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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드 파크] 시범경기라 가능했던 역대급 해프닝들

---Outside Park

by econo0706 2022. 9. 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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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3. 17 

 

2017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한창이다. 철저히 정규시즌을 위한 ‘워밍업’에 초점을 맞추는 기간이다. 스프링캠프에서 어떻게 몸을 만들고 훈련을 했는지, 과연 그 결과가 성공인지 실패인지, 그리고 그동안 다른 팀 선수들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체크해보는 게 진짜 목적이다. 감독의 눈도장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유망주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주전 선수에게 시범경기는 개막전을 향해 가는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자신만의 루틴이 확실한 베테랑 선수들은 아예 시범경기 후반만 소화한 채 정규시즌을 맞이하기도 한다. 

당연히 승패는 의미가 없다. 시범경기 성적과 정규시즌 성적이 비례하지도 않는다. 시범경기 1위 팀이 실제로도 우승한 사례는 1983년부터 지난해까지 34년간 단 여섯 번에 불과했다. 그러니 기를 쓰고 이길 이유도 없다. 연장전과 더블헤더가 없고, 야간경기도 없다. 심지어 올해부터는 스프링캠프 기간 축소에 발맞춰 시범경기 기간도 3주에서 2주로 대폭 줄었다. 그동안 “시범경기 기간이 너무 길어 오히려 비효율적”이라고 불평하던 구단들은 두 손을 들고 환영했다. 

그래도 전국의 야구팬들은 시범경기가 무척 반갑다. 또 한 번의 시즌이 눈앞으로 다가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겨우내 그리워한 야구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시간, 그러나 승패에 웃고 울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시간. 정규시즌이 아닌 시범경기라서 가능했던 역대 해프닝들을 모아봤다. 

▲ 2015년 3월 7일 넥센과 KT의 시범경기 모습. 3일 후인 10일에는 전국적으로 한파주의보가 떨어져 프로야구 출범 이후 처음으로 전 경기가 취소됐다. / 임준선 기자

 

# 비, 눈, 바람을 피하라 


시범경기는 늘 3월에 열린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다. 지난해 고척스카이돔이 문을 열면서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는 야구장이 하나 생겼지만, 여전히 다른 구장에선 선수들이 추위나 바람과 싸우며 경기를 해야 한다. 더그아웃에서는 넥 워머와 보온장갑을 착용하고 두꺼운 점퍼를 입는다. 곳곳에는 전기난로를 켜 놓고 수시로 곁에 모여 열기를 쬔다. 1년 가운데 시범경기와 포스트시즌 기간에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실제로 2015년 3월 10일에는 시범경기 전 경기가 추위로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전국적으로 ‘한파주의보’가 떨어진 탓이다. 이날 오전 서울 기온이 영하 6.8도에 이르렀을 정도이니, 야구를 할 도리가 없었다. 일부 지방에선 강풍 특보까지 발효됐다. 목동에서 오전 10시, 대전에서 10시 20분, 포항에서 10시48분, 마산에서 10시 57분에 차례로 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2011년 3월 25일 광주 KIA-두산전이 강풍과 추위로 취소된 적은 있었지만, 전 경기가 추위로 열리지 않은 것은 프로야구 출범 이후 처음 벌어진 일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2010년 3월 10일에는 전국적으로 기습 폭설이 내려 목동, 인천, 대전, 대구에서 열릴 예정이던 4경기가 모두 날아갔다. 각 구장 더그아웃에 난로는 완비된 상태였지만, 그라운드에 쌓이는 눈까지 해결하기란 불가능했다. 2007년 4월 1일에는 극심한 황사로 시범경기가 모두 취소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는데, 당시 선수들은 경기 취소 여부가 발표되기 전까지 모두 항균 마스크를 쓴 채 훈련을 했다. 

# 야구보다 중요한 민방위 훈련 

경기가 오후 1시에 시작되는 까닭에 때로는 날씨가 아닌 다른 외부 요인의 방해도 받는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장애물이 바로 민방위 훈련이다. 2014년 3월 14일이 바로 그랬다. 전국 단위로 진행된 민방위 훈련의 시작 시간은 오후 2시. 프로야구 시범경기도 예외 없이 15분간 중단되는 게 원칙이었다. 베테랑 감독들도 “야구하면서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며 웃을 정도로 색다른 광경이었다. 

