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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便紙] 그 산중(山中)에 무엇이 있는가

山中書信

by econo0706 2007. 2. 11.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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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연말에 편지를 몇 통 받았다. 평소에는 서로가 잊은 채 소원히 지내다가도, 한 해가 저무는 길목에 이르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게 마련이다.
 
내가 존경하는 목사님 한 분은 해마다 카드를 보내주는데, 올해도 거르지 않고 '더 늙기 전에 스님 만나 많은 이야기 나누고 싶소'라고 회포를 전했었다. 이런 게 사람 사는 세상의 일이 아닌가 싶다.
 
한 친구가 편지에 불쑥, 그곳 산중에는 무엇이 있느냐고 선문답처럼 물었다. 이 물음을 받고 나는 문득 옛 은자의 시가 떠올라, 앞뒤 인사말 줄이고 다음의 시를 써서 회신으로 띄웠다.
 
山中何所有(산중하소유)
嶺上多白雲(영상다백운)
只可自怡悅(지가자이열)
不堪持贈君(불감지증군)
산중에 무엇이 있는가
산마루에 떠도는 구름
다만 스스로 즐길 뿐
그대에게 보내줄 수 없네
 
옛날 깊은 산 속에 숨어사는 한 은자에게, 그 산중에 무엇이 있기에 거기 머물러 세상에 나오지 않는가라고 친지가 물었다. 은자는 그 친지에게 답하기를, 자신의 거처에는 이렇다할 아무 것도 없지만 산마루에 떠도는 무심한 구름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이런 경지는 혼자서나 조촐히 즐길 뿐 그대에게는 보내줄 수 없노라고 말한다. 이 시를 통해 우리는 그 은자의 욕심을 떠나 담담하고 소탈한 삶을 엿볼 수 있다.
 
구름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보태겠다. 고려 말 태고 보우 스님의 문집에 구름 덮인 산을 노래한 '운산음(雲山吟)'이 있는데, 그 가운데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산 위에 흰구름은 희고
산 속에 시냇물은 흘러간다.
이 가운데서 내가 살고자 했더니
흰구름이 나를 위해 산모퉁이를 열어 놓았네
흰구름 속에 누워 있으니
청산이 나를 보고 웃으면서
'걱정 근심 다 부려 놓았구려' 하네
나도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산이여, 그대는 내가 온 연유를 아는가
내 평생 잠이 모자라
이 물과 바위로 잠자리 삼았노라
 
청산은 나를 보고 웃으면서 말하네
왜 빨리 돌아와 내 벗이 되지 않았는가
그대 푸른 산 사랑하거든
덩굴풀 속에서 편히 쉬게나
 
옛사람들은 그 무엇에도 쫓기지 않고 이런 운치와 풍류를 지니고 넉넉하게 살 줄을 알았다. 자신이 자연의 한 부분임을 알고서 그 품에 안겨 동화될 수 있었다. 세상살이에 닳아지고 지치게 되면 산에 들어가 숲속에 쉬면서 자기 자신의 자취를 되돌아보곤 했다.
 
어느새 묵은 해가 기울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해가 바뀌면, 나이 어린 사람에게는 한 해가 더 보태지고,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한 해가 줄어든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보태지는 쪽인가, 줄어드는 쪽인가.
 
그러나 보태지고 줄어드는 일에 상관 없는 사람이 있다.
 
그는 육신의 나이에 집착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순간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최대한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세월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그 자신답게 살아간다.
 
삶은 끝없는 변화이다. 그리고 날마다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우리 자신과 세계가,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상황이 수시로 변해가면서 새롭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가 한숨 한숨 들이쉬고 내쉬는 생명의 숨결도 흐르는 강물처럼 낡은 것과 새 것이 잇따르고 있다. 이게 바로 살아 있는 생명의 흐름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가 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목표도 지향도 없이 어디론지 끝없이 표류하고 만다. 덧없는 세월 속에서 의미 없는 삶으로 막을 내린다면, 우리 인간사가 너무 허무하지 않겠는가.
 
우리 시대에 이르러 인류가 쌓아 올린 문명은 그 중심을 잃은 채 휘청거리고 있다. 당당한 인간으로서 삶의 중심을 잃어버린 채 인간들 스스로가 그 설자리를 무너뜨리고 있는 현실이다.
 
모든 존재와 현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연결의 고리가 튼튼하면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개인이나 사회 또는 국가를 물을 것 없이 조화와 균형이 곧 건강이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사회는 그 조화와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
 
현대인들의 가슴은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삭막해서 생명의 싹이 움틀 여지가 없다는 소리다.
 
가슴은 존재의 핵심이고 중심이다. 가슴은 모든 것의 중심이다. 가슴 없이는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의 신비인 사랑도, 다정한 눈빛도, 정겨운 음성도 가슴에서 싹이 튼다. 가슴은 이렇듯 생명의 중심이다. 그 중심의 기능이 마비된 것을 우리는 죽음이라고 부른다.
 
오늘의 문명은 머리만을 믿고, 그 머리의 회전만을 과신한 나머지 가슴을 잃어가고 있다. 중심에서 벗어나 크게 흔들리고 있다. 가슴이 식어버린 문명은 그 자체가 크게 병든 것이다.
 
비인간적인 이런 수렁에서 헤어나려면 우리 모두가 저마다 따뜻한 가슴을 되찾는 길 밖에 없다. 물질의 더미에 한눈 파느라고 식어버린 가슴을 다시 따뜻하게 가꾸어 삶의 중심을 이루어야 한다. 따뜻한 가슴만이 우리를 사람의 자리로 되돌릴 수 있다.
 
따뜻한 가슴은 어디서 오는가. 따뜻한 가슴은 저절로 움트지 않는다. 이웃과 정다운 관계를 통해서, 사물과의 조화로운 접촉을 통해서 가슴이 따뜻해진다.  
 
1996 法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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