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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 난투사] (2) 정명원이 이승엽에게 빈볼을 놓은 사연…현대와 삼성, 두 재벌의 대리전

---[韓國프로野球 亂鬪史]

by econo0706 2022. 11. 8.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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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1. 10.

 

1996년, 현대 그룹이 한국프로야구 무대 전면에 등장했다.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한 현대는 첫해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해 현대는 특유의 저돌적인 행보로 시즌 초반부터 여름철까지 1위를 달리는 등 선두권을 유지하다가 후반 들어 뒷심 부족으로 4위로 내려앉기는 했으나 결국 한국시리즈에 올라 해태에 져 준우승에 그쳤다.

현대와 삼성은 시즌 내내 라이벌 의식을 드러내면서 첨예하게 맞섰다. 그 와중에 현대의 베테랑급 투수 정명원이 삼성의 ‘아기 사자’ 이승엽을 맞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6월 2일, 인천구장에서 열렸던 삼성과 현대의 맞대결 무대에서 양 구단의 쌓인 감정이 대폭발했다.  

그 경기 9회 초, 현대가 7-1로 이기고 있던 상황이었다. 1사 후 정명원이 등판했다. 뒤에 밝혀진 바로는 ‘자원등판’이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등판했다는 뜻이다. 정명원(당시 나이 30)은 첫 상대 타자인 양준혁(27)을 맞아 볼카운트 1-1에서 3구째를 몸에 맞혔다. 양쪽 덕아웃은 일촉즉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던 터. 양 팀 선수들이 일차로 그라운드로로 몰려나가 정면충돌 반보직전까지 갔다. 공에 맞은 양준혁 대신 이종두(34)가 1루 대주자로 나갔다. 

▲ 6월 2일 현대 정명원의 빈볼로 촉발된 현대-삼성 대충돌의 와중에 삼성 주장 이종두가 정명원에게 발길질을 하는 장면 / 일간스포츠

 

다음 타자는 갓 스물의 이승엽이었다. 정명원은 원 볼에서 2구 째 시속 145km짜리 묵직한 직구를 이승엽의 옆구리에 맞혔다. 이승엽은 허리를 부여잡고 그대로 타석에서 쓰러졌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양쪽 선수 40여명이 일제히 그라운드에 난입했다. 이승엽은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쓰러진 채로 한동안 일어나지 못해 남종철 트레이너에게 업혀나가 간이치료실로 향했다. 다행히 경기를 마칠 무렵에는 스스로 걸을 수 있었다.

삼성 선수들 몇몇이 마운드로 달려 나가 정명원을 에워쌌다. 현대 김경기가 삼성 장태수를 끌어안고 제지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난투극’의 와중에 1루 대주자로 나섰던 이종두는 정명원에게 곧바로 달려가 오른발차기를 시도했다. 정명원은 방어 자세를 취했고, 유니폼이 약간 찢어졌다. 그라운드는 5분여 동안 서로 옥신각신, 티격태격, 서로 끌어 잡고, 밀치고 밀어내는 ‘난장판’으로 돌변했다. 관중 1만 1418명이 그 광경을 지켜봤다. 이규석 구심은 정명원에게 퇴장을 선언했다.

그 경기는 정명원이 빈볼을 던지기에 앞서 1-6으로 삼성이 일찌감치 뒤져 있어 사실상 승부가 판가름 난 상황이었다. 그런데 삼성 세 번째 투수 이상훈이 권준헌(7회)과 이근엽(8회)을 맞혀 현대 벤치 분위기가 격앙됐다. 삼성이 도발을 먼저 한 셈이었다. 그 때 정명원이 시쳇말로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다. 

