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2. 15
내 오랜 경험상 시즌이 막바지로 향하는 2월은 어느정도 순위의 윤곽이 나오는 시기다.
봄 배구를 준비하는 팀은 남은 승수와 승점을 초점으로 선수들의 컨디션을 준비하고, 포스트시즌에 만나게 될 팀에 대한 준비를 더 많이 한다. 그러나 올 시즌은 매 경기 결과에 따라 순위가 바뀌고 있어 5라운드를 지나가는 현재 승리와 패배에 따라 선수들이 받는 피로도와 충격은 배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 한국배구연맹 제공
나 역시 선수 때 이런 피로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치열한 순위 싸움을 하는 가운데 승리를 한다면 몸은 무겁지만 좋은 팀 분위기로 다음 경기까지 컨디션을 조절할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패하고 난 뒤에는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부터 분위기가 좋지 않다. 시쳇말로 싸한 분위기로 돌아가야 했다.
선수들간에 대화가 적어졌고, 눈치를 보기 바빴다. 훈련 분위기도 평소와는 달랐다. 다음 경기는 승리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압박감인지 모르지만, 훈련량이 평소보다 많아졌고 미팅 시간도 길어졌다. 그래서 ‘그냥 빨리 다음 경기를 했으면…’하는 생각이 들었다.
/ 한국배구연맹 제공
올 시즌 V리그 남자부 경기는 프로선수를 20년이나 했던 나조차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박빙 승부가 계속되는 시즌을 보내고 있다. 매 세트를 예측하며 보지만 ‘세트 플레이를 어떻게 하겠구나’라는 예상은 할 수 있어도 이번 시즌은 정말 누가 이긴다고 장담을 못할 정도 박빙의 승부가 이어지고 있어 모니터에 눈을 뗄 수 없다. 매 경기 어느 팀이 유리하다고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팀의 전력이 평준화됐고, 매 경기 내용뿐 아니라 순위도 정말 재미있다.
역대급 경쟁이라는 단어가 뉴스에 많이 언급될 정도로 올 시즌 남자부 경기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이렇게 치열한 시즌이라고 평가를 받는 이번 시즌인 만큼 나는 남자배구의 현 위치는 과연 어느 정도일지 알아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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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확실히 남자배구 보다 여자배구가 더 큰 인기 끌고 있다는 것을 경기장과 SNS를 통해 분명하게 체감할 수 있다. 얼마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여자부 GS칼텍스와 현대건설의 경기를 직관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많은 배구팬이 경기장을 가득 채운 모습을 현장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각자 좋아하는 선수의 플랜카드를 들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며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코트를 장악했던 프로 원년이 생각났다.
/ 한국배구연맹 제공
V리그가 처음 출범했던 2005년에는 경기 2~3시간 전부터 양팀 응원단이 신경전을 벌이고, 지금은 없어진 암표라는 것도 쉽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경기 시작 전 팬들의 응원 소리와 기운이 코트까지 전해져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 코트 안의 선수도, 관중석의 팬도 마치 전투를 하듯 그 한 경기에 몰입해 울고 울었던 시절이었다.
◇ 전력 평준화가 가고 있는 길은?
현재 V리그는 성적 쏠림 현상을 줄이기 위해 자유계약선수(FA)와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 신인드래프트 등 리그 자체의 평준화를 위해 여러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실행하고 있다. 덕분에 남자부 7개 팀의 실력 차이는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경기장을 찾는 관객의 수가 줄고, 시청률이 하락하는 현 상황은 배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걱정이 크다.
관객수만 봐도 남자부 경기는 좀처럼 만원 관중을 찾아볼 수 없는 반면, 여자부 인기 구단은 티켓팅 시작과 동시에 매진이 되어 표를 구할 수 조차 없는 경기들이 많다. 코로나19 확산의 여파도 있지만, 그만큼 남자부 경기가 배구팬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좋은 경기와 역대급 시즌, 그리고 치열한 순위 싸움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어느 종목이든 국제대회의 좋은 성적을 바탕으로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뒤 그 기세가 시즌으로 이어져 팬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이점은 많은 배구인이 공감하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는 이상일 뿐,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좁게는 중국과 일본, 조금 더 범위를 넓히면 이란이라는 막강한 실력을 갖춘 경쟁자가 즐비한 데다 이제는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경기도 허투루 치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 팬들은 스타를 원한다.
/ 한국배구연맹 제공
하지만 남자 배구의 인기스타를 논하면 김세진, 신진식 이후 아직도 문성민, 김요한을 거론한다. 최근에 그나마 언급되는 새 얼굴은 임성진 정도다. 배구를 잘 모르는 이들은 지금 V리그에서 활약하는 남자배구선수의 이름이 낯설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배구계는 눈 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한국배구연맹과 V리그 남자부 7개 팀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프로 배구 선수로, 국가대표 선수로, 또 해외리그를 경험한 몇 안되는 남자 배구 선수로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다. 민감한 주제지만 용기를 내봤다.
요즘 시대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을 통해 선수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표출하는 여러 창구가 있다. 사실 나도 이런 표현방법에 서툰 선수 중에 한 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선수들은 자신을 브랜드화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많은 인기 스타들이 그렇듯, SNS에서 선수 본인을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나 돈 많아요~’같은 내용이 아닌 경기와 훈련을 하면서 어떤 진정성을 가지고 임하는지, 경기 외적인 인생에서 대중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을 해야 한다.
팬들은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배구를 어떻게 준비하고, 노력하고, 즐기는지를 항상 궁금해 하기 때문이다. 또 결과를 중시하는 프로 세계지만, 내가 좋아하는 선수나 팀이 더 나은 배구를 선보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이해한다면 승패와 상관없이 그 선수, 팀에 대해 격려와 응원을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컨텐츠 변화의 정점은 국가대표의 경쟁력이다. 하지만 당장 개선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개인이 아닌, 소속팀과 연맹, 그리고 대한민국배구협회 차원에서 시도해 볼 만한 몇 가지를 추천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젊고 유망한 선수의 미디어 노출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V리그 남자부 일부 팀이 시행하는 비주전 선수의 연습경기를 2부리그처럼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미 많은 나라가 하고 있는 타 국가 리그와의 교류를 통해 V리그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모든 방안이 지금 당장 완벽한 해법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V리그 남자부가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V리그 내에서 소비되는 콘텐츠가 아니라 다양한 계층과 분야, 나아가서는 더 많은 나라에서 V리그 콘텐츠가 소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V리그 남자부 7개팀 구성원과 KOVO뿐 아니라 배구협회와 모든 배구인이 ‘이대로는 위험하다’는 공통된 위기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배구팬이 우리 배구의 소중한 자산이고, 가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배구인의 한사람으로서 이번 내용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주제였다. 배구협회와 KOVO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해법을 찾으려 노력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미쳐 챙기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 귀를 열고 현장에서, 또는 현장 밖 배구인에게서, 때로는 팬들에게서 아이디어를 얻는 것도 우리 배구가 특히 많은 이들이 예전만 못하다고 평가하는 남자배구가 더욱 경쟁력을 얻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봉우 / 전 프로배구 선수, 현 이츠발리 대표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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