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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핵무기 감축조합 : START협정(1992.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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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cono0706 2009. 1. 2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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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12월 29일 미국과 러시아는 양국의 재래무기를 현재의 3분의 1선으로 대폭 감축하는 제2단계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Ⅱ)을 타결했다.

 

러시아측이 보관하고 있는 지상발사 다탄두 SS18의 전량폐기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이 협정안은 1993년 1월 3일 부시 미국대통령과 옐친 러시아 대통령에 의해 크렘린 궁에서 서명되었다.

 

미국과 러시아 양국은 현재 2만여 개의 핵무기를 1991년의 STRAT-Ⅰ협정에 따라 오는 1999년까지 약 1만 5천 개로, 그리고 합의에 따라 10년 후인 2003년까지는 현재의 약 3분의 1 수준인 6,500개 줄이는 작업을 하게됐다.

 

핵무기는 1896년 프랑스 물리학자 앙리 베크렐이 최초로 방사능을 발견한 이래 1938년 12월 독일 화학자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우라늄 원자핵의 핵분열 현상을 발견하고서부터 그 개발이 일부에서 논의되었다. 2차대전 중인 1942년 미국에서 본격적인 원자폭탄 제조계획에 착수하여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 주 로스알마로스에서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을 폭발시켰다. 그로부터 3주 후에 일본의 하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2차대전을 종식시켰다.

 

1949년 8월 소련도 원폭을 실험했고, 1954년 밈국이 수소폭탄을 실험하자 이듬해 소련도 수소폭탄을 실험했다. 영국 역시 1952년 10월에 원자폭탄, 1957년 5월에는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고, 프랑스도 1960년 10월 우너자폭탄, 1967년 8월에 수소폭탄을 개발했다. 중국에서는 1964년 10월에 원자폭탄, 1967년 6월에 수소폭탄을 개발했는가 하면, 인도 역시 1974년 5월에 원자폭탄 실험을 실시했다. 그외 이스라엘ㆍ남아공ㆍ파키스탄 등 몇몇 나라들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며, 최근에는 북한의 핵무기 존재여부로 세계여론이 집중되었다.

 

미ㆍ소냉전의 중심축을 이루는 양국간의 핵무기 경쟁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전반까지 양적인 경쟁을, 그리고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에는 질적인 경쟁을 벌였다. 특히 다탄두 미사일 체제의 MIRV는 전략 핵미사일과 핵전략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예를 들면 미국의 미니트맨 Ⅲ형의 경우 3발의 수소폭탄을 내장한 MIRV가 장착되어 있으며, 13,000km를 비행한 후 그 하나하나의 탄두가 목표에 명중하는 정확도는 약 200m의 오차에 불과하다.

 

1992년 현재 미국과 소련은 각각 9천 200여 개와 6천여 개의 전략핵탄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핵무기가 대량으로 사용되면 전면 핵전쟁이 일어날 경우 그 결과에 대해 전 인류의 1/5~1/3 즉사설, 핵 겨울설 등 각 하가들의 견해가 여러 가지로 다른지만, 분명한 공통점은 그 동안 인류가 구축해온 문명사회가 파괴될 것만은 확실하고 인류전멸의 위기로 치달을 가눙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1978년 유엔 군축특별총회의 한 문서는 "핵무기는 인류 및 문명의 존속에 대한 최재의 위협이 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제한 핵전쟁이거나 전면 핵전쟁이거나 상관없이 핵무기 사용 그 자체가 바로 이와 같은 인류와 문명의 존속에 대한 즉각적이고 최대의 위협이 된다는 점이 중요한 인식으로 되고 있다.

 

핵무기의 숫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무기체제가 복잡해지고 정교해짐에 따라 핵무기과 관련된 사고도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수소폭탄을 탑재한 B52 폭격기 추락사고, 1980년 9월 미국 아칸소 주에 있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기지에서 로켓의 액채연료가 폭발해 수소폭탄의 탄두가 날아가버린 사고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1979년과 1980년에 미국의 북미방공사령부(NORAD)의 컴퓨터의 잘못으로 소련의 미사일 공격개시 오보로 인해 미군의 핵전쟁 경제태세를 의한 핵무기 보유 및 거래문제가 핵무기와 관련한 심각한 국제안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핵무기 규제문제와 관련한 2개국 쌍방교섭이나 유엔을 통한 다자간 교섭문제에 있어서는 우선 1946년 6월에 발족한 유엔 원자력위원회를 들 수 있다. 1945년 10월 유엔이 창설되자마자 맨 먼저 원자무기 문제를 다루기 시작하여 원자력위원회를 발족시켜 원자무기의 제조ㆍ사용금지와 원자력의 국제관리를 다루게 했으나 냉전 초기 미국과 소련의 의견대립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1948년 5월 17일 교섭이 중단되었다.

 

핵무기 제한교섭은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사건 이후 미ㆍ소간의 화해무드가 시작된 196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같은 해 8월 5일 미국ㆍ소련ㆍ영국 3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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