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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魂의 母音] 또 봄이 오는가

山中書信

by econo0706 2007. 2. 1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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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겨울의 잔해는 아직도 우리들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설악산 골짜기와 시정의 쌀가게에는 아직도 '겨울'이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고 잇다. 캘린더는 산뜻한 3월로 싱그러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인간의 대지는 마냥 한랭한 고기압권이다.
 
그러나 지금 어디선가 봄은 움트고 있으리라.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하픔을 하면서 기지개라도 펼 것이다. 그래서 머지 않아 부우연 토우(土雨)가 3월의 하늘 아래 내릴 것이다. 지난 겨울의 비애를 딛고 새봄을 마련하는 나뭇가지를 매만져 줄 것이다. 자연의 계절은 이렇듯 어깁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어제 오후 나는 물건을 사려고 시장에 들렸다가 가게주인에게 축출을 당했다. 가끔 당하는 일이라 새삼스레 서운할 것도 화낼 것도 없는 일. 세상과 마주친 것뿐이다.
 
남루한 겉모양으로 해서 얻으려 온 거지로 안 모양이다. 겈모양이 알맹이보다 화려해야 팔리는 시장이기 때문에 있을 법한 일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조금은 서글픈 일이다. 같은 인간가족끼리 대화 이전에 겉모양만 보고 내쫓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서글픈 일이다.
 
'스프링 소나타'가 3월의 창변을 울리고 있다. 난초분에서는 초생달처럼 가녀린 꽃이 조심스레 올라오고 있다.
 
인간의 계절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것은 어디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련하는 것.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비극은 있어도 절망은 없다. 어제를 딛고 오늘 일어서야 하는 것이다.
 
이 봄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지 말자. 어떤 봄을 마련할 것인가를, 이른 새벽에라도 생각해보자. 그래서 겨울의 그늘진 잔해를 우리들의 영토(嶺土)로부터 말끔히 씻어내야겠다.
 
1969년 3월 2일
 
法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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