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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드 파크] 프로야구 주장의 세계

---Outside Park

by econo0706 2023. 2. 1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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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1. 13

 

요즘 그라운드에는 유니폼 앞에 커다랗게 ‘C’자를 부착한 선수들이 종종 눈에 띈다. C는 바로 ‘캡틴(Captain)’의 이니셜. 그 선수가 팀의 주장이라는 표식이다. 사실 C자를 유니폼에 새겨온 종목은 야구가 아니라 아이스하키다. 가슴에 커다란 C자를 달고 있는 주장만이 심판의 판정에 대해 문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메이저리그의 일부 주장들도 아이스하키처럼 유니폼에 C를 새겨 넣기 시작했다. 주장 문화가 흔치 않은 메이저리그에서는 ‘캡틴’이라는 칭호 자체가 무척 드물고 영광스러운 일이라서다.

 

이후 한국에도 조금씩 비슷한 문화가 퍼졌다. 주장의 책임감을 유니폼으로 표현하는 사례가 늘었다. 메이저리그 명문구단 보스턴에서 주장을 맡았던 명포수 제이슨 배리텍은 자신의 유니폼에 새겨진 C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내 왼쪽 가슴 위의 C 자는 캡틴의 이니셜이자 ‘소통(Communication)’의 이니셜이기도 하다. 주장이란 모든 선수들이 하나가 돼 경기를 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대화의 창구를 상징하는 것이다.” 
 

▲ 최근들어 ‘예비 FA 캡틴’이 대세다. 팀·개인 성적 향상의 동기부여가 확실해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두산은 올해 역시 예비 FA 김재호를 새 주장으로 뽑았다. 작은 사진은 지난 시즌 주장들로 10개 구단 주장 중 5명이 모두 예비 FA였다./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아래 사진은 왼쪽부터 삼성 박석민, 넥센 이택근, 두산 오재원, KIA 이범호, 한화 김태균


# 주장은 어떤 존재인가 

배리텍의 해석은 현대 야구에서 점점 중요해지는 주장의 역할을 대변한다. 한 프로야구 코치는 “요즘 프로야구단에는 사실상 두 명의 감독이 있다고 보면 된다.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휘하는 진짜 감독, 그리고 그라운드 밖에서 선수들을 아우르는 라커룸의 감독(주장)이다. 그만큼 선수단 내에서 주장의 역할과 비중은 생각보다 크다”고 증언했다. 어디서나 ‘소통’이 화두인 시대에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주장의 임무 또한 예전보다 더 막중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주장은 보통 두 가지 방식으로 뽑는다. 감독이 직접 선임하거나 선수단이 투표한다. 예전에는 전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후자가 늘었다. KIA 김기태 감독은 LG 사령탑 시절 선수들은 물론 프런트와 코칭스태프까지 투표에 참여해 주장을 뽑는 파격적인 방식을 취한 적도 있다. 주장에게는 구단이 매월 판공비를 지급한다. 팀마다 다르지만 50만~100만 원 정도다. 수석코치가 받는 품위유지비와 비슷한 수준이다. 주장은 경기 전과 후는 물론 비시즌에도 할 일이 많다. 감독과 코치들에게 선수단 내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부터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총회에 대표로 참석하는 것까지 모두 주장의 임무다. 크고 작은 선수단 내부의 문제들도 앞장서 해결해야 한다. 특히 팀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는 주장이 해야 할 일이 더 많다.

물론 주장의 권한은 감독의 스타일에 따라 다르다. 주장에게 그야말로 ‘전달자’ 역할만 시키는 감독이 있는가 하면, 그라운드 밖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전권을 맡기는 감독도 있다. 전자는 주로 베테랑 감독들, 후자는 주로 젊은 감독들이다. 감독과 주장 사이의 역학관계에 따라 선수단 내부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A 구단은 똑같은 선수가 2년 동안 주장을 맡았지만, 두 시즌의 라커룸 분위기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 주장의 성과에 대한 평가도 1년 사이 극과 극을 오갔다. 두 시즌의 감독이 달랐던 까닭이다. 이 구단 관계자는 “감독과 주장의 호흡이 팀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치고, 그 분위기가 결국 팀 성적으로 직결되기도 한다”며 “주장을 잘 뽑고 그 주장과 ‘밀고 당기기’를 잘 하는 것도 감독의 능력인 것 같다”고 귀띔했다. 

