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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便紙] 비닐 봉지 속의 꽃

山中書信

by econo0706 2007. 2. 13.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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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11월 한 달을 히말라야에 가서 지내다 왔다.
 
해발 2천에서 2천 5백 고지에 있는 가난한 산동네이다. 8년 만에 다시 찾아간 네팔과 인도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지지 않은 그들의 생활이 도리어 믿음직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되어 가는 세상에서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오늘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했다.

 

우리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생활수준으로 비교한다면, 그들은 너무도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근로자의 하루 노임이 우리 돈으로 남자는 2천 원도 안 된다. 여자는 그 절반이다. 그쪽에서 중산층 4인 가족의 한 달 생활비는 집세까지 포함해서 13∼4만 원 수준이다. 이런 생활조건 아래서 살아가면서도 그들의 눈동자는 우리보다 훨씬 맑고 선량하고 안정되어 있다. 마음의 창인 그 눈동자가 말이다. 주어진 가난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곁에서 보기에도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것 같았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미국식 산업구조에서 비롯된 소비주의적 생활방식에 잘못 길들여진 우리이다. 소비생활로 인해 쓰레기만을 한없이 만들어내면서 살아가는 현실이다. 소비하는 것만큼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마음은 안정을 잃고 자연환경은 날로 허물어져 가고 있다.
 
인간이 모여 사는 도시는 매연으로 숨이 막히고 소음으로 귀가 멀 지경이다. 인간의 설 자리가 날이 갈수록 좁아져 간다.

 

인간의 이상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안팎으로 행복하게 사는 데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 그 가치 척도에 따라 그 형태는 달라진다. 적게 가지고도 즐겁게 살기도 하고,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못하게 사는 사람들이 우리 이웃에는 얼마든지 있다. 아니 이웃으로 눈을 돌릴 게 아니라 바로 지금 내 자신의 삶은 어떤지 되돌아볼 일이다.
 
인간의 행복은 물질적인 생산과 소비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인간과 자연 사이의 친숙하고 조화로운 관계에 의해서 행복은 보증된다.

 

우리는 온갖 수모와 국제적인 망신을 당해 가면서 남의 나라에서 빚을 얻어와야만 거덜난 나라 살림살이를 꾸려갈 지경에 이르렀다. 빚을 새로 얻어와야만 묵은 빚을 갚게 된 그런 형편이다.
 
자, 이렇게 됐으니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앞에 닥친 이 시련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을 거라고 여겨진다. 지금까지 우리가 함부로 쓰고 마구 버리면서 잘못 살아온 생활태도에 대한 과보임을 깨우쳐준다. 물질적인 풍요에 삶의 가치를 두지 말라는 교훈이기도 하다.
 
이제는 지금까지 익혀 왔던 생활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일찍이 겪어왔던 60년대와 70년대의, 헌옷도 기워서 입고, 찬밥도 비벼서 먹고, 연탄불 하나도 소중하게 다루던 그때의 생활태도를 다시 배우고 익혀야 한다. 저마다 투철한 삶의 질서를 가지고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될 수 있으면 밖에서 들여온 물건을 사다 쓰지 말고, 기왕에 있는 것 속에서 가려서 써야 할 처지이다. 백화점이나 시장에 나가는 횟수도 줄여야 한다. 우리가 '국제 통화 기금'의 올가미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려면 이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
 
옛글에 이런 말이 있다.
 
'사치한 자는 3년 동안 쓸 것을 1년에 다 써버리고, 검소한 자는 1년 동안 쓸 것을 3년을 두고 쓴다. 사치한 자는 그 마음이 옹색하고, 검소한 자는 그 마음이 넉넉하다. 사치한 자는 근심 걱정이 많고, 검소한 자는 복이 많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사치는 악덕이고 검소함은 미덕이다. 우리는 그동안 잘못 익혀온 악덕에서 벗어나, 인간의 미덕을 하루하루 다시 쌓아 나가야 한다.
 
어떠한 시련과 고통일지라도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 시련과 고통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솟아난다. 그러나 그 시련과 고통 앞에 좌절하고 만다면 내일이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아무 걱정근심도 없는 태평성세만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현실적으로 그렇게 될 수도 없지만, 그런 세상에서는 아무런 살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그런 세월 속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무기력해지고 타락하게 될 것이다.
 
고통과 위기를 통해서 우리 내부에 잠재된 창의력과 의지력이 계발되어 개인이나 사회는 새롭게 성장하고 발전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 인류가 지나온 자취이다.
 
히말라야의 가난한 산동네 사람들은 집집마다 비닐 봉지 속에 꽃을 가꾸며 살아간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큰 감명을 받았다. 화분을 살 만한 돈이 없기 때문에 비닐 봉지에 흙을 담아 꽃을 기르는 것이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할지라도 아름다움을 가꾸면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내 마음 속까지 향기로운 꽃씨를 뿌려주었다.
 
경제난국에 기죽지 않고 새로운 생활 습관으로 삶의 방식을 개선해 나간다면, 우리 안에서도 미덕美德의 꽃이 피어나 기필코 이 난국을 돌파하게 될 것이다.   
 

1997 法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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