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1. 25
지난 금요일은 친구 (오)승환이의 결혼식이었다. 가족과 함께 결혼식에 참석했다. 이제 승환이도 조금 더 안정을 찾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선수의 안정은 선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문득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생각을 해봤는데 쉽지 않다. 생각을 글로 옮긴다는 것도 그렇고 쉽다고 느낄 수 있지만, 어려운 주제이기도 해서다. 집에 와서도, 이 얘기에 대해서 길게 생각해 봤다.
불안은 없앨 수 없다
선수는 늘 불안속에서 살아간다. 매일 경기를 한다는 것의 장점과 단점이 명확한데, 실수를 해도 만회할 기회가 있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반대로 오늘 잘해도 내일 못할 수 있다는 것은 단점일 수 밖에 없다. 경기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때까지는 기급적 오늘 있었던 좋은일을 생각한다. 그러나 제 아무리 전날 4안타를 쳐도, 아침에 눈을 뜸과 동시에 걱정이 시작된다. 조바심이 생기는거다. 선수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결국 '오늘 경기 걱정'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늘 일찍 구장에 도착했다.
▲ 한화 이글스 시절의 정근우 / 사진 한화이글스 제공
평일 경기라면 3시30분까지만 가면 되는 일정이지만, 12시까지 갔다. 뭉친근육도 풀고, 소화해야 할 루틴을 다 소화한다. 그리고 경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해야만 불안을 다스릴 수 있었다.
고등학교때도, 대학교때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체육관 불을 가장 늦게 끄고, 열쇠를 행정처에 가져다 주는지, 그게 아니라면 누가 가장 일찍 열쇠를 열고 체육관 문을 여는지 같은 혼자만의 경쟁아닌 경쟁도 했다. 분명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했던 적이 있었을거다.
그런 경쟁 아닌 경쟁들이 팀 분위기도 만들고 하겠지만, 실력이 는다는 기쁨도 있었겠지만, 돌이켜보면 뒤쳐질까봐에 대한 불안을 없애려는 마음이 더 크지 않았나 싶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선수들은 늘 불안하다.
너무 자세한 목표는 불안으로 이어진다
스프링캠프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럴 때면 늘 선수들의 목표가 화제가 된다. 그것이 또 하나의 재미인 것도 안다.
▲ LG 트윈스 시절의 정근우 / 사진 LG 트윈스 제공
선수 시절,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지 않았다.
늘 머리속에 잡아놓은 목표는 '20도루' 하나였다. 나머지 목표에 대해서는 시즌을 치르면서 조금 더 위라고 정하거나, '정근우라는 선수가 이 정도는 해야한다'는 기준점을 그제서야 잡고 수정해 나갔다.
이유는 하나다.
자세하게 목표를 정하면 그것을 하기 위해서 과한 긴장을 하게 된다. 더군다나 시즌 초반부터 그 목표치를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경우, 마음은 더 바빠지고, 시즌을 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도루는 단 하나의 이유였다. 부상 때문이었다.
한 시즌을 부상 없이 치룬다면, 20도루는 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수치였다. 부상을 당하지 않고 싶지만,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시즌 초반 세웠던 과한 목표로 인해, 선수 자신이 '올 시즌은 틀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마음을 갖지 않기 위해서 늘 기본적인 숫자만을 목표로 정했다.
캠프가 시작되면 많은 미디어들은 물을거다. 그리고 그 숫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될거다. 성적이 나온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경우 선수에게는 더 큰 불안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 역시 야구의 재미중 하나다.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선수들은 자신만의 목표가 더 중요하다.
코칭스태프가 해줘야 할 일은?
선수만 불안한 것이 아니라 감독도 코치도 프런트도 불안할거다. 겪어보니 승부의 세계라는 것이 그렇다. 그래도 선수의 불안을 가중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루틴의 중요성이 지금에 와서는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런데 포지션과 라인업에 대한 것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두 가지는 같다고 생각한다. 포지션이 자주 바뀌는 선수, 타순이 자주 바뀌는 선수는 그만큼 더 불안해진다. 안그래도 불안함을 안고 있는 선수에게, 더 많은 불안을 가중시킬 필요는 없지 않을까.
포지션이나 타순을 바꾸면 안된다가 아니라, 선수가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어나서 눈을 뜨면서부터 찾아온 불안을 다스려가며 구장에 오고, 또 자신만의 루틴을 다 소화한 후에 바뀐 포지션과 타순을 아는 것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선수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주는 것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긴장과 이완 그리고 주의환기
위에도 얘기했지만, 선수의 불안은 은퇴하기전까지 늘 함께 한다. 그래서 이완이 중요하다.
(오)승환이의 결혼으로 인해 이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결혼이 내게는 긴장이 계속 쌓일 수 있는 상황에서 이완을 시켜주는 기분좋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미혼인 선수들은 나름의 방법을 찾아야겠지만, 선수는 '결혼이라는 안정'이 경기력에도 확실히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친한 후배들에게도 가끔 해주는 얘기는, 야구가 아닌 평범한 분들과도 만나서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그분들과의 새로운 대화속에서 야구를 잊을 수 있고, 새로운 활력을 얻기도 한다.
▲ LG 트윈스 시절의 정근우 / 사진 LG 트윈스 제공
아는 작가분은 이렇게 말했다.
"혼자만의 공간인 방안에서 몇 시간이고 창작이라는걸 하다보면, 그 안이 불쾌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고 느낄때가 있다. 그럴때면 일부러라도 환기를 시키고, 전화로라도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야구선수가 느끼는 불안도 같다고 느꼈다. '방'이라는 공간은 아니지만, 스스로 만든 불안이라는 감옥에 갇힌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야구가 아닌 소재로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하고, 안좋은 감정을 털어낼 수 있어야만 한다.
긴장과 이완, 그리고 주의환기는 선수생활을 하는데 있어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불안은 파도처럼 오지 않는다. 서서히 차오르는 욕조속의 물 같다.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수위조절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수위조절을 할 수 있는 것은, 남이 아닌 내 자신이다.
오늘 주제가 '불안'인데, 남이 주는 불안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부터 찾아야 한다. 그런 것들이 모여서 루틴이 된다고 생각한다. 남이 준 불안에 허우적거리지 않으려면, 미리 준비해야한다. 스스로 만들어가야만 하는거다.
스프링캠프가 시작된다. 신인이건 베테랑이건 모두 두근두근할거다. 그 긴장을 잘 다스릴 수 있기를, 그래서 모두 원하는 목표를 이루길 기대한다.
정근우 / 전 프로야구 선수, 현 최강야구 맴버
자료출처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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