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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魂의 母音] 나의 愛誦詩

山中書信

by econo0706 2007. 2. 1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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深深 山골에는
산울림 영감이
바위에 앉아
나같이 이나 잡고
홀로 살더라
법정스님청마(靑馬) 유치환(柳致還)의 <深山)>이라는 시다.
 
시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읽을 때마다 내 생활의 영역에 탄력을 주는 이런 언어의 결정(結晶)을 나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부턴가 말년을 어떻게 회향(廻向)할까를 생각했다. 새파란 부제에 벌써부터 말년의 일이냐고 탓할지 모르지만, 순간에서 영원을 살려는 것이 생명현상이 아니겠는가.
 
어떤 상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현재를 보다 풍성하게 가꾸어주는 수가 있다. <심산(深山)>은 내게 상상의 날개를 주어 구만리(九萬里) 장천(長天)을 날게 한다.
 
할 일 좀 해놓고 나서는 세간적인 탈을 훨훨 벗어버리고 내 식대로 살고 싶다. 어디에도 거리낄 것 없이 홀가분하게 정말 알짜로 살고 싶다.
 
언젠가 서투른 붓글씨로 <深山>을 써서 머리맡에 붙여놓았더니 그걸 보고, 왜 하필이면 궁상맞게 이를 잡느냔느 것이다. 할 일이 없으니 양지바른 바위에 앉아 이나 잡을밖에 있느냐고 했지만, 그런 경지에서 관연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물론 불가에서는 조그마한 미물(微物)이라도 살생을 금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저쪽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이 끊어지는 일이니까.
 
각설, 주리면 가지끝에 열매나 따먹고 곤하면 바위 아래 풀집에서 잠이 든다. 새삼스레 더 배우고 익힐 것도 없다. 더러는 솔바람소리를 들으며 안개에 가린 하계(下界)를 굽어 본다. 바위틈에서 솟는 샘물을 길어다 차를 달인다. 다로(茶爐)곁에서 사슴이 한쌍 조을고 있다. 흥이 나면 노래나 읊을까? 낭랑한 노래소리를 들으면 학(鶴)이 내려와 너울너울 춤을 추리라.
 
인적이 미치지 않는 심산에서는 거울이 소용없다. 둘레의 모든 것이 내 얼굴이요, 모습일 테니까.
 
일력(日曆)도 필요없다. 시간 밖에 사니까.
 
혼자이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얽어매지 못할 것이다. 홀로 있다는 것은 순수한 내가 있는 것. 자유는 홀로 있음을 뜻하는다.
 
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어디에도 거리낄 것이 없이 산울림 영감처럼 살고 싶다.
 
태고의 정적 속에서 산신령처럼 무료히 지내고 싶다.
 
1972년 2월 11일
 
法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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