 일주일 중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같이 배구를 생중계로 볼 수 있다. 여러분이 지금 이 글을 보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도 아주 쉽게 배구 중계를 볼 수 있다. 한국은 팬이 배구를 즐기기에 정말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일본은 대개 같은 날, 비슷한 시간대에 경기를 한다. 그래서 경기 후 다른 팀 경기를 보려면 일본배구협회의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에 가입을 하고 봐야 한다. 처음 일본에 갔을 당시 간단한 인사 정도만 할 줄 알았던 내가 다른 팀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네이버 파파고 번역기의 힘을 빌려 어렵게 서비스에 가입했고, 무료한 저녁시간에 배구를 원없이 봤던 기억이 있다.
/ 윤봉우 제공
경기 운영 방식도 차이가 있다. 남자 1부를 기준으로 10개 팀이 4라운드 정규리그를 진행해 우리나라와 같은 팀당 36경기를 진행한다. 주말 경기는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의 2연전을 소화한다. 플레이오프는 매 시즌 다르지만 작년과 올해는 상위 3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단판 승부로 승패를 가린다. 가장 큰 차이는 골든 세트. 2-3위의 플레이오프에서 3위가 첫 경기를 승리한다면 골든 세트를 적용해 한 세트를 더 경기한다.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이 방식이 적용된다. 일본 V리그는 같은 주의 주말에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 일정을 모두 끝낸다. 이 점 역시 우리 V리그와는 달랐다.
◇ 경기보다 힘들었던 원정 이동
시합장을 이동하며 다닐 때는 우리 V리그의 시스템이 얼마나 좋은지를 많이 느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국토가 큰 데다 버스로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내가 몸 담았던 나고야 울프독스의 연고지 나고야에서 3시간 이내의 도시인 시즈오카나 오사카, 나가노 등은 버스로 이동했다. 하지만 오이타나 후쿠오카는 비행기를 탔다. 도쿄와 히로시마로 이동할 때는 고속철도 신칸센을 이용했다.
▲ 경기 후 지하철로 이동중 / 윤봉우 제공
버스로 이동할 때는 모든 선수가 체육관에 모여 함께 이동했다. 이 방식은 한국에 있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비행기나 신칸센으로 이동해 경기할 때는 선수 각자가 공항이나 역까지 개별 이동해야 했다. 삼삼오오 동료들과 함께 모여 짐 가방을 잔뜩 들고 지하철을 타고 움직였다. 내가 살았던 집은 나고야 역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출발 시간 1시간 전에 무거운 트렁크를 끌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길 반복하고 나서야 나고야 역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기차를 타고 원정 경기가 열리는 도시로 이동했다.
/ 윤봉우 제공
이동해서 경기를 하기까지의 스케줄은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경기가 끝난 이후였다. 내가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적응하는데 가장 쉽지 않았던 경험이라고 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주말 연전 중 일요일 경기는 낮 12시에 시작해 2시 정도에 경기가 끝났다. 경기 후에는 선수들이 라커룸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그리고는 감독 및 동료 선수의 공식 행사가 끝날 때까지 대기한다. 선수단이 함께, 그냥, 무작정 기다린다. 동료 선수들은 주로 이 때 핸드폰을 보며 무료함을 달랬는데, 이 시기 일본 넷플릭스에서는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스가 방영돼 선풍적인 인기가 있을 시기였다. 나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연신 스포일러를 날리며^^;;, 선수들과 무료함을 달랬다. 대략적인 일정이 끝나는 시간은 오후 5시. 그때서야 선수단이 다같이 움직인다.
▲ 도쿄역 이동 중에 / 윤봉우 제공
재미있는 점은 원정 경기가 열린 지역에서 개인 약속이 있는 선수들은 동료들과 함께 공항이나 기차역으로 이동하지 않고 자신의 일정을 소화한다는 것. 도쿄로 원정을 떠나는 경우 많은 선수가 다음날까지 쉬는 만큼 여행을 하거나, 지인을 만나는 등 약속을 많이 잡았다. 나머지 선수들은 버스를 타고 역으로 이동하고, 그 이후에는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도쿄 원정을 마치면 신칸센을 타고 나고야역으로 돌아왔다. 밤 10시가 넘어 도착하면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이 있는 이나자와시까지 다시 1시간을 더 이동했다. 경기 후 간단한 도시락 하나로 하루 종일 버텨야 했던 내 몸은 뭐라도 먹을 것을 넣어달라고 아우성을 치듯 연신 꼬르륵 소리를 냈다. 무거운 트렁크를 끌고 집에 도착할 때면 시간은 어느새 자정이 되기 일쑤였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원정 복귀 스케줄이다.
