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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뒤집기] 한국 스포츠 종목별 발전사 - 빙상 (1)

---[스포츠 種目別 發展史]

by econo0706 2022. 11. 19.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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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23.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우리나라 겨울철 스포츠 종목의 주력인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등 3개 종목을 주관한다. 종목별 발전사 빙상경기 편에서는 이들 3개 종목의 발전사를 차례대로 싣는다.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더불어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체육계도 활기를 찾으면서 종목별 경기 단체 창립이 줄을 잇는다. 해방 직전인 1945년 7월 27일 조선송구(핸드볼)협회가 창립된 것을 시작으로 조선체조협회(9월 1일), 조선육상경기연맹(9월 24일), 조선탁구협회(9월 28일) 등에 이어 11월 24일 조선빙상경기협회(회장 최도용)가 출범했다. 축구와 농구 등 일부 단체는 일제 강점기에 조직돼 재건된 것이었으나 빙상경기 단체는 우리 손으로 처음 설립했다.

 

그런데 조선빙상경기협회는 1946년 4월 조선빙상속도협회(스피드스케이팅)와 조선빙상형활협회(피겨스케이팅)로 분리돼 독자적으로 운영됐다. 이어 1947년 6월 두 협회가 조선빙상경기연맹으로 통합 및 개칭됐고 그해 국제빙상경기연맹(ISU)에 가입했다. 올림픽 등 국제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을 일찌감치 만든 것이다. 이어 1948년 9월, ‘조선’을 ‘대한’으로 바꾸는 당시 흐름에 발맞춰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 개칭됐고 이후 다시 상당 기간 대한스피드스케이팅협회와 대한피겨스케이팅협회로 분리돼 운영되다가 1980년 2월 ISU 조직과 연계해 두 협회가 통합해 오늘날의 대한빙상경기연맹이 됐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맨 처음 스케이트를 신고 얼음을 탄 사람은 현동순이다. 1908년 5월 임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서울YMCA 총무 필립 질레트(한국 이름 길례태·吉禮泰)가 불필요한 가구를 경매했을 때 15전을 주고 질레트가 사용했던 스케이트를 사서 현동순이 그해 겨울 삼청동 개천에서 탄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스케이팅으로 알려져 있다. 필립 질레트는 여명기 우리나라 스포츠의 큰 은인이다. 우리나라 청년들의 체력 향상을 위한 스포츠 활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필립 질레트는 1904년 야구에 이어 1907년 농구도 국내에 소개했다.

 

1908년 2월 1일 평양 대동강에서 일본인들이 빙상 운동회를 가진 것이 우리나라 첫 빙상경기 행사다. 1910년 2월 6일 일본인이 발행한 일출신문사 주최로 한강에서는 처음으로 우리 민족의 빙상 운동회가 열렸다. 이 행사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수만 명 인파는 스케이팅에 대한 호기심을 보였다.

 

그런데 2015년 12월 10일 KBS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조선을 사랑한 의사 에비슨 42년의 기록’에는 우리나라 스케이팅 역사와 관련한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1894년으로 추정되는 해에 캐나다에서 온 의사 올리버 에비슨은 고종의 초대로 경복궁 안에 있는 연못인 향원지에서 국내에 머무르고 있는 외국인들과 함께 스케이트를 탔다. 그때 고종은 먼발치에서 이들이 얼음을 지치는 장면을 지켜봤다고 한다. 19세기 말에 이 땅에 스케이팅이 소개된 것이다. 이 내용은 대한빙상경기연맹 연혁에도 올라 있다.

 

1929년 1월 20일 동아일보와 조선체육회 공동주최로 한강에서 열린 전조선빙상경기대회를 보도한 동아일보 지면. / 동아일보DB

 

1920년대 초반까지 스케이트장 개설과 중국 빙상경기단 초청 스케이트대회 개최 등으로 조금씩 보급돼 가던 스피드스케이팅은 1923년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1923년 동아일보사 평양지국은 대동강에서 우리 민족 손으로는 처음인 빙상경기대회를 열었다. 1월 20일 대동강빙상대회라는 이름으로 치러진 이 대회에는 참가금 50전만 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다. 경기 종목은 크게 전진 경기, 배진(背進=후진) 경기 두 가지로 나뉘었으며 한 바퀴 320야드(약 293m)의 링크를 30바퀴까지 도는 최장거리까지 여러 세부 종목이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처음 여는 빙상경기대회여서 대동강 강변의 양쪽 성벽 위에는 수많은 관중이 모여 경기를 지켜봤다. 배진 3바퀴에서 우승한 함흥 출신의 한소환, 전진 15바퀴의 패권을 차지한 강봉삼, 최장거리인 전진 30바퀴의 우승자 김인덕의 인기는 대단했다. 대동강빙상대회는 제3회 대회부터 국제 경기 종목대로 진행됐으며 제4회 대회부터는 관서체육회 주최 대회로 흡수됐다.

 

조선체육회(오늘날의 대한체육회)는 대동강빙상대회보다 2년 뒤인 1925년 1월 5일 한강에서 제1회 전조선빙상경기대회를 개최했다. 경기 종목은 전진부에 100m와 400m, 800m, 1500m, 5000m, 1만m 그리고 후진부에 300m와 600m, 800m 계주가 있었다. 이날은 날씨가 포근해 얼음이 두껍지 않다고 해서 많은 사람이 얼음 위에 몰리면 자칫 얼음이 깨져서 위험할지 모른다며 경찰이 대회 중지를 명령했다. 그러나 주최 측은 선수 63명만 얼음 위에 세운다는 조건으로 경찰을 설득해 대회를 강행했다. 이 대회 청년단 전진부에서 박유돈(평양)은 800m(1분38초)와 1500m(3분23초), 5000m(13분21초) 등 3개 종목 우승을 휩쓸었다. 800m는 요즘 시행하는 세부 종목이 아니다.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출전 선수 기준으로 1500m는 1분28초(주형준), 5000m는 6분25초61(이승훈)이다. <2편에 계속>

 

신명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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