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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스포츠 100년] (18) 조선체육회 재정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나?

---[스포츠100년史]

by econo0706 2022. 12. 5.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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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04. 24.

 

조선체육회 재정은 회비와 대회 수익금으로 충당

일제의 매서운 감시 속에서 창립한 조선체육회는 무엇보다 재정이 가장 큰 문제거리였다. 동아일보 변봉현 기자가 '조선체육기관의 필요성을 논함'이라는 세 차례 논설 마지막 부문에서 '경비 변통'이 조선체육회 창립의 큰 변수라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당시 체육은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담당했는데 조선인들의 단체에 자금을 지금해 줄리가 만무했고 모든 대회 경비는 자체적으로 조달해야 했다.

따라서 조선체육회가 어떻게 재정문제를 해결했는지는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조선체육회 창립 회칙이 아직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1924년 제5회 정기총회에서 수정된 회칙제6장에 따르면 경비는 기본금 이자, 회비, 의연금 및 기타 수입으로 충용한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기본금 이자는 매년도 말에 해당 연도 총수입 10분의 1 이상의 금액을 기금으로 적립한다는 회칙 제20조에 따른 기금 이자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시 조선체육회가 얼마나 기금을 적립했는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로 남아있다.

또 의연금은 순종황제가 1919년 8월 2일(음력 기미년 7월 7일) 시민체육 발달을 위해 새로 설치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일금 150원을 조선체육협회에 하사하고(조선왕조실록 순종실록 부록 7책 10권 16장), 1921년 5월 2일(음력 신유년 3월 25일) 조선체육회에 일금 200원을 하사했다(조선왕조실록 순종실록 부록 8책 12권 8장)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조선 황실에서도 체육기관의 설립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회비는 회원이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회원은 개인회원과 단체회원으로 2가지 종류이며 개인회원은 통상회원과 특별회원으로 나누었다. 통상회원은 연간 3원의 회비를 납부해야 하며 특별회원은 50원을 일시금으로 내게 했다. 또 단체회원은 학교 및 기타 단체로 연간 10원 이상의 회비를 납부토록 규정해 놓았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것은 1개 단체회원에게는 3개 개인회원의 자격을 주었다는 점이다. 이는 회비를 많이 내는 쪽에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주식회사의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총회 등에서 어떻게 표결에 참여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내용으로 미루어 조선체육회의 재정은 회원에게서 상당부분 의존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회비 징수 문제로 상당한 고민을 한 흔적은 곳곳에서 엿보인다.

 

▲ 조선체육회가 주최한 정구대회 모습. 조선체육회의 재정은 대회 입장수입과 회원들의 회비가 주를 이루었다.


조선체육회는 1926년 7월 15일 중앙기독교청년회관 내 본 회관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통상회원 회비를 월 50전에서 연 3원으로 개정하고 ►유지회원을 신설해 매년 10원 이상을 납부하는 자로 하며 ►지금까지 미수회비는 전부 면제하고 1926년 7월부터 개정규칙에 따라 징수하며 ►회비 1년 체납자는 제명한다는 규칙 개정을 단행했다. <동아일보 1926년 7월 18일>

1928년 8월 18일 제9회 정기총회에서는 직제를 종전의 위원제에서 회장, 이사, 간사제로 개정하고 회 유지의 필요상 회비를 독촉하며 전년도 분은 총회 당일부터 3개월 이내, 금년도 분은 6개월 이내에 미납하면 단연 제명키로 가결했다.<동아일보 1928년 8월 20일>

여기에서 보듯 조선체육회는 회비 조정, 독촉, 회원 신설, 체납자 제명 등 회칙을 개정하면서까지 회 운영의 기본이 되는 회비 미납을 줄이기 위해 골머리를 썩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제명한다는 엄격한 규정까지 만든 것으로 보아 조선체육회 운영에 회비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조선체육회 예산에서 회비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혹은 어떤 항목에서 수입이 얼마나 됐고 지출이 얼마였는지에 대한 자료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조선체육회 정기총회 회계보고에서도 수입과 지출에 대한 구체적인 세부항목이 없고 전체 규모만 나올 뿐이고 이마저도 일부 연도는 빠져 있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1925년은 수입 4588원91전, 지출 4588원91전<동아일보 1925년 7월 6일>으로 재정이 균형을 이루었고 1928년에는 수입 3093원94전, 지출 2731원67전<동아일보 1928년 7월 25일>으로 362원27전의 흑자를 보았다. 1930년 제11회 정기총회에서는 수입 2463원6전, 지출 2249원35전으로 잔고 213원71전<매일신보 1930년 5월 17일>, 1931년 제12회 정기총회에서는 수입 1865원6전에 지출 1762원7전, 잔고 102원99전<동아일보 1931년 5월 12일>, 1933년에는 수입 1535원42전, 지출 1462원28전<동아일보 1933년 6월 1일>으로 73원14전이 남은 것으로 보고했다.

여기에서 보듯 조선체육회가 재정에서 흑자를 남겼지만 전체적인 재정규모는 오히려 갈수록 줄어들었다. 정기총회에서 보고하는 재정 규모가 직전 연도 재정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1933년도의 수입은 1925년에 견주어 35%, 지출은 32%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격감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앞서 기술한대로 수입과 지출의 세부항목이 없어 단순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조선체육회가 종합대회인 전국체육대회에 치중하고 나머지 일반 경기대회는 후원으로 이름만 빌려주었을 뿐 실제로는 각 종목 단체에서 주최를 한 때문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일제가 지속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면서 군비 조달을 위해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수탈을 이어 간데다 조선인들의 단합을 두려워 해 조선체육회에 감시의 눈초리를 더욱 강화하면서 대회 입장 수입이 줄어든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태화 기자 cth08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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