▲ 자정에 먹었던 늦은 식사 / 윤봉우 제공
내가 일본으로 갔던 2020년은 일본 역시 코로나19 문제가 심각했다. 그래서 밤 8시 이후는 모든 음식점이 문을 닫았다. 그래서 일본에 가고 난 뒤 첫 한 달은 ‘내가 지금 극기훈련을 온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다. 나 역시 일본에서의 생활에 적응했다. 시합을 가기 전에는 근처 마트에서 냉동식품과 라면을 잔뜩 사다가 놓았고, 경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마치 전투식량을 먹는 군인의 심정으로 음식을 해 먹었다.
그나마 홈 경기가 있는 날은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많이 쌓았다. 일요일 홈 경기가 열리는 경우는 오후 7시에 모든 일정이 끝난다. 그 때는 동료 선수들이 자기 집에 나를 초대해 저녁을 함께 먹었고, 배구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나눴다. 코로나19 때문에 가족과 함께 일본에서 지낼 수 없었던 내겐 동료애 이상의 것들을 많이 경험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 39살의 내 생일때 홈메이드 케익을 준비해준 팀 동료들 / 윤봉우 제공
나는 일본에서 지낼때 늦은 밤 동네 산책을 즐겼다. 과거 한국에서 선수로 지냈던 시간을 떠올리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일본에 오지 않았다면 한국에서 소속팀과 연맹이 얼마나 좋은 지원을 해주고 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타인의 견해가 아닌 나의 선택으로 일본까지 와서 고생을 했지만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배구를 모두 경험하고 장점을 배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지냈다.
▲ 선수단 가족들과 연말 홈 파티 / 윤봉우 제공
주말 연전에 대한 윤봉우의 견해
지금은 한국 V리그에서 하지 않는 주말 연전은 선수의 체력 저하나 부상을 염려하는 이들도 있다. 프로 초창기 도시를 이동하며 연전을 했던 기억이 난다. 주말 연전을 각기 다른 팀과 했었는데, 토요일 인천에서 경기를 하고 일요일 마산 일정이 잡히는 날이면, 경기시간 보다 이동시간때문에 녹초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연전을 같은 팀과 같은 곳에서 한다면 체력적으로 크게 무리 없다 생각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주말 연전은 더 많은 선수가 경기에 투입된다는 장점이 분명했다. 팬의 입장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한번이라도 더 코트를 밟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익이다. 선수의 입장에서도 고정된 스케줄이 있는 만큼 휴식과 시즌에 대한 리듬을 챙기기에 훨씬 수월했다. 물론 각 팀의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주말 연전에 사용할 전술을 만들어야 하는 부담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배구의 또 다른 매력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경험한 배구는 주전이 한 번 정해지면 부상 등의 큰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선수 구성이 시즌 내내 변화가 없는 종목이다. 무엇보다 성적이 가장 중요시되는 프로배구라는 점에서 팀을 구성하는 여러 선수 중 가장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코트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V리그의 구성원으로 합류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많은 후배를 지켜보는 일은 선배, 그리고 같은 배구선수로서 가장 안타까운 일이었다.
가뜩이나 선수 자원이 해가 갈수록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되는 만큼 새로운 선수 자원의 확보만큼 기존 확보된 선수 자원의 이탈을 막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어려서부터 V리그 코트를 밟는 프로배구선수의 꿈을 키운 이들에게 데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냉혹한 현실보다는 ‘누구에게나 경기에 나설 기회가 열려있다’는 희망을 줘야 10년, 20년 뒤에도 V리그가 건강하게 운영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바람이다.
윤봉우 / 전 프로배구 선수, 현 이츠발리 대효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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