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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수첩] 이러려고 병역 혜택 줬나…국민들 자괴감 든다

--김현기 축구

by econo0706 2022. 11. 23.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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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12

 

2002년 6월14일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 한국이 2002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포르투갈을 누르고 사상 첫 16강 진출에 성공한 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격려 방문을 위해 라커룸을 찾았다. 이 때 주장 홍명보가 김 전 대통령에게 “2006 독일 월드컵을 대비하기 위해 병역 미필 선수들의 군복무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건의를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축구 발전을 위해 중대한 사안인 만큼 돕겠다”며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고 실제 미필 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이 주어졌다.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 이천수, 차두리 등 자유의 날개를 단 선수들이 곧장 유럽 무대를 노크했다. 이들은 착실히 성장해 개인의 영광도 이뤘지만 국가의 은혜에도 보답했다. 독일 월드컵에서의 원정 첫 승,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원정 첫 16강 진출 등이 연쇄적으로 이뤄졌다.

10년이 지나 이들이 은퇴를 준비할 때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또 다른 토대가 두 번이나 더 마련됐다. 23세 이하 선수들이 출전할 수 있는 2012 런던 올림픽과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각각 동메달과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법에 따라 이들의 병역 문제가 해결됐고 2012년 18명, 2014년 23명 등 무려 41명의 선수들이 입대에 대한 고민 없이 선수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 한국 축구에도 큰 축복으로 여겨졌다. 가깝게는 2014 브라질 월드컵부터 멀게는 2018 러시아 월드컵,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 한국 축구의 새 전성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런던 올림픽이 끝난 지 5년, 인천 아시안게임이 끝난 지 3년이 지난 지금 한국 축구의 모습은 어떤가. 11일 끝난 모로코전, 더 정확히 말하면 모로코 2군과의 A매치를 보고 나니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사흘 전 러시아와 평가전에선 그나마 봐줄 구석이 있었지만 모로코전은 완전 ‘꽝’이었다. 정신력, 전술, 감독, 환경 타령을 할 게 아니었다. 선수들의 기본기는 혀를 찰 정도였고 축구를 대하는 자세도 낙제점이었다. 한마디로 실력이 없었다.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모로코의 어린 선수들은 감독 눈에 들기 위해 사력을 다해 뛰어다니며 과감하게 한국 선수들을 돌파한 반면 ‘신태용호’ 선수들의 플레이는 ‘정말 이 정도 밖에 안 되나’란 소리가 나올 만큼 실망스러웠다.

 

▲ 한국 선수들이 10일 모로코전에서 실점한 뒤 힘 없이 서 있다. / 대한축구협회


모로코전 선발 멤버 가운데 무려 7명이 2012년 이후 병역 혜택을 받은 선수들이다. 엔트리 전체로 확대하면 절반 이상인 13명이나 된다. 국가에서 국제대회 좋은 성적을 ‘한 번’ 냈으니 앞으론 푹 쉬라고 군 문제를 해결해준 게 아닐 것이다. 홍명보가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얘기했던 것처럼, 월드컵 같은 국제대회에서 큰 일을 해달라는 대의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모로코전을 보니 현실이 그렇지 않았다. 기성용, 구자철 등 해외에서 부지런히 뛰면서도 태극마크를 위해 헌신하는 선수들이 있지만 다수의 병역 혜택 선수들에겐 ‘국가의 큰 선물’이 많은 돈을 받고 해외 무대에 진출해 개인의 영달을 이루는 수단에 불과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때보다 기량이 떨어졌고 화이팅도 사라졌다. 필자는 논란이 됐던 ‘중국화’는 분명히 있다고 보는데 이런 기량을 펼치고도 “중국화 편견은 억울하다”고 해야하는지 축구계가 되돌아봐야 한다.

이럴 바엔 차라리 혜택을 철회하고 싶은 게 많은 이들의 솔직한 생각일 것이다. 선수들은 국가대표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고 이번이 마지막이란 각오로 심기일전하길 바란다. 기술위원회나 코칭스태프는 좋은 성적, 해외파, 이름 있는 선수 등에 얽매이지 말고 누가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고 기량이 발전하는 선수인지를 백지상태에서 재점검해야 한다.

 

김현기 축구팀장 silva@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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