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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便紙] 파초잎에 앉아

山中書信

by econo0706 2007. 2. 1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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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휴가철이 되니 다시 길이 막힌다.
 
산과 바다를 찾아가는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더위를 피해서, 또는 자신에게 주어진 여가를 보내기 위해 모처럼 일상의 집에서 떠나온 길이다.

 

더위를 피할 곳이 어디이기에 이처럼 동이 트기 전부터 차량의 흐름을 이루는 것일까. 바다와 산으로 가야만 더위를 피하고 여가를 보낼 수 있는 것일까. 사람들이 떼지어 몰려드는 곳은 어디를 가릴 것 없이 소란스럽고 지저분하다. 이제는 사람들 자신이 이 지구의 오염원으로 전락되고 있다.

 

농경사회에서는 따로 휴가철이 없었다. 농한기에도 농사와 관련된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쇠붙이로 된 기계도 때로는 정비를 멈추어야 하는데, 생물인 사람이 계속해서 일에만 매달릴 수 있겠는가.
 
그가 하고 있는 일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듯이, 그에게 주어진 여가를 어떻게 쓰고 있느냐에 의해서 또한 그 사람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일을 제대로 하려면 우선 일머리를 알아야 한다. 일머리를 모르면 공연히 허둥대기만 할 뿐 일을 온전하게 치르지 못한다. 사람은 쉴 줄도 알아야 한다. 쉴 줄을 모르면 모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여분의 시간과 돈과 기운을 부질없이 소모하고 만다. 일을 배우고 익히듯이 쉬는 것도 배우고 익혀야 한다.
 
휴가철 산골짜기나 바닷가에는 사람들이 모였다 하면, 으레 먹고 마시고 화투판 아니면 떠들어대는 한결같은 풍경, 우리 한국인의 자질을 거듭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모처럼 일상에서 벗어났으면서도 그 범속한 일상성을 떨어뜨리지 못한다. 자연의 품에 안겨 인간이 보다 성숙해질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야생동물들은 쉬어간 자리를 결코 더럽히지 않는다. 이제는 사람이 짐승에게 배워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같은 생물이면서도 사람인 내 자신이 짐승 앞에 서기가 몹시 부끄럽게 여겨질 때가 있다.

 

요즘 단원檀園 김홍도의 화집을 펼쳐보는데, 여기저기서 서걱거리는 파초잎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의 그림에 <월하취생도月下吹笙圖>가 있다. 준수하게 생긴 젊은 사내가 파초잎을 깔고 앉아 생황笙簧을 불고 있다. 헐렁한 베잠방이 옷에 망건을 썼는데, 맨살이 드러난 두 다리를 세워 그 무릎 위에 양팔을 받치고 몸을 앞으로 기울여 생황을 불고 있다. 그 곁에 질그릇 술병과 사발, 흰 족자 두 개, 벼루와 먹과 붓 두 자루.
 
화가 자신의 방인지도 모르겠다. 단원의 활달한 글씨로 '월당처절승용음'이란 화제가 우측 상단에 씌워 있다. 달빛이 비쳐드는 방안에서 생황 소리는 용의 울음보다 더 처절하다는 내용이다.
 
내가 불일암에 살 때 이 그림을 처음보고 좋아서 흉내낸 일이 있다. 여름날 산그늘이 내릴 무렵 후박나무 아래 파초잎을 하나 베어다가 행건을 풀어 제치고 맨발로 그 위에 앉아 앞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갑자기 신선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살갗에 닿는 파초잎의 감촉이 별스러워 삽시간에 더위가 가셨다. 우리 선인들의 더위 식히는 풍류가 얼마나 멋스러운지 몸소 겪게 된 기회였다.
 
이 <월하취생도>에서 우리는 단원의 인품을 얼마쯤 엿볼 수 있다. 단원의 스승으로서 어릴 때부터 그를 잘 알았던 표암 강세황은 그의 문집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사능士能(김홍도의 자)의 인품은 얼굴이 빼어나게 준수하고 마음이 툭 트여 깨끗하니, 보는 사람마다 고아하고 탈속하여 시정의 용렬하고 좀스런 무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성품이 거문고와 피리의 청아한 소리를 좋아하여 꽃피고 달 밝은 밤이면 때때로 한두 곡조를 연주하여 스스로 즐겼다.

 

그는 풍류가 호탕하여 슬프게 노래하고 싶은 생각이 나면 분개하거나 눈물을 뿌리면서 울기도 하였다. 그의 마음은 아는 사람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김홍도의 외아들 김양기와 절친한 사이였던 조희룡(매화서옥도로 유명한)은 <김홍도전>에서 그 유명한 매화에 얽힌 이야기를 이와 같이 전한다.
 
"그는 집이 가난하여 끼니를 잇지 못하는 때가 더러 있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매화 한 분을 파는데 그 모양이 매우 기이한 것이어서 가지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매화와 바꿀 돈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 돈 3천 냥을 예물로 보내준 이가 있었다. 이것은 그림을 그려 달라는 사례였다. 즉시 2천 냥을 주고 매화와 바꾸고, 8백 냥으로는 술 몇 말을 사서 친구들을 모아 매화를 완상하는 술자리를 열었다. 그리고 남은 2백 냥으로 쌀과 땔감의 밑천을 삼았다. 그의 사람됨이 이와 같았다."
 
이 일화를 통해서 단원의 호방한 인품을 알 수 있다. 도량이 크고 일상사에 거리낌이 없는 이런 성품이기에 우리 회화사에 두고두고 빛을 발할 좋은 그림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옛사람의 탈속한 그림과 이런 이야기를 대하면 삼복 더위 속에서도 시원함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화선畵仙인 단원을 이 자리에 모신 까닭도 여기에 있다.   
 

1999 法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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