1995년에 데뷔 이승엽은 본격적으로 강타자의 이미지를 새겨나갈 무렵이었다. 그날도 홀로 분전, 2타수 2안타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승엽은 그해 타율 3할 3리, 9홈런, 76타점을 기록했다. 그런 마당이었으니, 삼성 벤치가 한창 커나가는 유망주에 대한 보복성 빈볼로, 어린 나이의 이승엽을 맞히자 분노를 표출한 것이 당연했다. 공교롭게도 이승엽의 대주자는 은퇴(1997년)를 저만치 앞두고 있던 이만수였다.

경기 후 홈팀인 현대 강명구 대표이사와 김재박 감독이 삼성 덕아웃을 찾아가 백인천 감독에게 사과했다. 백인천 감독은 “선수들끼리 흥분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이라며 대범하게 받아넘겼다. 경기를 지켜봤던 이내흔 현대 구단주 대행은 “스포츠에서 비신사적인 행위는 있을 수 없다”면서도 “정명원의 컨디션이 걱정 된다.”고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빈볼의 주인공 정명원의 후일담을 들어봤다. 정명원 두산 투수코치는 “지난 일을 이제 뭘...”이라면서 약간 꺼려하긴 했으나 시원스런 성격답게 이내 당시 정황을 풀어놓았다. 

“주말 경기였는데 그전에 현대가 삼성한테 계속 이기자 삼성 투수들이 현대 타자들을 계속 맞혔다. 그날도 경기가 많이 앞서 있어 마무리인 내가 나갈 이유는 없었는데 삼성 투수가 빈볼 성 투구를 해 ‘내가 나가서 해야겠다’고 생각, 자원등판 했다. 그럴 경우 대개는 7, 8번 타자를 맞히는 것이지만, 중심타자를 맞히게 됐다. 양준혁이 먼저 얻어맞자 삼성 벤치가 부글부글 끓는 게 보였다. 이승엽은 된통 맞았다. 이종두가 달려와 발을 뻗기에  선배여서 일부러 피하지 않고 다리를 그냥 잡고 있었다.”

정명원은 “나중에 이승엽한테 사과했다. 구단 차원에서도 사과했다. 옛일이지만 이승엽에게 정말 미안했다.”고 덧붙였다.

그 사건 후 현대 그룹 사장단, 또는 사장 중에 누군가 “당연히 그래야지, 그게 현대 정신이야”라는 말을 했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당하지만 않고 ‘징치’를 했다는 뜻에서 아마도 출처, 확인 불명의 그런 말까지 나돌았을지도 모르겠다.

정명원은 그 일로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8게임 출장정지와 벌금 100만 원의 중징계를 받았다. 통상 ‘그런 일(총대 메고 던진 빈볼)’로 인한 벌금은 구단이 물어주는 것이 관례처럼 돼 있다. 정명원의 벌금도 당연히 현대 구단 측이 대납했다. 한 술 더 떠 보상 성격의 ‘위로금’ 까지 줬다고 한다. 정명원은 ‘위로금’의 액수는 말하지 않았지만 위로금을 받았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 사건은 당시 매스컴에 크게 보도되며 큰 파문을 일으켰던 일이어서 사건 전후의 흐름을 보다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대와 삼성은 5월 14~16일(대구)과 5월 31일~6월 2일(인천) 두 차례 3연전을 가졌다.

5월 14일에 현대는 김경기(상대투수 김인철), 박진만(최재호), 15일에는 이숭용(이태일)이 몸에 공을 얻어맞았다. 16일에는 현대의 강영수(김태한), 삼성 류중일(가내영)이 ‘힛바이피치’를 기록했다.

무대를 인천으로 옮긴 5월 31일, 3연전 첫 날에 현대 김인호(최재호), 이튿날인 6월 1일에는 현대 윤덕규(김상엽), 삼성 이정훈(김익재)이 몸에 맞는 볼을 기록했다. 6월 2일에는 양준혁, 이승엽 이전에 6회에 윤덕규(박충식), 7, 8회에 권준헌과 이근엽 등 현대 타자 3명이 차례로 삼성 이상훈에게 얻어맞았다. 그쯤 되면 충돌의 ‘에너지’가 가득 차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충돌에 앞서 5월 14일 대구 경기 때는 현대 신언호 코치가 빈볼 시비로 삼성 투수 최재호에게 삿대질하며 항의, 이미 징계를 받아놓은 터였다. 

