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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드 파크] 몰라도 너무 몰랐던 '난적' 대만 야구 밀착탐구

---Outside Park

by econo0706 2022. 9. 1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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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8. 31 

 

국제무대에서 한국 야구의 ‘숙적’은 일본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대만도 항상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난적’으로 통한다. 이유가 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아시아 2위로 평가받는 한국은 ‘한 수 위’ 일본과 ‘한 수 아래’ 대만 사이에서 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했다. 두 나라 모두 “한국을 반드시 꺾는다”는 마음가짐으로 국제 대회에 나섰고, 가장 좋은 선발투수를 한국전에 내곤 했다. 

심리적인 요인도 작용했다. 한국이 “한일전에서는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는 각오로 일본과 맞선다면, 대만은 한국을 상대로 비슷한 마음을 품는다. 한국이 일본과 만날 때마다 실력 이상의 경기를 펼쳤듯, 대만 역시 한국만 만나면 기량 이상의 경기력을 보여 준 이유다. 

대만 야구로 인한 아픔은 현재진행형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은 선동열 감독이 초대 국가대표 사령탑에 오른 뒤 처음으로 대표팀을 이끌고 참가한 공식 국제대회였다. 하지만 첫 판부터 대만에게 일격을 당해 1-2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대만 대표팀이 이전처럼 최정예 멤버를 꾸리지 못했는데도, 실업 야구에서 뛰는 투수들에 밀려 점수를 뽑지 못했다. 느슨해졌던 한국 야구에 다시 한 번 ‘대만 경계령’이 떨어진 순간이었다.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 야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B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한국을 이긴 뒤 환호하는 대만 선수들. / 연합뉴스


# 대만 프로야구는 어떻게 운영되나 

대만은 미국, 일본, 한국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프로야구 리그를 운영하는 국가다. 정식명칭은 중화직업봉구대연맹(CPBL·Chinese Professioal Baseball League). 1990년 4개 구단 체제로 출범했다. 여러 팀이 합류했다 해체하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현재는 중신 브라더스, 퉁이 라이온스, 푸방 가디언스, 라미고 몽키스까지 4개 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기리그 60경기, 후기리그 60경기를 각각 치르고 양 리그 우승팀이 대만 시리즈에서 맞붙는다. 한국 프로야구가 초창기에 택했던 방식이다. 한국은 전·후기 우승팀이 같을 경우 한국시리즈를 아예 치르지 않았지만, 대만은 승률 2·3위 팀이 대만 시리즈 진출 티켓을 놓고 3선승제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된다. 또 타이완 시리즈에서는 전·후기 우승팀에게 1승 어드밴티지를 준다. 

야구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리그 역사가 승부조작을 비롯한 각종 사건·사고로 얼룩지면서 좀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할 기회를 놓쳤다.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KBO 리그가 더블A에서 트리플A 정도 수준이라면, 대만 프로야구는 싱글A나 루키리그 정도 수준”이라고 평가하곤 한다. 실제로 한국에서 뛰다 퇴출된 외국인 투수들이 갈 곳을 잃었을 때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리그이기도 하다. 넥센 에이스로 오랜 기간 활약했던 앤디 밴 헤켄(전 넥센)이 올해 퉁이 라이온스 유니폼을 입었고, 닉 애디튼(전 롯데), 마이크 로리(전 KT), 지크 스푸루일(전 KIA) 등도 올해 대만에서 뛰고 있다. 지난해에는 크리스 세든(전 SK), 알프레도 피가로(전 삼성), 스캇 맥그레거(전 넥센), 코리 리오단(전 LG), 스캇 리치몬드(롯데) 등이 대만 프로야구에 몸 담았다. 

