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03
”도저히 못 신겠습니다.”(선수A) “뭐야, 그럼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구단 프런트) “방법이 있긴 있습니다. 대신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모른 체하시면 됩니다.”(선수A)
프로야구 98시즌 중반에 있었던 일이다. 롯데 선수 중 몇몇이 스파이크에 불만을 품고 구단 관계자를 만나 하소연했다. 뛰고 달리다 보면 발에 착 맞고 편안해야 하는데 선수들 대부분이 불편하다며 교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보통 프로 구단들은 1년 또는 2년 계약으로 용품업체와 계약하는데 대부분이 무상 지원이다. 제조업체는 프로스포츠의 홍보 효과를 노리는 것이고, 구단이야 돈 들이지 않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98년 당시 B업체의 용품을 지원받던 롯데는 주전 선수 대부분이 스파이크 교체를 요구해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궁리 끝에 고안해낸 것이 신발 옆 마크 떼내기. 선수들은 각자 구미에 맞는 것을 구입한 뒤 마크를 뜯어냈다. 심지어 어떤 선수는 마크에 검정 매직으로 칠해 ‘눈 가리고 아웅’을 시도하기도. 그러나 이런 임시방편이 오래갈 리 없었다. 롯데에 용품을 지원하던 B업체는 TV를 보다 놀라운 장면을 발견했다. 2루타를 때리고 나간 한 선수의 발을 보니 다른 신발을 신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볼썽사납게 매직으로 시커멓게 칠한 채로. 롯데는 업체의 항의 방문 등을 겨우 넘기고 이듬해 다른 업체와 협찬계약을 맺었다.
정반대 경우도 있다. 97년 롯데의 모 선수가 0대 10으로 뒤지고 있는 가운데 8회 솔로 홈런을 때렸다. 버스 떠난 뒤 손 흔드는 격. 홈 경기 홈런 타자에게 목걸이 선물을 약속했던 지역의 한 금목걸이 제조업체는 이 경기를 보고 목걸이 증정을 전격 취소했다. 홍보는커녕 역효과만 나지 않겠느냐는 반문과 함께.
갖가지 장비가 워낙 많은 데다 TV 노출 횟수도 가장 많은 야구다 보니 협찬계약을 맺기 위해 업체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곤 한다. 그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중견업체 C글러브사. 단순한 용품 지원이 아니라 선수들과의 돈독한 유대관계를 통해 자기 사람으로 만든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좌완 투수 이상훈도 이 글러브를 끼고 있는데 그 인연은 대학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비교적 무명이던 대학시절의 이상훈을 일찌감치 알아본 C글러브사 사장은 거의 매주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나누며 이상훈의 마음을 녹였다. 한 번 정 준 사람에게는 모든 걸 다 내보이는 이상훈의 성격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이상훈은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이 글러브를 계속 쓰고 있다. 요미우리의 정민태, 조성민, 그리고 KBO 홍보위원인 선동렬조차 선수시절 C글러브를 끼고 마운드에 올랐다. C글러브사는 선동렬 위원과 함께 현재 경기도 인근에 선동렬의 이름을 딴 선동렬 야구장 건설을 계획중이다.
김성원 / 스포츠투데이 야구부 기자 rough@sportstoday.co.kr
주간동아 313호 (p9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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