# 주장의 덕목이 바뀌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주장이 갖춰야 할 덕목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한 야구관계자는 “예전 주장들에게는 후배들에게 큰 소리도 쳐가면서 선수단을 강하게 통솔하는 장악력이 꼭 필요했다. 당연히 주장 자리는 카리스마 있는 고참 선수들의 몫이었다”며 “지금 주장의 역할은 리더십보다 선수들의 크고 작은 의견과 요구를 구단과 코칭스태프에게 얼마나 잘 전달하느냐, 그 사이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게 얼마나 잘 조율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선수들이 가장 꺼리는 주장은 오히려 ‘구단이나 감독과 너무 가까운 주장’이다. 현역 B 선수는 “구단에서 혜택을 많이 받은 주장들은 아무래도 팀에 선수단 내부의 고충을 제대로 전달하기가 어렵다. 주장은 감독과 선수단 사이에서 소통을 하는 게 우선인데, 그 선을 넘어 구단과 선수단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려다 도리어 감독과 더 멀어지는 경우도 생긴다”며 “팀 성적이 좋을 때는 상관없지만, 성적이 안 좋을 때는 선수단 내부에서도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구단이나 감독의 의견을 듣고 와서 그대로 선수단에 전달만 하는 주장들은 믿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주장이 자기 성적만 신경 써서는 안 된다는 것 역시 기본 중의 기본이다. 현역 C 선수는 “주장을 팀의 간판스타가 쓰는 감투로 여기고 주장이 된 후에도 평소처럼 자기 야구에만 신경을 쓰는 선수들을 몇몇 봤다. 또 선수들에게 주의를 주고 꾸짖는 게 주장의 역할이라 여기다가 팀 내 불화만 더 생겼던 일도 많다”며 “반대로 좋은 주장들은 경기가 끝난 뒤 연봉이 적은 선수들에게 밥을 사주고 일일이 챙기면서 그들의 어려움에도 귀를 기울이고 격려한다. 사실 진짜 주장의 도움이 필요한 선수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평소 그렇게 선수단을 어우르는 주장의 설득이라면 선수들도 자연스럽게 듣게 된다”고 했다.

# 나이와 카리스마가 전부인 시대는 지났다

야구단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모인 집단이다. 이름값 높고 몸값 높은 스타 선수들 사이에서 주장이 제 목소리를 내려면 성적이 뒷받침돼야 하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성적에 따라 수천도 아닌 수억, 수십억 원의 몸값 격차가 생기는 상황에서 ‘야구 못하는 선배’의 말은 야구 잘하는 후배들에게 권위를 잃는다. 안 그래도 신경 쓸 일이 많은 주장들의 부담감도 점점 커져만 간다. 오랜 기간 주장 역할을 하다 은퇴했던 한 야구 관계자는 “마지막으로 주장을 맡았던 해에는 솔직히 아픈 데가 너무 많아서 일찍 시즌을 접고 싶었다. 그러나 주장이 최소한의 성적은 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 때문에 이를 악물고 버텼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예전에는 흔치 않았던 ‘예비 FA’ 주장들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 다른 야구 관계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FA 자격 취득을 앞둔 예비 FA들은 개인 성적에만 치중해 선수단의 리더 역할을 맡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많았다. 그러나 요즘에는 오히려 최선을 다해 한 시즌을 치러야 하는 예비 FA가 주장을 맡는 게 팀에 더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이 더 많다. 팀의 구심점이 되려면 스스로 성적 부분에서도 당당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FA가 될 주축 선수에게 오랜 기간 몸담은 소속팀에 대한 책임감을 다시 한 번 심어주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 시즌에는 10개 구단 주장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다섯 명(삼성 박석민, 넥센 이택근, 두산 오재원, KIA 이범호, 한화 김태균)이 모두 예비 FA였다. 이들 가운데 NC로 이적한 박석민을 제외하면 네 명이 모두 원 소속구단에 남았다. 올해 역시 두산이 예비 FA인 김재호를 새 주장으로 뽑았다.
 
이뿐만 아니다. 점점 주장들도 젊어지고 있다. 30대 중후반의 선수가 주장 완장을 차던 시절은 지났다. 지난해 박석민과 오재원이 만 30세의 나이로 주장 역할을 했고, 올해도 김재호와 kt 주장 박경수의 나이가 30대 초반이다. 무엇보다 넥센은 20대 후반인 서건창에게 새로 주장 완장을 채웠다. 서건창은 이전까지 4년 동안 넥센의 주장으로 활약했던 이택근보다 무려 아홉 살이 어리다. 박병호와 강정호를 비롯해 팀 전력의 기둥 역할을 하던 선수들을 연이어 떠나보낸 넥센이 팀 컬러를 역동적으로 바꾸기 위해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서건창은 2012년 신인왕이자 2014년 최우수선수(MVP) 출신이다. 나이보다 팀 안팎에서 차지하는 정신적 비중을 더 많이 고려한 것이다. 또 LG는 선수단 투표를 통해 투수 류제국을 새 주장으로 선출했다. 전통적으로 주장은 주로 야수들이 맡아왔던 관례 역시 조금씩 깨지고 있다. 

 

배영은 / 스포츠 자유기고가 

 

일요신문 [제1235호] 

 

뉴욕 양키스 주장의 의미 
 - ‘영원한 캡틴’ 데릭 지터 후임 공석으로…

▲ 데릭 지터가 은퇴한 이후 양키스의 주장 자리는 공석이다. / EPA=연합뉴스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은 어느 팀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야구팬이 뉴욕 양키스를 꼽을 듯하다. 


양키스는 세계 최고의 리그인 메이저리그에서 월드시리즈 역대 최다 우승(27회)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수많은 야구선수들이 양키스의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동경한다. 그렇다면 그 명문구단 양키스의 현재 주장은 누구일까. 답은 ‘없음’이다. 

