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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뒤집기] 한국 스포츠 종목별 발전사 - 사격 (3) 아시안게임에서는 선전 이어 가

---[스포츠 種目別 發展史]

by econo0706 2022. 9. 2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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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2. 26.

 

1972년 뮌헨 올림픽에 이어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과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도 사격은 ‘노메달’에 그쳤다. 한국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는 불참했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아시아 3강 가운데 중국은 금메달과 동메달을 3개씩 획득해 미국(금 3 은 1 동 2)에 이어 종목 순위 2위를 기록했고 일본은 금메달 1개를 차지했다.

올림픽에서 부진이 이어지는 사이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선전을 거듭했다. 1958년 도쿄 대회에 7명의 선수가 처음으로 출전해 메달을 따지 못했으나 1962년 자카르타 대회에 5명의 선수가 출전해 남상완이 300m 소총 3자세 금메달을 차지하는 등 금메달 1개와 동메달 2개로 일본(금 3 은)에 이어 단숨에 종목 순위 2위에 올랐다.

1966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는 25m 센터파이어 권총 단체전과 50m 권총 단체전, 50m 소총 복사의 추화일 등 금메달 3개와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한국 선수단 전체 금 12 은 18 동 21)로 본격적으로 효자 종목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는 김영배가 25m 센터파이어 권총, 신현주가 50m 소총 3자세에서 금메달을 땄고 50m 소총 3자세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보태는 등 금메달 3개와 은메달 2개, 동메달 4개(한국 선수단 전체 금 18 은 13 동 23)로 메달박스로서 제 몫을 했다.

그러나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처음으로 남북 경쟁이 벌어진 1974년 테헤란 대회에서는 스키트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대체로 좋은 성적이 아니었다. 소구경소총복사 단체전 등 은메달 4개와 센터파이어 권총 단체전 등 동메달 5개를 더하는 데 그쳤다. 반면 북한은 1972년 뮌헨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이호준이 공기소총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는 등 금메달 10개와 은메달 4개(북한 선수단 전체 금 15 은 14 동 17)를 기록하면서 초강세를 보였다.

 

▲ 1978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사격에서 유일한 금메달을 명중한 속사권총의 박종길. / ⓒ 대한체육회

 

▲ 1978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사격 종목에서 한국 선수단에 소중한 금메달을 안긴 박종길(가운데)이 시상대에 서 있다. 오른쪽이 북한의 서길산. / ⓒ대한체육회

 

1978년 방콕 대회에서는 박종길이 속사권총 개인전에서 유일한 금메달을 차지하고 6개의 은메달과 8개의 동메달을 보탰으나 금메달 6개와 은메달 5개, 동메달 1개의 북한에 뒤졌다. 1982년 뉴델리 대회에서는 북한(금 7 은 4 동 3)에 뒤지긴 했지만 금메달 3개와 은메달 3개, 동메달 4개로 제 몫을 했다. 1986년 서울 대회에서는 북한이 불참한 가운데 애초 목표였던 금메달 4개를 뛰어넘는 7개의 금메달을 차지해 이후 있을 국제 대회의 선전을 예고했다.

1990년 베이징 대회 이후 1998년 방콕 대회까지 중국이 독주하는 가운데 한국과 북한은 사격 종목에서 치열한 경쟁을 이어 갔다. 그러나 2002년 부산 대회에서 한국(금 6 은 12 동 11, 2위)과 북한(금 2 은 4 동 5, 4위)의 순위가 역전됐고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한국이 2위(금 13 은 8 동 7)에 오르고 북한(금 3 은 4 동 5)이 3위를 하긴 했지만 메달 숫자의 격차가 워낙 커 아시아 무대에서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사격 남북 경쟁은 사실상 끝났다. <4편에 계속>

 

신명철 기자

 

자료출처 : 스포티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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