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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드 파크] '라이언킹 이승엽의 은퇴투어 기대되는 까닭

---Outside Park

by econo0706 2022. 9. 26.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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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30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의 대표작 ‘낙화’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다. 프로야구 선수의 은퇴 과정과도 일맥상통한다. 모든 선수가 최고의 자리에서 박수를 받으며 멋지게 은퇴하는 모습을 상상하지만, 막상 은퇴 시기가 다가오면 현역 생활에 대한 미련이 발목을 붙든다. 그라운드를 떠나기 전에 공 하나라도 더 던지고 싶고, 단 한 타석이라도 더 서고 싶어진다. 무엇보다 ‘아직은 이대로 떠날 때가 아니다’, ‘충분히 1년 더 뛸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한 시절을 풍미한 스타플레이어들에게도 아름답게 은퇴하는 행운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화려한 선수 생활을 했던 한 야구인은 “선수 생활의 마지막 1년을 구단과 싸우고 나 자신과 싸우느라 가장 불행하고 힘들게 보냈던 게 무척 아쉽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특히 은퇴시기를 미리 못 박아 놓고 뛰는 선수는 한국 프로야구 문화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 타자’ 이승엽(삼성)의 은퇴 예고는 그래서 더 남다르고, 더 화제가 됐다. 그는 여러 차례 “2017년까지만 뛰고 현역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고, 지난 시즌이 끝난 뒤에도 재차 “은퇴 번복은 없다”고 못 박았다. 삼성도, KBO리그도, 그리고 전국의 야구팬도 다음 시즌에는 이승엽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 ‘국민 타자’의 아주 특별한 ‘예고 은퇴’ 

▲ ‘국민타자’ 이승엽은 2017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예고했다. 그는 은퇴를 미뤄 달라는 팬들의 호소에도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물러날 때가 됐다”고 힘주어 말했다. / 임준선 기자

 

이승엽은 2017년 시즌을 끝으로 친정팀 삼성과 계약이 만료된다. 그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선수다. ‘홈런’의 역사를 되짚을 때 이승엽의 이름을 빼놓고는 설명 자체가 불가능하다. 현역 선수이면서 역대 최고의 타자다. 그러나 앞으로 1년이 지나면 이승엽이 때려내는 홈런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마지막 시즌을 앞둔 이승엽 스스로의 마음도 그 어느 겨울보다 바쁘다. 그는 최근 “마지막 시즌이니까 보여 드릴 수 있는 만큼 다 보여 드리고 싶다”며 “실력이 없어서 은퇴하는 게 아니라 떠날 때가 되어 떠난다는 느낌을 팬들에게 드리고 싶다”고 했다. “꼭 잘해서 많은 분들께 끝까지 강인한 인상을 심어 드리려고 한다”는 다짐도 했다. 이승엽이라는 이름의 가치와 품위에 어울리는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엽은 ‘국민 타자’만큼 ‘라이언 킹’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경북고 출신인 그는 1995년 삼성 소속으로 프로에 데뷔한 뒤 국내에서는 삼성의 푸른 유니폼만 입었다. 2003년 홈런 56개를 때려낸 뒤 일본에 진출했고,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었다. 2012년 다시 친정팀이자 고향팀 삼성으로 돌아와 변함없이 홈런 타자로서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삼성 유니폼을 입고 은퇴하고 싶다”는 데뷔 시절의 꿈도 이룰 수 있게 됐다. 

사실 대부분의 홈런 타자들은 은퇴를 앞두고 고전을 면치 못한다. 나이가 들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는 파워와 배트스피드는 홈런 생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그러나 이승엽은 달랐다. 2014년 역대 최고령 30홈런-100타점 고지를 밟았고, 2015년에도 타율 0.332, 홈런 26개, 90타점을 올렸다. 은퇴를 1년 앞둔 2016년에도 타율 0.303, 홈런 27개, 118타점을 기록했다. 팬들이 벌써부터 “은퇴를 미뤄 달라”고 호소(?)하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승엽의 의지는 확고하다.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물러날 때가 됐다”고 힘주어 말했다. 가장 빛나는 순간에 스스로 왕좌에서 내려오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싶어 한다. 이런 이승엽의 결심 덕분에 전국의 야구팬들은 흔치 않은 기회도 얻었다. 이승엽이라는 전설적 선수의 모든 마지막 순간을 미리 알고, 지켜보고, 기억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됐다. 

# 선동열과 김재현, 이승엽 이전의 모범 사례 

선동열 전 KIA 감독과 김재현 전 한화 코치는 그런 의미에서 이승엽 이전에 좋은 선례를 남긴 주인공들이다. 선동열은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였다. 해태 시절 통산 146승 40패, 132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총 1647이닝을 던져 탈삼진 1698개를 잡았다. 통산 평균자책점은 1.20.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숫자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시즌 성적 역시 5승 3패 33세이브, 평균자책점 0.49였다. 그는 1996년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로 진출해 ‘나고야의 태양’으로 군림했다. 1999년에는 마무리 투수로서 1승 2패, 28세이브, 평균자책점 2.61을 기록하면서 주니치를 센트럴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 해 말 메이저리그 진출을 꾀하다 여건이 맞지 않자 깨끗하게 은퇴를 선언했다. 이미 투수로서 이룰 것은 다 이룬 선동열이다. 주니치가 거액을 제시하며 잔류를 제안했지만, 미련 없이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자신의 구위가 하향세로 접어들었다는 느낌을 받자마자 유니폼을 벗은 것이다. 동시에 야구팬들의 기억에는 늘 강하기만 했던 선동열의 모습만 남았다. 구위나 성적도 역대 최고였지만, 은퇴 역시 역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은 이유다. 