당시 현장을 지켜 본 <일간스포츠> 백종인 기자가 ‘기자의 눈’을 통해 “눈살 찌푸린 재벌간 격투기” 제하에 비판적인 기사를 실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프로야구의 주역이어야 할 스타플레이어가 그라운드에서 나뒹구는 모습에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옛말이 그르지 않다는 걸 실감했다.” 고 꼬집었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6월 17일, 아주 이례적으로 양 팀은 ‘화해식’을 가졌다. KBO 중재로 마련된 그 자리에는 삼성 백인천 감독, 현대 김재박 양 감독과 주장 이종두(삼성)와 김경기(현대), 빈볼 시비의 당사자인 양준혁, 이승엽, 정명원이 참석해 더 큰 불상사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예방 차원의 ‘어색한 악수’를 교환했다. 사실 백인천 감독과 김재박 감독을 비롯한  현대의 신언호 코치 등은 1990년 LG 트윈스에서 창단 감독과 선수로 우승을 일궈냈던 스승과 제자 사이.

▲ 양 구단이 화해의 어색한 악수를 나누는 모습 / 일간스포츠

 

당시 보도에 따르면 두 감독의 발언이 재미있다.

김재박 감독은 “그런 상황에서 밋밋하게 넘어가는 것보다는 화끈하게 한 번 해 주는 게 팬서비스가 아니냐”고 상황 옹호론을 폈고, 백인천 감독 또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나도 야구팀 감독으로서 정명원을 이해한다.”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두 감독이 자리를 뜬 뒤 현대 주장 김경기는 “타자들 처지에선 볼 하나를 잘못 맞으면 선수생명이 끝날 수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위협구를 던지는 투수들이 이를 너무 모르는 것 같다”며 자성어린 목소리로 빈볼의 위험성을 강조했고, 양준혁과 이승엽도 전적 동감, 고개 끄덕이는 모을 보였다.

정명원 역시 “하고 싶어 한 일이 아니다.”는 말로 여운을 남기며  “내 볼에 맞은 후배들 부모님께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싹싹한 태도를 보였다.

끝으로 당시 현대 구단의 분위기를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이성만 전 현대 유니콘스 홍보팀장(당시 운영부 대리, 현재 현대 CN&R 부장)은 이렇게 증언했다.

“현대가 1996년 프로에 뛰어들어 재계 라이벌 삼성과 경쟁 구도를 형성했는데 창단 첫해였던 만큼 선수들에게 메리트도 대폭 실시, 의욕이 엄청났다. 그 때는 현대뿐만 아니라 삼성도 그에 못지않게 돈을 풀어 선수들 기 살리기를 했다. 투수 선임자인 정명원이 대구에서 현대 타자들에게 잇달아 빈볼 세례가 이어지자 참고 넘어갈 수 없어 자원등판 했다고 기억된다. 선수단이 흥분해서 잔뜩 벼르고 있었다. 그날도 선수들이 빈볼을 얻어맞자 ‘때리려면 이승엽을 맞혀라’는 공론이 돌았다. 강명구 현대 구단 대표가 선수단 훈시 때면 “삼성은 꼭 이겨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언급해 분위기가 그렇게 흘렸다.”

‘삼성에 져서는 안 된다’는 현대 그룹의 분위기가 현대 야구단에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겠다.   

현장에서, 그런 강렬한 승부 근성이 맞부딪친 것에 대한 이성만 부장의 결론은,  “전형적인 야구 매커니즘으로 이해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마무리 전문투수였던 정명원은 그해 해태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 선발로 나가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노히트 노런의 대기록을 달성한 바 있다.

 

홍윤표 선임기자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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