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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뒤집기] 한국 스포츠 종목별 발전사 - 역도 (1) 원조 효자 종목

---[스포츠 種目別 發展史]

by econo0706 2022. 9. 28.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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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9. 04. 

 

역도는 현대 한국 스포츠의 상징적인 종목이다. 태극기를 앞세워 출전한 첫 하계 올림픽인 1948년 런던 대회에서 복싱과 함께 신생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메달을 안긴 효자 종목이다. 역도 발전사를 살펴보기에 앞서 역도 관련 일화를 소개한다.

2007년 4월 11일 한양대 동문회관에서는 은퇴한 체육 기자들 모임인 한국체육언론인회 정기 모임이 있었다. 김종하, 이현택 전 대한체육회장과 이에리사 태릉선수촌장 등 체육계 인사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김성집 전 태릉선수촌장은 88살의 노구를 이끌고 참석해 한국 스포츠가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현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뛴 체육 기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지난 7월 6일 작고한 김 전 촌장은 그때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홍조 띤 얼굴에 힘이 넘치는 축사로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김 전 촌장은 한국 스포츠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던 때인 1976년부터 1985년까지 태릉선수촌을 밤낮으로 지킨 것을 시작으로 세 차례나 국가 대표 선수들을 보살폈다. 국가 대표 선수치고 김 전 촌장과 이런저런 일화가 없는 이가 없다.

김 전 총장은 한국이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 처음 출전한 1948년 런던 올림픽 역도 미들급에서 첫 메달(동)의 기쁨을 안겨준 주인공이다. 김 전 총장은 한국전쟁의 포연이 자욱한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또다시 동메달을 차지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는 김창희가 역도 라이트급에서 동메달을 땄다. 이 무렵 역도는 복싱과 함께 효자 종목이었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54년 5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역도는 라이트 미들급의 김성집과 밴텀급의 유인호 등 5명이 금메달을 목에 걸어 한국이 첫 출전한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일본과 필리핀에 이어 당당히 3위를 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금메달 8개 은메달 6개 동메달 5개를 땄다. 역도는 그 시절 인기 종목이었다.

1950~70년대 청소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아령을 들고 운동했다. 조금 여유가 있는 집안의 아들이면 덤벨도 마련했다. 아쉬운 대로 시멘트와 모래를 개어 만든 간이 역기를 들기도 했다. 각급 학교에는 역도부가 있어 힘깨나 쓴다는 학생들이 모여 운동했다. 아령 체조 도감은 청소년들의 필독서였다. 역도는 그 시절 생활 스포츠이자 엘리트 스포츠였다.

 

▲ 1948년 런던 올림픽 역도 미들급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김성집(오른쪽)이 시상대에 서 있다. 당시 시상식은 올림픽 주 경기장에서 펼쳐졌다. / ⓒ 대한체육회


한국 역도는 1960년대 이후 아시아 무대에서는 여전히 강호로 자리 잡고 있었으나 세계 무대에서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전병관이 은메달(52kg급)을 딸 때까지 이렇다 할 전적을 남기지 못했다. 전병관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56kg급에서 대망의 금메달을 획득해 한국 역도의 숙원을 풀었다.

세계 무대에서 침체를 겪는 동안에도 한국 역도는 꾸준히 실력을 키웠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원신희는 한국 역도의 희망이었다. 한국체육대 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는 원신희는 1964년과 1965년 인상과 용상 종합 그리고 1972년 뮌헨 올림픽을 끝으로 폐지된 추상 등에서 세계 주니어 신기록을 잇따라 세웠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원신희는 당연히 메달 후보였다. 그러나 5위에 그쳤다. 그리고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는 인상과 용상에서는 2위권을 달렸으나 취약 종목이었던 추상에서 실패해 7위에 머물렀다.

원신희 교수는 "멕시코시티 올림픽 때는 컨디션을 조절하는 데 실패했다. 뮌헨 올림픽에서는 추상에서 문제를 드러냈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원신희는 1974년 테헤란 아시아경기대회 라이트급 인상과 용상 그리고 합계에서 금메달을 따 한국이 아시아경기대회에 처음 출전한 북한을 금메달 숫자에서 16-15로 아슬아슬하게 물리치고 종합 4위를 차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당시 역도는 세부 종목별로 시상했다. <2편에 계속>

 

신명철 기자

 

자료출처 : 스포티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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