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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수첩을 뒤적이다가 - 서림

한국의 名詩

by econo0706 2007. 3. 4.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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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클립아트

 

옛날 수첩을 뒤적이다가 - 서림

 

가버린 애인보다 더 냉혹하게
흘러가버린 나의 시간.
 
수첩은 만질 수 있는 무의식의 탱크,
납작하게 눌려버린 껌껌한 페이지에
탈색된 나의 시간,박제되어 들어있다.
 
곰팡내 풍기며 한장한장 뒤적이며
머리 속에 흑백사진을 넘기고 있다.
시간을 되돌리고 있다.
머리 쥐어짜며 조마조마
칼라를 복원해보고 있다.
 
곰팡내 속에서 나의 20代가
푸르스름한 꽃잎 벌려
나를 보고 미소 짓고 있다.
 
박제라도 끌어안고
울어버리고 싶은
황홀하게 아프던
나의 20代여.
 
그 시절,내 몸의 피였던,
눈물 많던 한 여자가
지금 수첩 한 구석에서 훌쩍이며
나에게 전화 걸고 있다.
 
번개 치고 소나기 흐르는
내 지하창고 같은 가슴,
20년 전 수첩 속으로,
숨죽여, 나는
끌려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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