일단 심판이 전광판 시계를 수시로 체크하다가 오후 2시 직전이 되자 경기 중지 사인을 냈다. 동시에 민방위 훈련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더그아웃으로 돌아갔고, 조용하게 앉아 훈련 종료를 기다렸다. 또 시간이 흘러 다시 민방위 훈련이 끝났다는 안내가 나오자 투수와 타자, 야수, 주자들이 모두 경기 중지 직전의 위치로 돌아가 플레이를 재개했다. 민방위 훈련 개시 직전에 타석에 서 있던 삼성 김상수는 LG 류제국이 던진 공 2개를 본 뒤 15분 후 교체된 투수 신승현과 다시 맞서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대전에서는 이닝이 정확하게 오후 2시에 종료돼 자연스럽게 공수가 교대됐다. 한화 선수들은 “일부러 의도한 것도 아닌데, 최상의 타이밍이었다”고 조용히 자화자찬했다. 

# 빵 먹고 체한 마야의 조기 강판

2015년 잠실 두산-NC전. 마운드에는 두산 외국인 투수였던 유니에스키 마야가 서 있었다. 마야는 이날 공 60개 안팎을 던지겠다는 계획으로 선발 등판했다. 그러나 3회 2사까지 2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다가 갑자기 고통을 호소했다. 3루수가 얼른 마운드로 다가가 마야의 상태를 살폈다. 트레이너 역시 곧장 마운드로 달려 나왔다. 주변의 걱정 속에 잠시 몸을 추스른 마야는 NC 이종욱을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고 이닝을 마쳤다. 

 

▲ 지난해 7월 대체 선수로 한국땅을 밟은 프로야구 두산 유니에스키 마야가 2015년 4월 9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넥센과 경기에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후 환호하고 있다. 마야는 9이닝 동안 단 한 개의 안타도 내주지 않고 볼넷 3개로 무실점 하는 완벽한 투구를 펼쳐 노히트 노런의 주인공이 됐다. / 두산베어스 제공 


이유는 곧 밝혀졌다. ‘빵’이 강판의 원인이었다. 마야는 경기를 앞두고 “배가 고프다”며 허겁지겁 빵을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너무 많이, 급하게 먹은 게 문제였다. 안 그래도 쌀쌀한 날씨에 힘껏 공을 던지다 그만 탈이 났다. 두산 관계자는 “아침에 빵을 급하게 먹고 급체 증상을 보였다. 소화가 안 되면서 명치 쪽이 꽉 막히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마운드에서 어지럼증을 느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마야는 일단 이닝을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 컨디션을 회복했지만, 코칭스태프는 “시범경기인데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4회부터는 마야 대신 이현호가 마운드에 올랐다. 마야의 투구수가 44개밖에 되지 않은 시점. 두산이 2-0으로 앞서 있었다. 정규시즌이었다면 소화제라도 찾아서 먹고 어떻게든 다시 마운드에 올랐을 만한 상황이다. 

# 2군 구장 시범경기가 빚은 부정위 타자 촌극 

부정위 타자. 다른 선수의 타순에 타석에 잘못 들어선 타자를 이르는 말이다. 상대팀의 어필이 있어야 부정위 타자로 인정된다. 만약 부정위 타자가 타격을 끝낸 뒤 그 다음 타자를 상대로 한 플레이가 시작되기 전에 상대팀이 어필을 한다면, 구심은 정위 타자에게 아웃을 선언하고 부정위 타자의 행위로 인한 모든 진루나 득점을 무효화한다. 다만 부정위 타자의 타격 이후에도 상대팀의 어필이 없으면 경기는 그대로 진행된다. 

2014년 3월 11일 상동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두산의 시범경기에서 바로 이런 상황이 두 번이나 벌어졌다. 프로야구 초창기 이후로는 보기 드물었던 촌극이었다. 사직구장 보수 공사가 늦어지면서 전광판 시설이 미비한 상동구장에서 시범경기를 열어야 했던 탓이다. 상동구장은 롯데의 2군 전용 야구장이다. 