‘캐넌 히터’ 김재현은 이승엽보다 먼저 ‘예고 은퇴’를 실행에 옮긴 선수다. 그는 2009년 KIA와의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 SK 대표로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SK와 계약이 끝나는 내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겠다”고 폭탄 선언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 후 매 경기, 매 타석 최선을 다했다. 중요한 순간마다 변함없이 해결사로 활약하는 그를 보며 주변에서는 은퇴를 만류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사실 그는 타고난 스타플레이어였다. 1994년 LG 입단 첫 해부터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하면서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도왔다. 앳된 얼굴의 고졸 신인이 단숨에 팀의 간판선수로 우뚝 섰다. 고관절 부상으로 고통 받던 2002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9회 1사 1루서 대타로 나섰다가 우전 안타를 치고 다리를 절뚝이며 1루로 향했다. LG팬들의 코끝을 찡하게 한 명장면이었다. SK로 이적한 후에도 마찬가지다. SK가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하던 2007년,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2008년에도 중요한 홈런 두 방을 때려내며 인천을 환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래도 “체력적으로 힘에 부쳐 떠밀리듯 은퇴하고 싶지는 않다”는 그의 소신은 확고했다. 김재현은 약속대로 2011년 한국시리즈를 마친 뒤 유니폼을 벗었다. SK는 이듬해 그를 위해 은퇴식을 마련했다. 김재현이 LG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점을 고려해 LG전으로 스케줄을 잡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은퇴식 예정일에 비가 내렸다. 결국 김재현은 문학 삼성전에서 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 2013년 9월 ‘양키스 소방수’ 마리아노 리베라의 홈경기 고별전. / AP=연합뉴스


# 메이저리그엔 ‘은퇴 투어’가 있다 

요즘 메이저리그에는 ‘은퇴 투어’라는 새로운 문화가 생겼다. 은퇴를 앞둔 선수가 마지막 한 시즌을 치르는 동안, 홈은 물론 원정지의 팬들에게도 은퇴 인사를 건네고 마지막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기회다. 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꿈꿀 만한 장면. 물론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영광은 아니다. 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 칼 립켄 주니어, 데이빗 오티스, 치퍼 존스 같은 레전드 선수에게만 허락된다. 은퇴를 미리 결심하고 실제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강심장’도 필수다. 

그 가운데서도 데릭 지터의 은퇴 투어는 여전히 최고의 장면으로 회자된다. 지터는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팀 뉴욕 양키스에서만 20년을 뛰었다. 1995년부터 2014년까지, 최고의 팀을 빛낸 최고의 유격수이자 최고의 캡틴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1년은 그 20년 가운데서도 가히 최고였다. 

가는 곳마다 박수를 받았다. 첫 은퇴식은 4월 3일 휴스턴의 홈구장 미닛메이드파크에서 열렸다. 지터가 휴스턴에서 뛰는 마지막 3연전을 위해 휴스턴 구단은 지터의 등번호 2번이 새겨진 카우보이 부츠와 모자, 골프 클럽을 선물했다. 지터가 타석에 들어서자 모든 관중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모든 건 시작에 불과했다. 지터가 찾는 구장마다 비슷한 은퇴 기념식이 열렸다. 기념 선물도 쏟아졌다. 텍사스 전에서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까지 등장해 지터의 은퇴를 기념했다. 지터는 그렇게 전 미국을 돌며 작별 인사를 했다. 올스타전 때는 한 스포츠 브랜드가 지터 헌정 광고를 제작했고, 모든 행사의 초점은 지터의 은퇴에 맞춰졌다. 

9월 8일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진짜 은퇴행사 경기 때는 열기가 더 뜨거웠다. 행사 일정이 발표된 뒤 입장권 가격이 약 50만 원까지 훌쩍 뛰었다. 평소 입장권 평균 금액의 4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심지어 양키스 공식 기념품 업체인 스테이너 스포츠는 지터가 뛰었던 양키스타디움 내야 흙을 담은 캡슐을 판매하기도 했다. 양키스 팬들은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지터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한 해 앞선 2013년에는 양키스의 전설적인 소방수 마리아노 리베라가 같은 영광을 누렸다. 그 시즌 내내 양키스의 홈경기와 원정경기 관중석은 꽉 들어찼다. 리베라의 마지막 투구와 작별 인사를 직접 보기 위해 미국 전역의 야구팬들이 몰려들었다. 리베라는 특히 미네소타에서는 부러진 야구 배트들로 만들어진 의자를 선물 받았다. 그 의자는 세계 최고의 구종으로 꼽히는 리베라의 컷패스트볼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부러졌던 수많은 배트들을 상징한다. 또 보스턴에서 치른 마지막 원정경기에서는 평생 양키스에 이를 갈며 살아온 숙적 보스턴의 극성팬들조차 리베라에게 기립박수를 치는 장관이 연출됐다. 

이뿐만 아니다. 리베라가 마지막 양키스타디움 경기에서 교체되던 순간에는 투수코치 대신 앤디 페티트와 데릭 지터가 마운드에 올라와 포옹을 나눴다. 리베라는 끝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또 은퇴식에서는 모든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비운 채 오직 리베라 한 명만 마운드에 올라섰다. 한 명의 선수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예우다. 

 

배영은 / 일간스포츠 기자 

 

자료출처 : 일요신문 [제12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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