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07. 16
1990년대에는 일본 프로야구 판에도 심심하면 그라운드에서 난투극이 벌어졌던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당시 요시쿠니 이치로 일본야구기구(NPB) 커미셔너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 ‘좌선(坐禪)’을 권유하는 일까지 있었을까.
1990년 5월 29일치 일본 <닛칸스포츠> 기사에 따르면 ‘요시쿠니 이치로(73) 커미셔너가 유니크한 좌선을 권유하고 나섰다. 폭행, 퇴장사건 등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는 최근 야구계를 염려한 나머지 경직된 마음을 풀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각 구단에 좌선을 권유하게 됐다.’는 것이다.
경기가 격화되다 보면 그 어디라 할 것 없이 충동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야구에서 특히 시비가 쉽게 발화(發火)할 수 있는 곳이 바로 2루다. 1루 주자가 더블플레이를 모면하기 위해 발을 쳐든 위협적인 자세로 짓쳐 들어가기 때문에 상대팀 유격수나 2루수와 충돌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 LG의 4회 초 공격 때 2루로 발을 쳐들고 들어가던 박종호(가운데)를 롯데 2루수 박정태(주형광에게 가린 선수)가 글로브로 내리치자 박종호가 상대를 떼밀어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장면. / 일간스포츠
1997년 7월 22일에 부산 사직구장에서 일어났던 당대의 최고 2루수 롯데 박정태(당시 28살)와 LG 박종호(당시 24살)의 정면충돌도 바로 그런 흐름에서 나왔다.
양 팀 간 시즌 10차전이 열렸던 그날 사직구장에는 유료관중이 3952명에 불과했다. 그해는 롯데가 맨 꼴찌를 면치 못하는 등 본격적인 침체기에 들어가는 해였다. 부산 관중들도 이미 시들해져 가고 있었다. 에이스 주형광의 부진, 노장 윤학길의 퇴조, 계약금 5억 원의 대형 신인 손민한이 초장부터 어깨부상을 호소하고 문동환도 팔꿈치 부상을 당하는 등 마운드가 부실했다. 특정 선수의 ‘나홀로 투혼’ 만으론 침몰해가는 팀을 구출해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박정태의 투혼도 소용이 없었다.
4회 초 LG 공격. 1사 1, 2루에서 1루 주자였던 박종호가 1번 유지현의 유격수 앞 땅볼 때 더블플레이를 막기 위해 발을 쳐들고 2루로 슬라이딩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롯데 2루수 박정태가 박종호를 글러브로 내리치며 아웃시키자 발끈한 박종호가 박정태를 떼밀어 버린 것이다.
박정태는 곧바로 박종호의 안면을 주먹으로 쳐 분풀이를 했다. 그 순간, 양 팀 선수들이 일제히 덕 아웃을 박차고 뛰쳐나와 그라운드에서 서로 뒤엉켜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
그 와중에 LG 투수 송유석(당시 31살)이 박정태를 향해 달려가 그대로 주먹을 날려 난투극 일보직전까지 가는 볼썽사나운 꼴을 연출했다.
상황이 험악해지자 심판진은 싸움을 뜯어말리는 한편, 박정태와 송유석을 나란히 퇴장시켜 현장을 수습했다.
이 소동으로 하오 8시 3분께부터 중단된 경기는 8분 뒤인 8시 11분께에야 속개됐다. 경기는 롯데가 6-5로 승리했지만 그해 처음으로 집단 몸싸움을 벌여 양 팀 선수가 한 명씩 퇴장 당하는 불상사를 남겼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그 이튿날인 23일에 곧바로 상벌위원회를 열어 시즌 선수 퇴장 1, 2호가 된 박정태와 송유석에게 각각 제재금 100만 원과 150만 원의 징계를 내렸다. 제재의 이유로 박정태는 ‘상대선수 구타, 퇴장’, 송유석은 ‘시비 당사자가 아닌 선수가 상대 선수 구타, 퇴장’ 을 들었다.
박정태와 박종호는 한국 프로야구사에 의미 있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명 2루수였다. 2000년에 타격 1위에 올랐던 스위치 히터 박종호는 1994년과 2000, 2004년 3차례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탔다. 무엇보다 박종호가 세운 39게임 연속안타 기록은 한국 프로야구 연속경기 안타 최다 기록(2003년 8월 29일~2004년 4월 21일)으로 공교롭게도 박정태의 종전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박정태는 자타공인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2루수’이다. 1998, 1999년 이태 연속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로 빛났던 그는 1991, 1992, 1996, 1998, 1999년 등 역대 2루수 가운데 가장 많은 5차례의 골든글러브 수상자이다. 박정태는 연속경기 안타 2위 기록(31게임. 1999년 5월 5일~1999년 6월 9일)을 지니고 있다.
신, 구 2루수의 그라운드 격돌은 한국 프로야구사에 한 얼룩으로 남았다.
홍윤표 선임기자
자료출처 :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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