양키스의 주장 자리는 지난해부터 공석이다. 앞으로도 당분간 주장 완장을 찬 선수는 나오지 않을 예정이다. 2014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전 주장 데릭 지터 때문이다. 양키스는 1901년 창단 이후 114년간 오직 16명의 선수에게만 주장 자리를 허락한 구단이다. 스타플레이어가 아무리 많아도 ‘캡틴’의 임무는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다. 실제로 9대 주장인 루 게릭(1935~1941년)과 10대 주장인 서먼 먼슨(1976∼1979년) 사이에는 무려 35년이라는 공백이 있다. 지터의 전임 주장이었던 돈 매팅리 마이애미 감독은 2009년 LA 다저스 타격코치로 이적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다저스 사령탑을 역임했지만, 주요 경력에는 여전히 ‘양키스 캡틴(1991~1995년) 출신’이라는 20년 전의 훈장이 따라 붙는다.

지터는 매팅리가 주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무려 8년 만인 2003년 6월에 양키스의 16번째 캡틴으로 선임됐다. 이후 2014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무려 11년 동안 주장을 맡았다. 양키스 역사상 최장 기간 캡틴 자리를 유지한 선수다. 당연히 지터의 은퇴는 양키스타디움 클럽하우스에 커다란 공백을 남겼다. 게다가 지터는 실력뿐만 아니라 야구를 대하는 자세로도 팀 안팎의 귀감이 돼왔다. 다른 팀 선수들에게 “지터는 양키스의 주장이 아니라 메이저리그의 주장”이라는 찬사를 종종 들었다. 오클랜드 빌리 빈 단장은 신인 선수를 교육할 때 지터가 내야 땅볼을 치고 1루까지 전력으로 달리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돈과 명예를 모두 가진 선수가 어떤 플레이를 하는지 보라”고 예를 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양키스는 지터의 리더십을 대체할 만한 선수를 ‘가까운 미래’에 찾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심지어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은 “지터가 양키스의 마지막 주장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양키스를 넘어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상징적인 선수였던 ‘캡틴’ 지터의 확고한 존재감을 그만큼 오래 기리겠다는 의미다. [은]

 

요미우리 주장의 실수와 만회 
 - 대만 나이트클럽 소동 FA 권리 포기로 수습

▲ 요미우리 자이언츠 역대 최연소 주장 사카모토 하야토. / 사진제공=요미우리 자이언츠

 

‘일본의 뉴욕 양키스’는 두말할 것 없이 요미우리 자이언츠다. 재팬시리즈 22회 우승에 빛나는 요미우리는 전성기를 따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 최강팀의 면모를 자랑해왔다. ‘일본 프로야구의 역사는 곧 요미우리의 역사’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당연히 요미우리의 주장도 명예로운 자리다. 1934년 창단 이후 지금까지 ‘교진(巨人)의 주장’을 경험한 선수는 총 19명뿐. 요미우리의 주장 완장 역시 양키스의 캡틴 자리만큼이나 손에 넣기 어려운 영예임은 분명하다. 


현재 주장은 역대 최연소 캡틴인 사카모토 하야토(28)다. 2007년부터 8년간 주장으로 활약했던 아베 신노스케가 2014시즌을 끝으로 물러나면서 팀 세대교체의 상징인 주전 유격수 사카모토가 19대 주장 자리에 올랐다. 1988년생으로 당시 만 26세였던 사카모토가 최고 명문구단인 요미우리 선수단의 리더가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본 내에서는 엄청난 화제였다. 

사카모토는 지난해 한국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국제대회 ‘2015 프리미어12’에서 일본 대표팀의 주전 유격수로도 활약했다. 삿포로돔에서 열린 한국과의 개막전에서는 정우람(롯데)을 상대로 대회 첫 홈런도 쳤다. 그러나 이 대회는 ‘요미우리 최연소 주장’ 사카모토의 명성에 흠집을 남겼다. 조별리그 대회 장소였던 대만 타이베이 시내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현지 여성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만취한 모습이 현지 언론에 의해 포착됐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이 결승전에서 한국에 뼈아픈 역전패를 당하면서 여론은 더 안 좋아졌다.

안 그래도 요미우리는 전통과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팀이다. 선수들이 경기장 안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물론, 야구장 밖에서의 사생활이나 품위까지 꼼꼼하게 챙기기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일부 선수들의 도박 파문으로 흐트러진 팀 내 기강을 잡느라 애쓰고 있다. 이 와중에 믿었던 주장까지 도마 위에 오르자 구단의 실망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일본 언론들은 “사카모토의 주장 완장이 한 시즌 만에 박탈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내놨다.

그러나 사카모토는 다른 방식으로 실수를 만회했다. 구단 사상 최연소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에 필요한 8년을 채우고도 FA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대신 “19세부터 주전으로 뛰게 해준 팀을 떠날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며 요미우리와의 계약을 3년 연장했다. 


요미우리 역시 사카모토를 변함없이 신임하기로 결정했다. 대단한 의리와 신뢰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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