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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 난투사] (1) 김응룡 감독 '참외 테러' 사건

---[韓國프로野球 亂鬪史]

by econo0706 2022. 11. 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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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1. 03. 

 

재일교포 장훈과 백인천 전 LG 트윈스 감독은 예전 일본 프로야구 판에서 ‘아바렌보(暴れん坊=거친 싸움꾼)’로 꼽혔습니다. 거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편견과 차별을 딛고 그라운드 싸움도 마다하지 않아야 할 만큼 험악한 세계였기 때문입니다.

그라운드는 야성이 살아 있는 곳입니다. 생존을 걸고 투쟁을 벌여야하는 치열한 삶의 한 현장입니다. ‘폭력’이 용납돼서는 안 되지만, 때로는 야만적인 폭력과 광기가 번득이는 곳이기도 합니다. ‘상대를 꺾어야 내가 사는’ 세상입니다.

한국 프로야구는 이제 30년 세월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그 사이 숱한 폭력사태가 그라운드 안팎에서 벌어졌습니다. 퇴장, 벌금, 출장정지, 심지어 인신 구속 사태까지 빚은 적도 있습니다. 선수와 선수, 선수와 심판, 선수와 관중, 감독, 코치와 심판, 심지어 관중과 관중 사이에도 티격태격, 옥신각신…, 난장판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지요.

프로 선수들은 특이한 존재입니다. 운동선수들 가운데서도 가장 정점에 서 있는 선수들입니다. 힘과 힘, 기(氣)와 기가 맞부딪치는 생존의 현장에서 그들은 오늘도, 내일도 투쟁합니다.

자신에게 위해가 가해지는 순간, 그들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드러냅니다. 약간의 손해라도 끼치는 기미, 볼 판정 하나에도 그들은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빈볼은 그들 자신의 존재를 순간적으로 망각하고 본능적인 분노의 충동에 휩싸이게 만듭니다. 그들은 그라운드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입니다.

스포츠 세계에서 ‘예정된 결과’는 없습니다. 지극히 우발적이라 할지라도 폭력이 분명 스포츠의 진면목을 아니겠지만, ‘난투극’은 때로는 야구의 ‘의외성과 재미’라는 얼굴에 분칠을 해주는 효과를 낳습니다. 난투로 점철된 우리 프로야구 사건의 현장, 그 속으로 되돌아가봅니다. 앞으로 연재되는 글은 한국프로야구의 ‘정사(正史)같은 야사(野史), 야사같은 정사’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편집자 주)

 

‘참외 폭탄’에 봉변당한 코끼리 김응룡 감독

1980, 1990년대 혈기 방장했던 김응룡(75) 전 해태 타이거즈 감독은 그라운드에서 과격한 항의도 서슴지 않아 역대 감독들 가운데 “퇴장!” 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던 이다.

그렇지만 김 감독은 겉보기와는 달이 마음이 아주 여린 구석이 있는 분이다. 감독 시절에는 평소 야구관련 기사를 자구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꼼꼼하게 읽는다. 어쩌다가 다른 감독의 퇴장 기사가 실린 날이면 친하게 지내는 기자에게 “거, 제발 표 좀 싣지 말아줘”라며 짐짓 통사정을 하곤 했다.

김 감독이 말한 ‘표(表)’라는 것은 역대 감독들의 퇴장 사례를 일컫는 것으로 자신의 이름이 그 표 맨 위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잘 있는 사람의 이름까지 들먹일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 감독으로서 해태 타이거즈(1983~2000년), 삼성 라이온즈(2001~2004년), 한화 이글스(2013~2014년)를 거치며 역대 최다승(1567승. 정규리그 기준) 기록을 세운 ‘천하의 김응룡’이 해태 시절 ‘참외 폭탄 테러’를 당한 적이 있다.

1997년 6월 29일, 해태 타이거즈와 LG 트윈스가 잠실구장에서 경기를 치렀다. 당시 해태와 LG의 맞겨룸은 흥행 빅카드. 그날도 휴일을 맞아 3만 500명의 관중이 꽉 들어찼다.

사태는 3회 말 LG 공격 때 벌어졌다. 1사 2루 상황에서 타석에 있던 심재학이 볼카운트 2-2에서 해태 투수 강태원이 6구째를 던지려는 순간, ‘타임’을 요청하는 몸짓을 하면서 타석을 벗어난 것이 발단이었다.

김병주 주심은 타자의 ‘타임’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2루 주자를 신경 쓰던 강태원은 ‘타임’이 선언된 것으로 착각, 투구 동작에서 공을 던지지 않고 멈춰서버린 것이다. 주심은 보크를 선언했다. 물론 강태원이 실수를 했지만 하지만 주심도 착각했다. (야구규칙 6.02조 b항의 원주(原註)에 따르면, ‘세트 포지션에 들어간 투수가 타자석을 벗어나는 타자에게 현혹당해 투구를 끝마치지 못하더라도 심판원은 보크를 선언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그 순간, 김응룡 감독이 덕아웃에서 성큼성큼 걸어나와 주심에게 “타자가 타석에서 벗어나면 타임을 받아주는 것이 관례 아니냐. 오늘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냐”며 따졌지만 소용이 없었다.

볼썽사나운 일이 그 대목에서 일어났다. 일부 몰지각한 관중들이 물병 따위를 그라운드로 마구 내던지는 가운데 3루 쪽의 한 관중이 먹다가 만 참외를 홈플레이트를 향해 날렸다. 참외는 ‘퍽’하는 둔탁한 파열음을 내면서 김응룡 감독의 뒷덜미를 강타했다.

원래는 주심을 노린 것이었지만 빗나가는 바람에 애꿎게도 주심을 향해 등을 돌리고 서있던 김응룡 감독이 이 참외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것이다. 김 감독은 “에쿠” 소리를 지르며 참외 파편을 뒤집어 쓴 채 머리를 감싸 쥐고 트레이너의 부축을 받으며 덕아웃으로 피신했다.

훗날, 김응룡 감독은 ‘참외 테러’를 당한 심경을 평안도 사투리로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맥주병인줄 알았어. 퍽! 소리가 나서 ‘아이구, 이젠 죽었구나’하고 뒷머리를 만져보니까 참외더라구. 그래서, 휴우, 살았구나 했지. 사실 그 참외는 주심을 겨냥한 거이였는데…”

“6.25 땐 총알도 피했는데….”

비록 김 감독이 농담을 섞어가며 웃으면서 오래 전 일을 회상하긴 했지만, 잠시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는 못했다. 그 때만해도 판정이나 경기 결과에 불만을 품은 관중들이 그라운드에 오물을 투척하는 일이 예사였으니까.

거구의 김응룡 감독이 머리를 감싸 안고 쏜살같이 덕아웃으로 뛰어가는 장면은 ‘한국 프로야구의 슬픈 자화상’으로 각인돼 있다.

어떤 사람이 특정인을 향해 특정의 목적을 가지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곧 ‘테러’이다.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의 경우 그런 일이 생기면 범법 행위로 간주, 현장에서 즉각 체포해 형사 처벌을 받는다고 하지만, ‘참외 테러’를 자행한 그 관중이 붙잡혔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홍윤표 선임기자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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