대기업들의 주도로 시작된 KBO 리그와 달리 대만 프로야구는 대부분 중소기업들이 참여한 리그로 출발했다. 선수들의 몸값 역시 KBO 리그 선수들의 3분의 1 정도 수준이다. 대만 프로야구에 대대적인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자 현지 관계자들이 “선수들의 연봉이 워낙 적어 ‘검은돈’의 유혹에 빠지기가 더 쉽다”고 분석했던 이유다. 하지만 최근엔 대기업의 투자가 늘어나고 있는 모양새다. 원년부터 구단을 운영해온 퉁이 그룹이 여전히 20대 그룹 안에 건재하고, 2014년엔 대만 10대 그룹 안에 이름을 올린 중신금융지주가 슝디 엘리펀츠를 인수해 리그에 뛰어 들었다. 지난해에는 대만 5대 그룹 안에 포함된 푸방금융지주가 EDA 라이노스를 인수하면서 리그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다만 대만 프로야구의 숙원인 ‘6구단 체제’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승부조작 사건이 남긴 어두운 이미지가 남아 있는 데다, 여전히 관련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대기업들이 안심하고 야구단을 창단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 국가대표팀과 리그 수준은 다른 문제

승부조작 사건으로 프로 리그가 위기를 맞기는 했지만, 여전히 야구는 대만의 ‘국기’로 통한다. 국제대회에서 한국과 일본을 꺾는 일을 ‘사명’으로 여긴다. 야구 월드컵이나 대륙간컵 국제야구대회처럼 한국과 일본이 최정예 대표팀을 내보내지 않는 1.5군급 대회에도 꾸준히 프로 주전 선수들을 출전시켰던 이유다. 한국과 일본에선 TV 중계도 하지 않는 대회를 대만 TV에선 프라임 타임에 대대적으로 방영하는 일도 잦았다. 대만 지상파 방송 개시와 종료 때 나오는 국가 연주 화면에 한국전 연장 승리 장면을 삽입했을 정도다. 

리그 경쟁력이 높지 않은 탓에 기량이 특출한 대만 출신 유망주들은 일찌감치 미국이나 일본으로 향하는 일이 많다. 같은 이유로 이 선수들이 모두 대표팀에 합류할 경우, 대만 대표팀 전력도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특히 올림픽이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처럼 큰 대회에선 메이저리그나 트리플A에서 뛰고 있는 에이스급 투수들을 한국전에 주로 투입한다. ‘두 수 위’인 일본보다는 한국을 꺾을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다는 판단 때문이다. 

물론 프로야구 인프라와 야구 실력 면에서 한참 앞서는 한국을 대만이 이기기는 쉽지 않다. 한국은 프로 선수가 참가하기 시작한 1998 방콕아시안게임부터 지난해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APBC)까지 대만과 총 37경기를 치러 24승13패(승률 0.649)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프로 최정예 멤버가 참가한 메인 국가대표 경기로 범위를 좁히면 17경기 15승2패(승률 0.882)가 된다. 압도적인 승률을 자랑한다. 특히 2008 베이징올림픽 최종예선 이후에는 10연승을 달렸다. 

하지만 대만전을 앞두고 한국 선수단은 늘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한국 야구 역사에 남은 ‘참사’ 대부분이 대만전 패배로부터 시작된 탓이다. 2003년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대회가 대표적이다. 

# 삿포로와 도하의 ‘참사’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로 한국 야구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수확한 한국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또 한 번 기대에 부풀었다. 한 해 앞서 열린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는 아시아 지역 올림픽 예선을 겸하는 대회라 아테네에게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다. 한국·일본·중국·대만 4개국 가운데 2개국만 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얻을 수 있었지만, 한국은 일본 외에 다른 국가에게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 ‘도하 참사’ 당시 대만 첸융치가 한국 선발 손민한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치고 한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야구에 ‘100% 보장된 승리’란 없다. 대만은 한국보다 절박했다. 12년 만의 올림픽 본선 진출을 목표로 해외파 선수들을 모두 끌어 모았다. 한국전 선발은 뉴욕 양키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던 왕첸밍. 한국 타자들이 쉽게 공략하기는 어려운 투수였다. 한국도 그해 한국시리즈 MVP 정민태를 내세웠고, 9회초까지 4-2로 앞섰다. 


