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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비화] 박종팔을 세계챔피언으로 만든 사나이 '강흥원'

--조영섭 복싱

by econo0706 2022. 11. 18.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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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2. 18

 

해마다 연말이면 한 해 계획했던 일을 잘 마쳤는지 반성해본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순간 순간 되새기고 목표에 전력투구 했다면 그 일의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의미있는 해를 보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복싱비화의 주인공은 1970년대 최중량급인 미들급에서 유제두·임재근·주호와 각축전을 벌였던 강흥원(1949년생·경흥체육관)이다. 한국 중량급의 역사는 1960년대 강세철, 김기수, 최성갑, 이금택 등에 의해 태동됐다. 1970년대 이들 4인방의 과도기를 거쳐 대망의 1980년대 박종팔·백인철 쌍두마차에 의해 한국 중량급의 역사가 찬란하게 꽃을 피웠다.

 

▲ 1978년 6월 미들급 방어전에서 박종팔을 1회 KO시키고 트로피를 받고 있는 강흥원 / 제공=조영섭 관장


강흥원은 국가대표 복싱 감독을 지낸 채용석씨(1931년·서울)가 관장으로 있던 중산체육관 출신이다. 여담이지만 중산체육관은 1964년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한 소강(小崗) 민관식 문교부장관이 1965년에 아마추어 복싱 활성화를 위해 창설했다. 이분은 태릉선수촌을 건립하는데도 주도적 역할을 하신분으로 한국스포츠 근대화의 아버지라 불린다. 중산체육관은 1970년 전후 이석운, 고생근, 정영근 등 3명이 활동했는데 이들은 1971년 테헤란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국가대표로 출전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위상을 높였다.

강흥원은 1970년 복싱에 입문하며 아마추어 경력을 쌓은 후 1972년 경흥체육관으로 소속을 옮겨 프로에 데뷔했다. 경흥체육관은 황철순, 김인창, 장흥민 등 역대급 복서들을 배출한 체육관이다. 강흥원은 데뷔전에서 1970년 아시아선수권 은메달리스트인 박남용에게 1회 KO승을 거두며 해머펀치를 과시했다. 이 둘은 복싱을 접을 때까지 7차례 싸워 강흥원은 4승3패를 기록했다.

 

▲ 라이벌 박남용과 타격전을 펼치는 강흥원(왼쪽) / 제공=조영섭 관장

 

투타임 미들급 챔피언 강흥원은 1978년 6월 박종팔을 상대로 1차방어전을 치룬다. 당시 강흥원의 전적은 20전 13승 6패 1무 7KO를 기록한 만 29세의 노장이었고 도전자 박종팔은 만 20세의 젊음에 5전 4전 3승 1무 2KO로 1977년 미들급 신인왕을 차지한 유망주였다. 당시 전문가들의 예상은 헤라클레스로 불리는 강흥원이 시바다 겐지, 피터 남보꾸 등 정상급 복서들을 KO로 잡은 펀치력은 인정하지만 떠오르는 태양 박종팔에게 타이틀을 양도하는 이임식(離任式)이 될 것이란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예상대로 박종팔의 우박처럼 쏟아지는 연타를 날리며 챔피언 강흥원을 몰아부쳤다. 강흥원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리고 종료 직전 강흥원의 라이트훅이 바람을 가르며 박종팔의 안면을 강타하자 박종팔은 총맞은 노루처럼 푹 고꾸라지며 한동안 일어서질 못했다. 경기 후 박종팔은 어떻게 KO패 당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심한 충격을 받았다. 재대로 임자를 만나 혹독한 성장통을 치룬 것이다.

▲ WBA 슈퍼미들급 정상에 오른 박종팔 / 제공=조영섭 관장

 

박종팔은 KO패를 당한후 분한 나머지 장충체육관에서 노량진 동아체육관까지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눈물을 쏟으면서 걸어왔다는 후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 경기 후 양 선수의 진로가 극명하게 엇갈렸다는 사실이다. 패자인 박종팔은 이후 상승세를 탔지만 승자인 강흥원은 역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는 1978년 12월 유제두의 동양타이틀전 21차 방어전 도전자로 내정되어 선전분투 하며 접전을 벌였지만 2-1 판정에 고배를 마시자 세계정상의 꿈은 백일몽(白日夢)임을 자각하고 소리소문 없이 은퇴했다. 8년 동안 25전을 뛰면서 13승 10패 2무 8KO를 기록한 그의 나이 31살이었다.

한편 박종팔은 강흥원전 이후 19연속 KO퍼레이드를 펼치며 한국 챔피언, 동양챔피언, IBF 슈퍼 미들급 챔피언, WBC 슈퍼미들급 챔피언에 오르며 잠재력을 대폭팔 시켰다. 이런 박종팔의 행보를 보면 발묘조장(拔苗助長)이란 말이 생각난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억지로 싹(苗)을 뽑아서(拔) 성장(長)을 도와준다(助)는 뜻이다. 그 역할을 담당한 강흥원을 박종팔은 자신을 세계챔피언을 만든 일등공신이라고 평했다.

 

▲ 강흥원 사장과 황복희 여사 / 제공=조영섭 관장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은 강흥원은 이후 복싱에 대한 아쉬움을 접고 국가대표 출신인 장흥민(1957년생·한국체대)의 중매로 황복희(1954년·부안) 여사를 만나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경동시장 신관 앞에서 ‘흥원인삼’이란 상호를 걸고 수삼직판장을 40년 가까운 세월을 부부가 운영하면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40년 전 벌어진 강흥원과 박종팔의 추억어린 신구(新舊) 대결의 일전을 회고하며 글을 쓰다 보니 문득 빅토르 위고의 글귀가 생각난다. 오늘의 문제는 싸우는 것이고 내일의 문제는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날의 문제는 죽는 것이다.

 

조영섭

 

아시아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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