두산은 6회말 수비에서 1번 민병헌 자리에 오재일, 4번 호르헤 칸투 자리에 박건우를 각각 대체 투입하겠다고 알렸다. 자연스럽게 1번 타순에 오재일, 4번 타순에 박건우의 이름이 올라갔다. 그런데 8회 1사 1루 1번 타자 타순에서 오재일이 아닌 박건우가 등장했다. 선수 교체 과정에서 발생한 두산의 첫 번째 착오였다. 이때 1루 주자 장승현이 견제사를 당했고 박건우도 삼진으로 물러났다. 롯데는 박건우가 부정위 타자라는 사실을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다. 

상대의 어필이 없으면 다음 타자부터는 정위 타자가 된다. 4번 타자여야 할 박건우가 타격을 마쳤으니, 그 다음에는 5번 홍성흔이 나오는 게 규칙이다. 그러나 9회 공격에서 타석에 들어선 두산 다음 타자는 5번이 아닌 2번 타자 최주환. 이날의 두 번째 부정위 타자였다. 이번에도 롯데는 어필하지 않았다. 2번 최주환과 3번 김현수가 외야 플라이로 아웃되자 두산은 비로소 4번 타자 박건우를 다시 타석에 내보냈다. 그제야 경기장이 술렁거렸다. 경기는 ‘1번이자 4번’이 된 박건우의 삼진으로 끝났다. 

이날 경기 기록을 맡은 베테랑 기록위원은 “20년 넘게 2500여 경기를 기록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 본다. 1980년대에나 한 번 본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타자를 잘못 내보낸 두산 송일수 감독과 어필하지 않은 롯데 김시진 감독도 동시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송 감독은 “다 내 잘못”이라고 사과했고, 김 감독은 “부정위 타자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차피 아웃된 상황이라 굳이 어필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 WBC 한일전이 열리던 날 시범경기 분위기는? 

2009년 3월.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한창인 시기였다. 2013년과 올해 대회는 한국이 1라운드에서 탈락해 시범경기에 큰 지장이 없었지만, 한국이 준우승 신화를 썼던 2회 대회 때는 아무래도 야구계의 모든 관심이 WBC 2라운드과 결선라운드 쪽으로 쏠렸다. WBC 4강 진출 여부가 걸린 한일전이 낮 경기로 진행됐던 3월 18일에는 특히 더 그랬다. “야구장 관중석이 너무 한산해서 관중을 직접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 2009년 3월 17일 WBC 2라운드 2차전 對일본전 / KBO


따라서 각 구장에서는 공수 교대와 투수 교체로 경기가 잠시 중단될 때마다 전광판을 통해 WBC 한일전 경기 상황을 보여줬다. WBC 대신 시범경기를 선택한 팬들에게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다. 동료들을 WBC로 보낸 선수들 역시 경기 결과가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목동구장 한 곳만은 전광판 공사가 끝나지 않아 영상을 상영하는 게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홈팀 넥센 선수들은 아예 라커룸과 더그아웃을 계속 왔다 갔다 하며 수시로 경기 상황을 체크했다. 보통은 경기 시작 30분 전에 더그아웃에 나와 몸을 풀지만, 이날은 개시 시간인 오후 1시까지도 모두 라커룸에 있는 TV 앞에 모여 앉아 일어날 줄 몰랐다. 경기 도중에도 마찬가지였다. 출전을 대기해야 하는 ‘경기조’에서 빠진 선수들은 수시로 라커룸을 들락거리며 경기 상황을 다른 선수들에게 전달했고, 5회가 끝난 뒤 클리닝 타임에는 벤치가 텅 비었다. 

이뿐만 아니다. 롯데 배장호는 사직구장 마운드에 올라 무려 5분이 넘게 몸을 풀어야 했다. 9회 초 교체 투입돼 마운드에 올랐지만, 원래 2분이면 끝나는 연습 투구가 계속 길어졌다. 때마침 한국의 승리가 확정되는 장면이 전광판에 방송되고 있던 상황이라 롯데도 차마 중계를 중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4강 진출이 결정되고 야구장에 있던 모두가 환호한 뒤에야 배장호는 첫 공을 던질 수 있었다. 

 

배영은 / 일간스포츠 기자 

 

자료출처 : 일요신문 [제12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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