그런데 9회말 사단이 났다. 5회부터 마운드에 올라 계속 버티던 임창용이 두 타자를 연속 볼넷으로 내보냈다. 구원 등판한 조웅천은 투아웃까지 잘 잡고도 적시타 두 개를 연이어 내줬다. 4-4 동점. 결국 승부는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연장 10회 구원 등판한 세이부 소속 투수 장즈자는 박한이-이승엽-김동주를 모두 범타로 돌려세웠다. 결국 한국은 10회말 1사 만루서 끝내기 안타를 얻어맞았다. 4-5로 패했다. 결국 한국은 일본에게도 졌고, 3전 전패를 당한 중국과 함께 탈락했다. 한국이 아닌 대만이 일본과 함께 아테네행 비행기에 올랐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도하 참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불과 3년 뒤인 2006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아안게임. 한국은 철저하게 군 미필자 국내파 선수들 위주로 팀을 꾸렸다가 해외파가 총출동한 대만에 패해 금메달을 날렸다. 대만은 한국전에 당시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던 궈홍치(당시 LA 다저스)와 장첸밍(요미우리)을 모두 투입했다. 에이스 두 명이 ‘1+1’로 마운드에 오르자 당연히 타자들은 헛방망이질을 했다. 반면 대만에선 시애틀에서 활약하던 해외파 천융치가 한국 에이스 손민한을 상대로 홈런을 쳤다. 2-4 패배. 결국 한국은 사회인야구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 대표팀에도 충격패를 당해 동메달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아시안게임 태극마크를 프로 선수 병역 혜택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던 안일함에 발목을 잡힌 셈이다. 

# 이길 때도 힘들게 이겼다 

이뿐 아니다. 끝내 이기긴 했어도 내용상 진땀을 흘린 경기도 많았다. 프로 선수들의 병역 대체 복무 혜택이 걸린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주로 그랬다. 1998 방콕 대회와 2002 부산 대회 결승전에서 대만을 상대로 1점 차 힘겨운 승리를 따냈다. 안방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결승도 다르지 않았다. 경기는 6-3으로 끝났지만 7회까지 2-3으로 뒤져 패색이 짙었다. 심지어 7회에는 무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가 무실점으로 간신히 막아 내기도 했다. 8회초 타선이 대역전 드라마를 펼치지 않았다면 금메달이 날아갈 뻔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선 1회 먼저 7점을 뽑고도 6회 8-8 동점을 허용하며 망연자실했다. 결국 9-8, 1점 차로 겨우 이겼다. 23세 이하 선수들이 참가한 지난해 11월 APBC 대만전 역시 1-0으로 신승했다. 대만이 내세운 선발 투수는 일본 프로야구 지바롯데에서 뛰고 있는 천관위. 한국의 젊은 타자들은 출중한 실력을 갖춘 생소한 투수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정후의 적시 3루타로 결승점을 뽑는 데 성공했지만, ‘한 방’이 있는 대만과 펼친 승부라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놓지 못했다. 

대만은 오랫동안 한국에 ‘장타력이 뛰어난 대신 마운드와 수비가 약하고 타격의 정교함이 떨어지는 팀’이라는 인상을 심어 줬다. 하지만 이제 대만은 해묵은 약점을 조금씩 극복하고 있는 모양새다. 마운드와 수비 모두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성장하고 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B조 1차전은 대만 대표팀이 실업 야구에서 뛰는 투수들 셋을 내보냈는데도 패했기에 더 충격적이었다. 선수들의 몸값은 점점 오르는데 정작 리그의 경쟁력은 뒷걸음질하고 있는 한국 야구에 대만 야구가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렸다. 

 

배영은 / 일간스포츠 기자 

 

자료출처 : 일요신문 [제13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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