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5. 28.
1년에 144경기를 치르는 프로야구선수는 영웅과 역적의 사이를 매일같이 오간다. 극적인 끝내기 안타로 팀 승리를 견인하기도, 연이은 병살타에 실책으로 패배를 자초하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예전과 같지만, 지금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칭찬과 폭언도 뒤따르는 시대다. 잘 잊는 법, 그리고 자기암시. 유강남(29·LG 트윈스)이 아픔을 털어낸 방법이다.
유강남은 26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5타수 3안타 3타점으로 팀의 5-3 승리에 앞장섰다. 0-2로 뒤진 3회초 추격의 1타점을 올린 데 이어 3-3으로 맞선 9회초 2타점 역전 결승타를 때려냈다. 경기 후 수훈선수 인터뷰에 나선 유강남은 “안타 치는 순간 ‘기삿거리가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1일 인천 SSG 랜더스전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유강남은 5-5로 맞선 9회말 1사 만루에서 판단 착오로 끝내기 득점을 허용했다. MLB닷컴에서도 토픽으로 소개될 만큼 생경한 광경이었다. 공교롭게도 LG가 이날 포함 4연패를 기록하며 비난 여론은 거세졌다. 유강남은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앞으로 남은 100경기, 나 때문에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많이 만들자고 다짐하면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단순히 한 마디 이상의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잠을 설쳤다”고 연신 말했을 만큼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 장면을 털어내기 위해 휴대전화로 시선을 돌려도 SNS에 욕설 메시지가 쇄도했다. “나를 응원하던 분들이 보내신 것”이라고 포장했지만, 선 넘는 폭언이다. 자연히 머리에 자책이 맴돌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걸 극복했기 때문에 더욱 값진 멘트였다.
▲ LG 유강남. 스포츠동아DB
국내 스포츠심리학 대가로 꼽히는 한덕현 중앙대 스포츠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7일 “유강남의 인터뷰는 굉장히 중요한 자기암시의 표현이었다. 경기를 주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만 가능한 말”이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유강남의 멘탈이 강하다는 의미다. 어쩌면 지금 LG를 상징하는 말일 수 있다. 이전에는 1위를 하고 있어도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가득했다면, 지금은 순위가 오르락내리락 해도 불안이 덜한 증거가 여러 장면에서 보인다. 유강남의 인터뷰는 그 증거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종열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1000경기 이상 치르다 보면 ‘나 때문에 진 날’이 있기 마련이다. 나 역시 끝내기 실책을 저지른 적이 있다. 그대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얘기했다. 이어 “유강남의 그 인터뷰는 미디어, 팬은 물론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역할도 있을 것이다. 타고난 성격에 경험이 더해져 갖춰진 성숙함”이라고 덧붙였다.
모든 지도자들은 데일리스포츠인 야구선수 최대 덕목으로 ‘잘 잊는 것’을 꼽는다. 하지만 개인 공간까지 침해받는 상황에서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법적 절차를 진행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실수 하나의 무게감이 더 크게 다가오는 시대, 유강남의 경험은 성숙함을 선물했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스포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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